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 합의, 한나라당에 면죄부 준 데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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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은경(민언협).."일제고사.취수원이전..지역언론 살 길은 언론악법 폐기 뿐"

지난 한 두 주일 동안 언론의 창에 비친 큰 이슈는 단연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강행처리 움직임>과 이를 저지하려는 언론노조의 총파업과 시민사회단체의 저지노력이었다. 오염된 식수에 넌더리 치는 대구시민을 의식했음인지 대구시가 식수로 안동댐 물을 끌어오겠다고 한 발표가 일파만파를 일으켰고 언론보도는 계획의 근본 문제점의 정곡을 찔렀다. <학업성취도 평가 보고 사태>(‘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어려운 말 대신 누구나 경험해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제고사’로 부르기로 하자.) 관련 보도는 일부이긴 하지만 학교 관리자와 교육 관료들이 얼마나 비교육적으로 교육을 다루고 있는지 실상을 보여준 ‘거울’이었다.

학업성취도평가 조작 사태

지역 공중파 텔레비전은 일제고사 성적 조작 사태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다.
<학업성취도평가 내일부터 전면 재조사>(24일, 대구MBC 뉴스데스크), <운동부 학생 배제>(24일, KBS대구 뉴스9), <답안지 폐기’ 드러나>(24일, TBC 프라임뉴스 등) 일련의 보도는 일제고사의 결과가 좋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적거나 아예 한 명도 없다는 교육청 보도 자료를 곧이곧대로 전달했다가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오류 보도’로 시작했다. 우리지역 학생들은 공부를 잘 했고 그만큼 교사들이 잘 가르쳤으며 그렇게 하도록 한 교육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홍보하려한 의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담당 교사가 자리를 비워 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해당 학교나 교육청의 ‘실수’ 주장을 기자가 확인해보니 ‘실수’가 아닌 ‘조작’ ‘조장’이었다는 보도로 이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다.

일제고사 보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기자가 취재해보니 운동부 학생(체육특기자)들은 아예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게 교장이 조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24일, KBS대구, “운동부 학생 배제” 대구MBC ‘학업성취도평가 내일부터 전면 재조사’)
둘째, 일제고사 실제 성적과 보고내용이 맞는지 다른지 확인해보려니까 어떤 초등학교는 답안지를 아예 전량 없애기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24일, TBC, ‘일부학교  답안지 폐기’)
셋째, 일제고사 문항을 교육전문가와 교사들이 분석해보니 이해력 위주 문항 들이었고 적용능력이나 분석능력, 창의력 관련 문항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대구MBC “성취도 평가 한계")

교육관.교육목표 실종, 교육관료 보신이 빚은 작품

그러면 기자들이 이렇게 확인 보도한 일제고사 문제점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첫째, 운동부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게 한 조치는 한 마디로 그 동안 교육당국이나 학교에서 주장해온 ‘성적향상’과는 거리가 먼 구두선(口頭禪)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또 일제고사 결과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교육당국 주장대로라면 운동을 하는 유년기나 청소년기 운동부 학생들은 운동만 하고 공부는 뒷전으로 돌려도 된다는 말이 된다. 이는 운동부 학생들을 운동기계로 만드는 조치로서, 학교 홍보에 혹시 득을 볼 수는 있겠으나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학교 스스로 처음부터 공부와 담 쌓은 ‘버린 자식’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비교육적 조치임에 틀림없다. 이는 교육관이 잘못됐다는 증거다.

둘째, 일제고사 성적 조작 의혹이 터지자 교육청은 전면 재조사하겠다는데 일선 학교에서는 답안지를 모두 폐기했다는 것은 일제고사 관리상의 문제, 교육행정 난맥으로도 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일부 교사.교장, 교육 관료들이 보신을 위해서라면 교육은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좋다는 태도를 읽게 한다. 답안지 폐기는 조직적인 문제이다. 교육은 어찌 되든지 간에 교육 관료는 살아남겠다는 철 밥통 복무자세의 반증일 뿐더러 조직의 이익 챙기기 생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읽게 한다.

셋째, 지식과 이해력 위주로 평가하고 종합,분석능력을 달아보거나 창의력 측정 문항을 전혀 출제하지 않은 것은 학교 교육의 목표가 흐릿하거나 상실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과학 한 과목을 예시했으나 3년 동안 실시한 과학과목 시험 문항을 분석한 것이어서 반쪽 평가 또는 반의 반쪽 평가를 의미하는 교사.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은 경청할 만한 것이다. 이 지적은 우리 학교 교육의 목표가 과거와 달라진 게 없이 구태의연하다는 우울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일제고사 파행'의 본질은?

그 결과 일제고사를 지금의 방식, 지금의 내용으로 실시한다면 한계가 뻔하므로 "학업 성취도 평가 오류보고 이후 평가 자체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23일, 대구MBC ‘평가 폐지 촉구’)는 것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 받기를 원하는 학부모들이나, 교육 목표를 제대로 세우고 투명하게 교육적으로 관리하기를 요구하는 교육단체의 당연한 목소리로 봐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시험 관리의 투명성 확보 못지않게 교육목표가 바로 세워지도록 일제고사 실시 여부, 일제고사 내용을 따져 큰 흐름의 정책에 반영되고 학부모 시청자들의 교육적이고 비판적인 교육담론 형성에 기여할 본질적 보도가 적었던 것도 사실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교육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고질'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는 데 대해 다수 학생들이나 학부모, 교사들이 학교 서열화를 부추기는, 극히 비교육적인 결과가 현실화 될 것을 우려해 반대했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결과는 안타깝게도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일제고사 사태에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됐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인데도 정부가 서둘러 전국 규모의 일제고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가 부랴부랴 이달 31일로 연기하고 부분적으로만 치르기로 한 것은 그만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고 그것이 일제고사 사태로 터져 나왔음을 확인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고사 연기, 부분 시행이 해결책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교육을 비교육적-정치적으로 다루려는 ‘고질’이 치유되지 않는 한(체질 개선 노력) 그리고 그것을 언론이 감시사지 않는 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교육관료 체제 안에 상존하기 때문이다. 교육환경에 언론이 긴장하고 눈길을 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취수원 안동댐 이전 졸속 계획 발표

수돗물 1,4-다이옥산 오염 사태를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대구의 언론이 적극 보도한 결과 대구시가 지난 23일을 전후해 취수원을 안동댐으로 옮기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김범일 대구시장은 8천여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정치권과 협의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이전 계획까지 발표했다. 대구시공무원노조는 즉각 환영 메시지로 화답(23일, 대구MBC ‘공무원 노조 취수원 이전 “환영”’)했으나 정작 안동댐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 지역 대표는 ‘협의한 바 없다’고 반박하면서 ‘안동댐과 인접한 지자체와 먼저 협의해야 할 사항’임을 강조했다.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계획은 일방적인 ‘자가발전’이었음을 보여줬다. (24일, 대구MBC ‘논의 없었다’)

국토부, '취수원 안동댐 이전은 낙동강 파괴'

보도를 종합하면,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계획 발표는 발표로만 그친 게 아니다. 식수와 농업용수 등 낙동강 물에 생존을 걸고 있는 낙동강 연안 지자체와 협의-공조를 거지치 않음으로써 큰 불화를 잉태할 수 있는 과정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 안동댐에서 대구시가 물을 뽑아 가면 장마 때면 댐 상류가 침수 위기에 빠지고 갈수기에는 댐 하류 유지수가 바닥나 이러나저러나 간에 번갈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8천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이전 비용도 대구시는 정치권의 협력으로 조달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정치권을 끌어들였으나 지역 학계에서는 ‘안전한 식수 확보를 위한 취수원 이전은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렵고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통해서 이해와 설득으로 취수원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대구시의 문제해결 방안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26일, 대구MBC ‘대구․경북 공조시급’, 24일 KBS대구 ‘시도공조 파열음’)

"낙동강 오염돼 낙동강 물 못 먹겠다" 이해 못할 발상

대구시가 질 좋은 안동댐 물을 수돗물로 공급하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방안은 낙동강 연안 주민들의 희생은 물론이고 낙동강의 파괴도 예상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자체-대구시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자칫 대결 국면)까지 예상되는 데도 대구시가 무리수를 두는 배경이 더 문제인 것이다. 하천관리의 주관부서인 국토해양부는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방안에 대해 ‘낙동강이 오염돼 있기 때문에 낙동강 물을 못 먹겠다는 대구시의 입장은 낙동강을 더 황폐하게 만들고 따라서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언론보도는 전했다. 국토해양부는 대구시의 정책 기조가 ‘대구시 살리자고 낙동강을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구시의 취수원이전계획은 선출직의 흘리기로서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선출직 시장의 무책임한 발상임을 지적했다. (27일, 대구MBC ‘정부와 엇박자’)

선출직의 '아니면 말고' 언제까지?

결국 대구시가 취수원을 안동댐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서라면 낙동강을 죽여서라도 하겠다는 ‘소탐대실’의 전형이자 선출직 시장을 둘러싼 무모한 한탕주의가 그 뿌리임을 관련 보도는 시.도민들에게 환기했고 그 점에서 취수원 이전 관련 보도는 대구시 행정에 대한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 통과 재시도 사태

한나라당이 ‘속도전’으로 통과시키려는 법안, 그 중에서도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바로 낙동강을 죽일 수 있는 ‘취수원이전계획’이나 교육 관료들만 살 판 나고 교육은 피멍들게 되는 ‘학업성취도 평가 보고 사태’가 방송까지 거느린 조선.중앙.동아의 여론몰이 속에 파묻히고, 시.도민, 학부모.교사들은 교육.행정 소비자이면서 제대로 된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불을 보듯 예견된다는 것이다.

교육과 식수 등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는 물론이고 이를 맡아 관리하는 행정 관료를 감시할 효과적인 수단-지방의 관점에서 작동하는 언론매체-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는 현실이 미디어 악법의 국회통과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지방의 관점에서 작동하는 언론 살려야

여야가 비록 미디어 관련 법안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합의했지만 그것은 언론보도에 따르면 날치기 처리의 면죄부를 한나라당에 준 데 불과하다. 그래서 언론노조는 폐기될 때까지 투쟁할 방침이다.

지방민들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먹고 낙동강을 누리며, 자녀 교육에서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지방의 언론은 살려야 한다. 그 길은 미디어 악법 폐기 외에 달리 방도를 찾을 수는 없다고 본다. 정치 품에 안긴 언론은 정치인에게 봉사할 뿐이기 때문이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20]
여은경(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국장. 전 영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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