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내에 자리잡고있는 유리상자는 어느새 대구지역의 전시공간중 이색적인 장소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 하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면적에 사방이 유리로 트여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시장이 주는 이상적 권위감을 떨쳐내고 24시간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몇 년전부터 이 작지만 특이한 공간은 대구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새로이 창작활동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나름 도전적인 전시 기회이자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봉산문화회관이 기획하고 진행중인 <유리상자-아트스타> 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획전의 전시공간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고 사방이 유리격자로 만들어져 있는데다 천장이 높은 탓에 이 곳에서의 전시는 기존 전시장의 조형전시문법으로는 주어진 공간을 읽고 재구성을 위한 해석이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이 곳에서 전시를 하거나 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자신이 추구하고있는 작업의 주요 특징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전시물로 만들어 보여준다.
그녀의 작업은 종이를 소재로 한다. 종이가 가지고 있는 재료의 물성적 특징을 이용한 작업이 그것인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얇은 종이를 겹겹이 포개었을 때 나타나는 틈과 결의 선을 그녀는 자신이 행하는 작업의 주제로 살려낸다.
이전에 언뜻 보았던 그녀의 작업이 종이 평면 위에 그어진 칼금들 사이의 결을 이용해 틈이 주는 환영을 구현해내었다면 이번 유리상자전에서 그녀는 수 백장의 종이 스트립을 녹색 시트지에 덧대어 붙이고 이를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말아서 세우고 공중에 매달았다.
그녀는 이 작업을 통해 그 미세한 종잇장들의 틈이 만들어내는 결과 선들의 미묘한 톤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녀 스스로가 작가노트에서 밝혔듯 이 틈은 자기발견을 위한 여백이자 비움이며 불확정적인 가능성으로서의 틈이다. 이를테면 강윤정의 작업에서 이 ‘틈’이라는 개념은 그녀 작업의 모든 것을 응축해주는 주제일 것인데, 어쩌면 이 틈이라는 것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존재론적인 것임이 분명해보인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어쩌면 결여이자 여백이며 부재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재와 결여로서의 틈은 세계 속의 사물을 간신히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공간이자 사물이 존재하게끔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조건일 수 있다.
일견 단순해보이고 간단해보이는 그녀의 작업들은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난 집중력과 손놀림을 필요로 하는 고된 창조과정을 거친다. 수 천 장의 종이들을 오차없이 정밀하게 잘라내고 그것들을 붙이고 나서야 겨우 전체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형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틈이 만들어보여주는 선과 결들의 이미지가 평론가 윤규홍의 말대로 일종의 책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다면 이는 시간이자 의식의 흐름과 중첩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틈들의 선과 결들이 보여주는 의식의 흐름과 쌓임은 바로 작가 자신의 성장이자 세계의 축적이다.
그런 세상의 흐름과 쌓임이 작품 속에서 고운 결들과 선들의 이미지로 투영된 것이라면 어쩌면 강윤정의 작업은 세상의 다사다난하고 고단한 일상들이 농밀하게 축조되고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틈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고 서로를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닐런지.
[평화뉴스 문화현장 13]
글.사진 최창윤(예술마당 솔 사무국장)
|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