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문화성찬을 앞에 두고
우리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 날씨에 민감한 직업을 가진 두 아들 때문에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걱정을 거듭한다. 소심한 어머니의 모습이 일견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두 아들 중 한 사람은 언제나 웃는 낯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모든 일에는 잘 되는 시기와 그렇지 못한 시기가 있다.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디면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비수기를 견디는 우리의 일반적인 자세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수기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부족해서 공급자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말한다.
2008년 11월 대구에서 대형문화행사를 개최한 주체들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성찬을 차려놓고도 만만찮은 이웃행사 때문에 옆자리를 기웃거리며 발을 굴렀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비엔날레, 아트페어, 아트 인 대구, e-fun, 코리아 인 모션, 오페라축제...
행사가 많다보니 장소가 부족하기도 하였다. 엑스코는 1층과 3층에 각각 사진비엔날레와 대구아트페어를 유치하였다. 한 장소에서 두 개의 행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장소의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사진비엔날레 만 따져 보더라도 행사를 모두 감상하기 위해서 관람객이 움직여야 하는 동선은 엑스코, 대구문화예술회관, 봉산문화회관, 경북대학교 대강당, 봉산문화거리 갤러리, 대백프라자 인근 갤러리, 호텔 인터불고, 한국패션센터 세미나실, 대구시민회관,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 수성아트피아, 동구문화체육회관 등 동서남북 미로 찾기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대구에 거주하는 관람객들도 힘에 부칠 지경인데 타지에서 온 관람객들의 고충은 오죽했겠는가?
넘치는 문화행사들,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약속이나 한 듯 풍성한 와인파티로 행사들은 시작됐고, 주말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그러나 대 여섯 개의 행사들로 관심이 분리되자 곧 미술가, 사진가들의 동창회로 착각할 만한 관계자들의 잔치로 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대 여섯 개의 행사 중 관심 있는 두세 개 정도만 찾아다닌다고 쳐도 예술인들이나 평론가들, 행사관계자가 아닌 일하는 보통 시민들 - 주말에는 친구나 가족과 특별한 일을 만들고, 평일에는 일곱 시 이후에 일을 마치는 사람들 - 이 각각 3일에서 2주간의 행사기간을 놓치지 않고 챙기기는 만만치 않다.
더더구나 전시 행사들은 저녁 7시에 행사장을 닫기 때문에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구아트페어의 홈페이지의 Q&A란에는 2008년 11월 11일 현재, 단 하나의 글조차 등록되지 않았고, 대구사진비엔날레의 홈페이지의 FAQ란은 아직도 준비중이며, 사이트맵은 먹통이다. 심지어 아트 인 대구는 홈페이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행사의 규모나 준비기간에 어울리지 않는 주최 측의 안이한 준비와 미흡한 홍보에서 비롯된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을 대변한다.
문화행사의 쏠림 현상을 넘기 위해
이렇게 문화행사가 일 년 중 특정시기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0월과 11월에는 대부분의 관변축제들이 몰려있다. 농촌공동체가 보존되어 있었던 과거에는 가을걷이 이후 마을전체가 일 년 동안의 수확을 자축하며 즐겼지만 농촌공동체가 허물어진 이 후에는 자연스레 사라져버린 축제를 군사정권이 기계적으로 부활시키고, 그 시기를 가을로 한정시켜놓은 것이다.
11월과 12월에는 성탄절과 연말분위기 때문에 행사가 많기도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단체들이 연중에 끝내야 하는 행사들을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이 다급히 해치우면서 수많은 문화행사들이 진행된다. 물론 문화단체들이 자체자금으로 행사를 치르거나 상업적인 전략이 확실한 이벤트 사가 주최하는 대형행사들은 문화가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문화단체의 자생력은 아직 빈곤하고, 이벤트사의 행사들은 수도권에 비해 태부족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상쾌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지자체와 정부의 문화단체 보조금은 일괄적으로 12월과 1월에 심사하여 1월 혹은 2월에 결과가 발표된다. 문화단체들이 지금처럼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이상 하반기에 문화행사가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묘연하다. 하루아침에 문화단체들의 자생력을 기를 수 없을뿐더러, 시민들의 문화향수보다 행정편의를 우선하는 정부나 지자체가 보조금 심사와 지급시기에 변화를 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문화가 부정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화공백은 문화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돈줄이 끊기면서 생기는 문화공백은 어떻게 메워야 할지 막막하다. 어쩌면 연초마다 느끼는 문화공백은 우리문화계의 냉엄한 현실이고, 연말에 쫓기듯 만끽하는 문화풍요는 과장된 허상이 아닐까 새삼 의심해본다.
[평화뉴스 문화현장 6] 글. 한상훈(대구 민예총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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