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배의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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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섣부른 용기를 내지 못하는, 여전히 보류다"

사직. 참 묘한 단어다. 때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단어이고, 때에 따라서는 참 낭만적인 단어다.
김훈은 27년 기자생활동안 20번의 사표를 썼다고 한다. 한번은 사직서에 ‘사직합니다’ 다섯 글자만 남겼다. ‘안녕히’라고 세 글자만 적은 적도 있다고 한다. 더러워서 그만두는데 너무 많이 적어주기 싫었다는 게 이유였다. 사직을 결심하면 짐을 싸는데 1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참 대책없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낭만적이다.

필자도 신문사 생활 10년동안 4번의 사직서를 냈다. 4번 모두 다음 직장을 ‘예약’하고 사직서를 냈으니 김훈처럼 ‘무책임’도 아니고 그렇다고 ‘낭만’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직. 연초부터 이 두 단어를 생각한다. 두 사람 때문이다. 한 사람은 같은 회사 선배기자다. 다른 한 사람은 전국일간지에 다니던 선배기자이다. 두 사람 모두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회사를 떠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다. 의외였고 충격이었다.

같은 회사 선배기자는 로스쿨에 합격했다. 의외였다. 법하고는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문사 생활은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인정도 받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위장도,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순한 결탁도, 그에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열정이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때로는 불길처럼 일어나고 또 물길처럼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 열정이 일어나고 흐르면서 저절로 카리스마가 되는 사람이었다.
몇해동안 그런 그와 나름 죽이 잘 맞았다. 뭔가 갑갑하고 꽉 막혀 있을때면 그는 엉뚱한 제안을 하곤했다. “한번 놀아보자”는 꼬리표를 달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일들은 신문지면에 쏟아졌다. 덕분에 즐기면서 의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떠났다. 의외였지만 자신의 욕망을 과감하게 바깥으로 꺼내보인 선배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다른 한 선배기자는 무작정 떠난 듯 했다. 단정짓지 못함은 그가 사직한 이유를 직접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격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에 열정이 있었다. 그 역시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있었고 베스트셀러급 책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한번쯤 만날 기회도 있었지만 작심하고 찾아가지는 않았다. 블로그에서의 만남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직을 알게 된 것도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는 사직을 블로그에 ‘공표’하기 얼마전 ‘정동진에 가고싶다’고 했다. ‘정동진에 가고싶다’는 그의 글 곳곳에는 이미 ‘사직의 징후’가 있었다. 일탈을 목젖 깊숙이 삼키고 있는 그의 지난시절이, 글 행간행간에 녹아 스며 있는 듯했다. 그런 그가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정동진에 있었다. ‘책을 쓰기로 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두 선배가 떠났다. 그래서일까. 연초부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기존에 맡고 있던 일외에 가욋일이 붙어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지만, 온전히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머릿속에 맴돌던 것들을 쏟아내고 정리해 보지만, 이래저래 쓸데없는 보고서 뿐이다.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해 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공허하다. 불안을 자위하기 위한 체면도 걸어보지만 매번 허사다.

단지 머릿속에서 맴도는 건, 두 선배처럼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혹 스스로에게 침뱉어 온 인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학을 슬며시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어디론가 무작정 도망칠 비상구를 찾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스물에 못한 일을, 서른에 하지 못한 일을, 지금 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섣부른 용기를 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회사를 떠난 두 선배처럼 내면의 욕망을 과감히 밖으로 꺼집어 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완의 사직’, ‘준비되지 않은 욕망’, 올해도, 여전히, 그것은 보류다.

 

 

 

[주말 에세이] 백승운(영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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