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의 외로운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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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강대영(88) 할머니, "춥고 외로워..차리리 겨울 없었으면"

20여년을 홀로 지내온 강대영(88) 할머니..할머니는 겨울이면 더 고독하다고 했다(사진.남승렬 기자)
20여년을 홀로 지내온 강대영(88) 할머니..할머니는 겨울이면 더 고독하다고 했다(사진.남승렬 기자)

"요즘 같이 추운 겨울이면 혼자 눈물 흘릴 때가 많아요. 남들은 아들, 딸 와서 다 챙겨주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납니다"

5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4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아흔을 바라보는 홀몸어르신의 집이 맞나 할 정도로 방은 깨끗했다. 미지근한 열이 도는 방바닥에 앉아 빨래를 정리하던 강대영(88) 할머니는 "남편도, 자식도, 친지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요즘 같이 추운 겨울이면 너무 고독한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날 때가 많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외로운 삶을 살던 할머니에게 또 하나의 짐이 지어졌다. 60대 후반부터 아파오던 무릎은 만성 관절염으로 이어져 20여 년 동안 할머니를 괴롭혔다. 고령에다, 그것도 홀몸으로 걷기조차 힘든 할머니에게 생계수단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기초생활자수급대상자로 매달 나오는 급여 30여 만원이 할머니 한 달 생활비 전부다.

"그래도 손님 왔으니 보일러 좀 틀어야지"

"남편 세상 뜨고, 얼마 되지 않아 같은 교회 다니는 분의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어. 국민이면 국민 노릇을 해야 하는데 국민 노릇 제대로 못하는 늙은이 위해 나라에서 돈도 주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 뿐이야"

급여 30여 만원 가운데 전기세와 난방비를 비롯한 세금을 내면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는 2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는 난방비가 더 들어 할머니의 주머니는 더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

"생활비에 쪼달려 정말 추운 날 아니면 보일러도 잘 안 틀고, 밤에도 불을 잘 안 켜요. 집에서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적은 돈벌이 소일거리라도 있으면 야채라도 사 먹겠건만 다리가 아파 그것마저 쉽지 않고... 아, 그래도 손님이 왔으니 보일러를 좀 틀어야지"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요즘에도 할머니의 방이 미지근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더 외로운 겨울

"외풍이 심해 요새 같은 겨울 밤에는 보일러를 틀어도 추워. 겨울만 되면 외로움도 더 심해져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싶고... 겨울이 없었으면 좋겠어"

할머니는 추위보다 외로움에 더 떠는 듯 했다. 동 주민센터의 복지담당 직원과 사회복지사가 가끔 찾아오거나 전화를 해 말동무를 해주기도 하지만 할머니는 "너무나 고독하다"고 했다.

"복지관에서 한 달에 3번 정도 걸려오는 전화와 동사무소에서 가끔 찾아오는 도우미 아줌마와의 이야기가 대화의 전부야. 그래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요새는 자기 부모도 버리는 세상인데 가끔 찾아와 주는 것도 이 늙은이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

할머니가 털어 놓은 노년의 삶은 찬 겨울바람 만큼이나 시렸다.

경북 상주시 한 농부의 집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17살 때 결혼했다. 남편은 할머니보다 10살 많은 달성군 화원유원지 근처 작은 마을에 살던 농부의 아들이었다. 부부는 아들 하나를 낳아 고령군 다산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20여년 전 할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할머니의 삶은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남편 따라 먼저 간 아들...

"할아버지와 사별하고 줄곧 혼자 살아왔어. 친정 형제 7명 가운데 나만 살아있고 모두 세상 등졌지. 가깝게 지내던 시댁 친지들 모두 세상을 떠나 20년 넘게 홀로 지냈지 뭐. 아무도 없어요"

할머니는 "사별 후 지금까지 돌봐 줄 사람 하나 없는 너무나 외로운 삶이었다"고 했다. 그토록 아끼던 아들마저도 가슴에 묻었다. 아들은 '급성 충수염'(맹장염)을 앓았다. 일찍 수술만 하면 고칠 수 있는 흔한 질병이지만 아들은 수술 시기를 놓쳤다. 결국, 충수가 터져 복막염 진단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남편 저 세상으로 보내고 1년 정도 지난 후에 결혼시켜 1살 터울의 남매까지 낳아 가정을 이뤘는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버지 따라 가더라구" 남편과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진 할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며느리와 손자.손녀가 있기는 해. 며느리도 지 애비 보내고 재가하지 않고 남매 다 키웠지. 그 애들도 참 어렵게 살았어요. 이제 손녀는 결혼하고, 손주 녀석은 직장 다녀. 살림하랴, 직장다니랴 전부 바빠서 거의 찾아오지 못하지만 원망은 안해"

뒷모습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할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더불어 전동휠체어다.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 근처 경로당에 가려고 해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복도에서 손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는 할머니. 추운 겨울,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말 아직 보고 계실까. 아파트를 나와 할머니가 사시는 11층을 바라보자 복도 벽에 얼굴만 겨우 내미신 작은 키의 할머니는 그 때까지도 손을 흔들고 계셨다.

한편, 대구시 중구 관내 강대영 할머니와 같은 홀몸어르신은 2008년 말 현재 3천여 명에 달할 것으로 중구청은 추산했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95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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