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낯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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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노동의 삶 속에 낯선 이의 자리는 어디에.."

훌쭉해져만 보이던 강이 이제 제법 넉넉한 마음의 겨울 강으로 늙어져 있습니다.  엉덩이가 뭉뚝한 청둥오리들도 몇 마리씩 그 겨울 강이 하늘로 풀어주고 있습니다.  옛 길의 키 큰 메타세쿼이아 숲도 겨울 하늘 가득 성당 벽의 십자가처럼 청동빛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해가 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 주가 갑니다.  편안하셨나요?

 편안하지만은 않으셨을 겁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도 이해하시겠죠?  한 세기 동안의 자본 기계가 이제는 가쁜 늙은 숨을 몰아쉬고 우리의 노동도 뜨거워진 그 자본 기계의 열기로 점점 더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은 일요일, 피로한 당신의 육체를 집의 평안 위에 눕히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이 말이 오직 광고의 카피 문구일 뿐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노동에 묶여진 나를 일요일은 권태와 피로로부터 해방시켜주지 못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일곱 날 신화와 수메르와 로마의 신화의 합작품으로 로마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시작된 일주일이라는 단위의 호명은 이제 노동의 수고와 보상이라는 거래 관계의 순간들이 따분하게 반복되는 경제적 시간에 다름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의 일요일이 노동일 단축이라는 지난한 노동 운동의 쟁취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쟁취물은 우리를 평안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노동의 시간과 그의 보상인 일요일 사이를 우리는 오직 절망적으로 오갈 뿐입니다.

 당신은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식구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붐비는 공원이나 절집을 한 바퀴 돈 뒤 당신은 한없이 밀리는 차들 사이에 끼여 일요일 오후를 소비합니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을 찾아 불친절을 감내하며 음식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일요일이 배 속에서 소화되며 혹은 연기에 그을리며 소비됩니다.  다시 어두운 월요일을 기다리는 일요일 밤이 다가옵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일주일의 시간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천편일률적으로 따분한 것인데 그 까닭은 이 시간들 간에 서로 우열이 없기 때문이다...일요일은 일주일을 성스럽게 하지 못한다.  그 대신 일요일은 일주일을 (오직 그저 그러한 권태로) 보상할 뿐이다.”

 한편으로 권태는 가족을 특권화합니다.  오직 가족만이 일주일과 일요일의 중심에 서고 권태가 그것을 공고히 합니다.  일요일을 소비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의 변주인 가족은 ‘화목’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꽃 장식을 합니다.  ‘노동’의 삶 속에서 낯선 이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으며 오직 나와 나의 소유물인 가족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세상은 낯선 이들과의 세상입니다.  동동거리는 자기 반복으로서의 일주일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나가는 일주일은 낯선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다시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미래, 그것은 타자이다.  미래와의 관계,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 자체이다.  홀로 있는 주체에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순수하게 개인적인 지속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인다.”  내 얼굴 앞에 그저 나타난, 그러나 울고 있는 그 낯선 이로 하여 역설적으로 우리는 미래 전망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낯선 이들, 가난하고 차별받고 학대받는 이들이 이제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자유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어찌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선택이고 의지이고 그 정책입니다.  그것이 낯선 이들을 더 아프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요일을 진정한 일요일로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일요일을 진정한 일요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당신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일요일은 낯선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조금이라도 그들과 함께 앉아 있어보면 어떨까요?

 내일은 일요일입니다.  사실 로마 시대부터 일요일은 한 주의 끝이 아니라 한 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것이 노동과 연계되면서 맨 뒤의 날로 바뀌었겠죠.  한 주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푹 주무시고 내일을 한 주의 마지막이 아니라 한 주의 첫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말 에세이] 노태맹(의사.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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