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다시 '냉전'으로 돌아갈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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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마흔 생일 맞은 통일부, 냉전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축하할 수 없는 '마흔' 생일

새 정부 출범 이후 단 한 차례의 남북간 당국자 회담도 하지 못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통일부가 지난 3월 1일, 40돌 생일을 맞았다. 인생으로 치면 반평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고 또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인 40살 생일이니 성대한 생일 잔치상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의 남북관계를 보면 통일부의 생일 잔치마당이 흥겨울 리 없다.

 지난 2일 오전 도렴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2층 강당에서. 통일부 창설 40주년(3월1일) 기념식이 열렸다고 한다.  지금의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이날 외부 인사들이 보내온 동영상 축사에도 축하보다 위로의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통일부의 일은 계속돼야 합니다",  "역사가 통일부의 노고를 알아줄 것입니다",  "남북관계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 등등등.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을 둘러싼 논란 끝에 가까스로 살아 남은 통일부는 그 이후에도 남북관계의 단절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본연의 대북정보 수집 업무와 통일정책 기능 및 남북관계의 조절 기능은 사라진 채 통일교육과 지원 등 부차적인 업무만 남아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2차례의 정상회담을 진두 지휘하며 부서 기능의 활성화와 업무 영역의 확대를 넘어 사실상 대한민국의 안전 보장에 관한 정책 조절 기능까지 담당했던 시절은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1969년 국토통일원
 
 통일부는 3.1독립 운동 50주년이 되던 해 인 지난 1969년 3월 1일 국토통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 이승만 정부의의 '북진통일론, 승공통일론'을 넘어 장면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기본적으로 '선건설 후통일론'의 입장이었다. 즉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는' 정책이었다. 다시 말해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력배양이 뒷받침하지 않는 통일논의는 무의미하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는 또한 남북간의 역량대결에서 당시 남한이 열세인 상황을 반영한 정책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공세에 대비하고 통일문제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토통일원'이다. 이후 통일부는 정권의 성격과 남북관계의 진전과 경색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출범할 때 통일부는 직원 45명이 교육과 홍보, 자료조사 등을 담당하는 상징적 성격의 기관에 불과했다. 더욱이 외부적으로 냉전의 규정력이 강하고 정권의 대북정책 역시 강경대결 정책을 기본으로 했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의 통일부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주도하기보다는 체제 대결의 첨병에 가까웠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남북대화 기능을 이관받고 노태우정권 시절인 1990년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했지만, 남북대화가 미미해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체제 대결의 첨병에서 화해협력의 견인차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일부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국민의 정부는 북한을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함께 공존공영하자는 대북화해 협력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의 변화를 유도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이 오고가고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상황'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이었다. 북을 바라보는 기본입장이 대결의 관점에서 협력의 관점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로부터 통일부 전성기 10년이 시작된다. 1998년 11월 18일 시작된 '금강산 관광'과 2000년 8월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합의되고 2003년 개성공단이 착공되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비롯해 남북간에 수많은 사회문화교류가 진행되었다. 남북간의 교류가 흘러 넘쳐 어떨 때는 하루에 몇건의 회담이 동시에 진행되기도 하였다. 통일부가 체제대결의 첨병에서 남북화해협력의 견인차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일부의 변화도 새 정부 출범이후 도로묵이 된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일부의 위상이 순식간에 추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폐지 또는 외교부 산하의 본부 등으로 흡수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치욕을 겪었고 북한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통일부와의 대화채널을 굳게 닫아버린다.

'위상 추락' 자처한 통일부
 
 잘 나가던 통일부의 위상이 추락하고 기능이 축소된 것은 물론 통일부만의 잘못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북강경책, 대북무시책을 써 온 이명박 정부의 탓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에 대한 북의 강경대응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탓에 통일부 스스로 운신할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통일부 역시 현재의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야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부서이고 군대의 특성상 대북강경론이 우세할 수 밖에 없는 부서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통일부는 북한 당국과 수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야 하는 당사자인데 이 부서의 책임자가 북을 자극하는 언사를 해서야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6.15,10.4선언 무시한 통일부

우선 지난해 3월19일,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은 "핵 문제 해결없이는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발언으로 이명박 정부의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연계 전략을 공식화한다. 이에 북은 남북교류협력 사무소 남측요원들의 철수를 요구하고 나선다. 문제는 이 발언이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첫 대외 공식활동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3월 10일 김 장관은 탈북자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10.4 평화번영선언에 대한 수정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북이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 의사를 밝히기는 커녕 외려 앞장서 부정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북이 이명박 정부의 남북협력 의지에 의구심을 가지도록 하는데 앞장 섰던 것이다.

통일부의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에 대한 무시 입장은 이후에도 지속된다. 2009년 통일부 업무보고서인 [새로운 남북관계로의 전환]을 위한 2009년 통일부 업무 추진계획에도 6.15공동선언, 10.4 평화번영선언에 대한 언급은 한자도 되어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3.1절 기념사에서 남북간의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며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자고 제의했지만 북이 쉽게 이를 신뢰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곧바로 다음날 열린 통일부 창설 40주년 기념식에서 현인택 신임 통일부 장관은 기념사를 통해 통일부의 지난 역사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을 한다.


"창설 이후 통일부는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를 결집하고, 국민 합의를 이룩하는 일부터 착수하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들어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 통일부는 7.7선언을 기초했으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하였습니다.
북한과는 대화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남북간 화해협력을 향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해 왔습니다. 통일부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함께 명실공히 통일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며 집행하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의 합의 중 유일하게 남북기본합의서만 거론할 뿐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의 살아있는 권력인 김정일이 직접 남과 합의하고 서명한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은 언급하지 않은채 김일성 주석 당시 정무원 총리인 연형묵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만 언급하니 북의 입장에서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모욕하는 것이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진정 통일부가 기존의 남북합의를 존중한다면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을 분명히 직접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언급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아무리 기존 남북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혀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냉전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국제 질서는 전혀 딴판으로 바뀌고 남북관계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이미 대세는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며,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통일부는 한반도에서 새로운 평화구조를 창출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40주년 기념사에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직접 한 말이다. 말 그대로라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냉전의 시대가 가고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남북사이에도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의 물길이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낸 초석이 다름 아닌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이다.

통일부는 창립 31주년이던 지난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6.15공동선언의 실무를 담당했다. 그동안 외교부와 국정원,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종속 관계를 넘어 자립하게 된 것이다. 즉 다시 말해 三十而立(삼십이립)하게 된 것이다. 마흔살이 되는 올해 냉전의 유혹에 미혹(迷惑)하지 아니해야 거스를 수 없는 하늘의 뜻이자 역사적 흐름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 내어 知天命(지천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의 50살 생일잔치상에 격려와 위로의 말이 아닌 축하와 환희의 박수가 쏟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평화와 통일]

김두현 / 평화뉴스 객원기자.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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