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 부서지게 일했지만 빚은 눈덩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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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57)씨..연탄배달→보증→차압→사고→택시→대출→이혼→장애→신불→파산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살았지만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파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8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인3가 중구청 근처에서 만난 박정환(57.가명.대구시 동구 신암5동)씨의 말이다.

박정환(57.가명)씨
박정환(57.가명)씨
박정환씨는 두 달 전 대구지법에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 박씨가 신청한 '개인파산'은 개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경우, 그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해 법원이 파산을 선고함으로써 파산절차를 거친 후 면책 결정이 되면 채무를 면제시켜 주는 제도다. 그는 "없는 형편에 카드빚에 시달려 개인파산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박씨는 1977년 결혼해 노동일을 하다 지인의 도움으로 연탄을 외상으로 받아 연탄판매에 나섰다고 했다. "하루 종일 연탄을 배달하느라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지인과 거래처와의 신용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연탄을 배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로 손을 다친 동생을 위해 선 입원보증이 잘못돼 병원에서 차압이 들어와 연탄이 경매로 넘어가자 거래처는 거래를 중단시켰다.

더 이상 연탄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되자 당장의 아이들 양육비와 생활비가 걱정이었다. "급한 마음에 지인에게 생활비를 빌려 나중에 갚기로 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다니던 중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좌골 신경통'이라고 하더군요. 그 때가 1980년 이었습니다"

이후 박씨는 허리를 고쳐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지만 1999년 왼쪽 발목과 복숭아 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결국, 생활 대비용으로 발급 받았던 카드로 치료비를 결제하고 퇴원했다.

박씨는 "퇴원 후에 택시기사를 하며 그간 빌렸던 돈과 생활비, 교육비 등으로 사용한 카드 부채를 갚기 위해 열심히 일 했지만 부채를 갚기는커녕 사납금마저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 후, 생계를 위해 카드대출을 받아 자본금 500만원을 마련, 사업을 시작했으나 그 마저도 경기가 나빠 400만원의 손실을 내고 폐업하게 됐다.

2003년, 생활고에 따른 이혼 후 박씨의 삶은 더 고단해졌다. 혼자 살면서 부채라도 갚아보려 했으나 또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4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사고 후 몇 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해 카드가 연체됐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살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5천만원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박씨는 지난 10월 지역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대구지방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개인파산 신청서에 "많은 채무를 감당하기에는 기력도 없고 아무런 자신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지낼 뿐"이라며 "채무를 감당하기에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파산신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법원에 의해 면책 결정이 내려지면 내년 2월 채무를 면제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면책이 되더라도 내년 생활이 걱정 된다"면서 "성하지 않은 몸으로 직장을 구하기는 어렵고, 이 불경기에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제불황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대구지역에서 박씨와 같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0일 대구지방법원 개인파산 신청현황을 보면, 2005년 3천665건, 2006년 1만1천218건, 지난해 1만3천350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올해도 11월까지 8천398건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파산에 직면했으나 채무를 갚을 의사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신청하는 '개인회생' 역시 2005년 7천12건, 2006년 8천398건, 2007년 9천225건으로 늘었고, 올해도 11월말까지 8천402건이 신청됐다.

대구지역 인권단체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가 운영하고 있는 '금융피해자 파산학교'에도 올들어 11월까지 500여명의 신용불량자가 다녀갔다. 이 가운데 180여명이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해 면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IMF보다 힘든 경제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을 신용불량자로 낙인찍기 보다는 금융피해자로 봐야한다"면서 "채무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문제를 개인적 책임으로 전가시켜지 말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피해자 파산학교는 인권운동연대 사무실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문의.(053-290-7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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