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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잊었던 나의 어린왕자
류혜숙..."터질 것 같은 심장, 나의 꽃 나의 꿈을 위하여"
2009년 01월 02일 (금) 09:43:42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1. 제로로 사는 즐거움
 
2008년, 년 말에 세통의 편지가 왔다.
첫 번째는, 유가 환급금 받으시오
두 번째는, 국민 건강 보험 피부양자 자격 상실이오
세 번째는, 국민연금 가입하시오.

친구는 말했다. “근데. 넌 아직도 건강보험료도 안내고 사니? 대한민국 국민 맞아? 이제껏 버텼다면... 대단해. @@”

그러니까, 사실은, 나라가 알 정도로 벌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한 톨을 벌면 한 톨만큼 썼고, 한 주먹을 벌면 한 주먹만큼만 썼다. 불편함도, 욕구도, 비참도, 안달도 없었다. 오히려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제로로 사는 즐거움,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 삶이었나. 

2008년 한 해 동안 세 번의 외국여행을 했고 한 달에 평균 세 번 대한민국을 여행했다. 한 주먹을 벌 땐 어떻게 여행했었을까, 기억이 안 난다. 두 주먹을 벌면 한주먹이 남을 것 같았는데 두 주먹을 쓴다. 벌써 2월엔, 6월엔, 아아 2010년엔, 하고 계획을 잡는다.  

이제 년 초에 또 한통의 편지가 올 것이다. 아마도, 연말정산이라는 이름으로. ‘내시오’의 과정은 너무도 간단한데, ‘받아가시오’의 과정은 너무나 복잡하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내겠지. 복잡해진 내 생과 늘어난 욕구들을 위해,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2.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서른여섯이 되었다.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서른다섯, 만으로는 서른 넷, 마음만 먹으면 아직 서른 초반이라 우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서른여섯이 좋다. 열아홉 때 스물을 기다리듯 서른일곱, 마흔을 기다린다. 과연 그때엔 무엇이 있을까. 이 서른여섯의 해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른다섯의 해, 꽤나 큰 다툼도 있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난 적도 있었고, 두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며 머리꼭대기 분화구가 터지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지만, 되돌아보면 다툼은 하루 이틀이면 사라졌고, 심장은 터지지 않았으며 머리 꼭대기에서 불을 뿜어내지도 않았다.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그건 분명히 이십대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순 없다. 아직은, 단지, 무언가 바뀌었어! 하고 느낄 뿐이지만, 서른일곱, 마흔이 되면, 혹은 언젠가 알게 될 것이기에 조급증이 들지도 않는다. 영원히 모르면 어떠랴! 이 역시 변한 부분이다. 늙었다는 것일까, 자신과 타자에 대해 무뎌지고 있다는 뜻일까, 혹은, 현명해지고 있다는 뜻일까.
 
<그에게는 불을 뿜는 화산이 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침밥을 데우는 데 아주 편리했다.
불이 꺼져 있는 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는 그래서 불 꺼진 화산도 잘 쑤셔 놓았다. 화산들은 잘 청소되어 있을 때는 부드럽게, 규칙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타오른다. 화산의 폭발은 벽난로의 불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그 대답이 될 만한 문장을 발견했다. 무릎을 탁! 치며 든 생각, ‘청소’를 해야 해. 
 
3. 새해를 시작하는 대 청소.

저 문장은 <어린왕자>의 한 부분이다. 어린왕자를 잊고 있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는 건가. 내가 어린왕자였을 때, 여우는 말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넌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 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내가 어린왕자였을 때 뱀은 말했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내가 어린 왕자였을 때 꽃은 말했었다. “나비를 알고 싶으면 두세 마리의 쐐기벌레는 견뎌야지.” 내가 어린 왕자였을 때 갈매기 조나단은 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제제는 슬픔과 기쁨을 가르쳐 주었고 빨강머리 앤은 꿈과 성장을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왜 내가 어린왕자였던 그 때를 잊고 있었을까. 

어제 사막에서 만난 어린왕자가 나에게 말했다. “어린 아이들 만이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
 
2009년 1월 1일, 오후 3시 17분, 나는 지금 내 방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사막에 떨어져 비행기를 고치던 어제가 백년쯤 지난 것처럼 가뿐하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나는 할 일이 좀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꽉 쥔 두 주먹은 나의 일을 위해, 터질 것 같은 심장은 나의 꽃을 위해, 머리꼭대기에서 이글거리는 화산은 나의 꿈을 위해, 두 손은 말랑말랑하고 피가 잘 통하게 자주 마사지 해 주고, 심장은 이완의 미덕을 숙지해 주고, 분화구는 잘 청소해 두어야지.

그렇게 대 청소부터 시작, 2009년 시작.

   





[주말에세이] 류혜숙(평화뉴스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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