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광장에서 타오르다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온다. 연말이면 으레 그 해 최고의 이슈를 정리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한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기는 하나 올해 최고의 이슈 중에 반드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포함될 것이다. 지난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은 우리 사회에 참으로 많은 의미를 남겼다. 특히 그 중에서도 광장에서 벌어진 그 수많은 문화가 우리사회에 던진 충격과 희망은 촛불이 우리에게 남긴 그 어떤 것보다도 크다.
중․ 고교생들이 직접 자신의 할 말을 하기위해 거리로 나왔고 유모차를 끈 아줌마들도 나왔다. 대학생들도 팔을 걷어붙였고 회사원들도 넥타이를 풀었다. 그 자리에는 수많은 세대와 계층이 녹아졌고 항상 각자의 표현방식을 통해 소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콘서트홀 보다 감동적인 노래를 서로 불렀고 갤러리 안의 미술보다 살아있는 작품들을 손수 만들어 왔다. 문화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광장에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통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문화라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월드컵에 이어 이번엔 촛불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또 한 번 그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우리에게 광장은?
선진국의 경우 대개 문화적 행위가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한 광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게 모여든 문화는 자연스레 축제를 만들어 내며 전통이 된다. 그것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며 심지어 그 지역 자체를 브랜드화 시킨다.
하지만 대구에게 광장이란 것은 일반 시민들에게 참 머나먼 공간이다. 제대로 된 광장의 형태를 갖춘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역에서 대부분 광장이라고 이름 붙어져 있는 곳들은 있지만 이마저 대부분 자동차 전용이거나 시민들의 접근이 불편하다.
도심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그나마 접근성으로 보나 공간의 크기로나 대구의 가장 대표적인 광장이라 할 수 있는 대백 앞 광장의 경우 그 공간이 과연 엄밀한 의미의 문화광장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했던 적이 몇 번이나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이번에 열린 촛불집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난시절 다양한 집회를 통해 대백 앞 광장이 주는 역사적 상징성은 지역문화에서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대백 앞 광장은 다양한 문화를 느끼고 체험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노점상들이 즐비한 상업적 공간으로서의 인식이 강하다. 더욱이 시민들에게 대백 앞 광장(뿐만 아니라 시내 전체) 의 이용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동차인데 대백 앞 광장만 하더라도 대구백화점이나 인근 상점으로의 유입되는 자동차로 인하여 차와 사람이 뒤엉켜 복잡하기 짝이 없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인 광장에 난데없이 자동차가 주인공으로 지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물론 대백 앞에서는 그 동안 동성로축제를 비롯한 많은 문화행사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다분히 상업적인 대형이벤트이거나 일회성으로 진행된 행사를 위한 행사였다. 그나마 대형이벤트도 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해 제대로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순수한 의미의 문화적 행위를 대백 앞 광장에서 펼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이 몰리거나 약간의 소음 때문에 조금이라도 영업행위에 방해가 되면 가만히 있지 않는 동성로 상인들의 비관용은 대백 앞 광장의 얼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채.2.28공원...공간 이해와 컨셉을 가진 문화적 행위는 거의 전무"
도심 인근 공원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2.28기념중앙공원도 마찬가지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경우 나름 공간적으로 넓어 광장의 형태를 비슷하게나마 갖추기는 했으나 유동인구와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2.28기념중앙공원도 어떠한가? 접근성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아 도심을 찾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이용이 많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담을 만한 공간의 넓이나 활용도의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두 공원 역시 대백 앞 광장처럼 연중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많이 열려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는 하다. 정확한 집계와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소위 행사철이라 불리는 4~6월, 9~11월 사이 특히 주말에 두 공원을 대여하는 데는 꽤 치열한 쟁탈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행사주관단체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홍보를 하는 행사가 대부분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자기공연 때문에 공연에 맞는 공연장을 대관하는 것처럼 야외행사를 해야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좋은 도심공원을 빌려 행사를 진행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이해와 컨셉을 가지고 꾸준하게 진행되는 문화적 행위는 거의 전무하다. 그러다보니 두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는 제대로 색깔을 갖추지 못해 중구난방이며 철저히 수용자가 아닌 주관자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아울러 대개 공원의 대여는 공식적인 단체나 조직에게 이루어지며 일반 개인은 공원대여가 까다롭다. 누군가 일반 개인이 공원에서 공연을 멋지게 하고 싶더라도 공원을 운영하고 있는 공원관리센터에게 공원대여허가를 받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공원관리차원에서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상업적이거나 종교적으로 특정한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사에 공원을 대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나 공원관리라는 미명하에 자유로운 문화적 행위를 펼치고자 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까지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접근 용이하고 자유로운 행위를 펼칠 수 있는 광장으로서의 공원의 공공기능을 공원의 공공성을 외치는 공원관리센터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광장은 만들어 질 것인가?
작년부터 시작되어 지금 공사가 한창인 동성로공공디자인사업을 통해 도심공간이 어느 정도 친문화적으로 바뀔 것이라 한다. 자연스레 대백 앞과 동성로가 문화광장으로서 역할도 기대된다. 하지만 무언가 의구심은 계속 남는다. 단순히 환경개선이라는 인프라 구축만으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디 빈틈만 생기면 뭐라도 지어서 올려야 되고 차는 반드시 끌고 들어가야 돈이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 현실 아래 여전히 비슷한 시기가 되면 좁아터진 공간 안에서 아웅다웅 박 터질 행사주관자들이나 자기 집 앞에서 영업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라하면 멱살잡이도 서슴치 않는 동성로 한철 장사꾼들이나 이것이 문화적 표현인지 상행위인지 구분도 못하는 공원관리자들이나 변하지 않으면 이전과 똑같을 것이다.
광장의 가장 큰 기능은 소통이며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문화이다. 대구에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다. 그것이 21세기 대구의 문화수준이다.
[평화뉴스 문화현장 7] 글. 이창원(인디053 대표)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