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사랑, 아내를 '효부'로 만들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버이날> 40여년 시어머니 모시는 서문시장 문말선씨
"사랑하는 남편 어머니가 제 어머니..원하는 것 다 해드리고 싶어요"

문말선씨...서문시장에서 체육복을 파는 문씨는 40여년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대통령상을 받는다(2009.5.7 대구 서문시장 / 사진.남승렬 기자)
문말선씨...서문시장에서 체육복을 파는 문씨는 40여년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대통령상을 받는다(2009.5.7 대구 서문시장 / 사진.남승렬 기자)

"사랑하는 사람(남편)의 어머니가 곧 제 어머니죠. 자식된 도리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이렇게 상을 주시니 시어머니께 오히려 죄송하네요"

7일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 골목 한 켠에서 체육복을 파는 문말선(대구시 중구 남산4동)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40년 넘게 극진히 모셔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대통령상을 받는 문씨는 "(시어머니 봉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처음에는 취재를 부담스러워 했다.

취재가 쑥쓰럽기는 문씨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좁은 골목, 탁자 위에 차곡히 쌓인 옷가지를 정리하던 문씨 남편은 멋적은 미소를 보이며 "자식이면 해야 하는 게 효도인데, 이렇게 찾아오시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잘 모시지도 못했는데...남편 사랑이 큰 힘"

"의자도 없고 이렇게 손님을 이렇게 대해 어떡해요" 몇 번의 부탁 끝에 취재에 응한 문씨는 앉을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며 오히려 미안해 했다.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 후 문씨가 한 첫 마디는 "제가 잘 모시지도 못했는데, 나라에서 상을 주신다니 시어머니께 오히려 죄송하다"였다. 

문씨는 어버이날 표창에 대한 공을 남편에게 돌렸다.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남편의 사랑 덕에 43년 동안 어머님을 모실 수 있었다"고 했다. 결혼 후 이제껏 자신을 속상하게 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남편. 문씨는 "결혼 후 지금까지 표현은 서툴러도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며 "어머님 간병에 힘든 적도 많았지만 남편의 사랑이 큰 힘이 돼 다 견뎌냈다"고 말했다.

19살 가난한 시집살이...올해 102살 시어머니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는 내 친부모와 같다"며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상을 줘 어머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문씨 말에서는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듯 했다.

문씨의 법정나이는 59세지만 출생신고가 늦어 원래 나이는 올해 환갑이다. 문씨는 고령군 다산면에서 태어나 13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를 왔다. 이후 19살 때 당시 24살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중구 남산4동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가난한 시절, 시댁 역시 없어도 너무 없는 살림이었다. 남편은 결혼 석달 만에 아내를 홀로 두고 군대를 갔다. 엄한 시어머니와 시누이 3명, 시동생 1명... 낯선 환경 속에서 문씨의 '시집살이'는 시작돼 지금까지 시어머니(100.실제 나이는 102세)를 모셨다.

결혼 석달 만에 군대간 남편...보따리 머리에 이고..

문말선씨
문말선씨

"조그마한 집 한 채 뿐, 처음 시집 왔을 때 시댁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결혼하자마자 군대 가버린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겠어요.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보따리 머리에 이고 동네 다니며 장사를 시작하게 됐죠"

남편 제대 후에도 문씨의 보따리 장사는 계속됐다. 없는 형편에 문씨라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식구들이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서문시장에 의류점포를 얻어 20여년 이 곳에서 자영업을 해 오고 있다.


힘든 일도 많았다. 10여 년 전 시어머니가 다리와 허리 등을 다쳐 수술을 받은 후 거동이 불편해지자 문씨의 헌신적인 간병은 시작됐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반찬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매일 상에 올렸다. 오전 9시,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해 저녁 6시에 마치는 고된 하루였지만 시어머님 봉양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속정 깊으신 어머님...원하시는 것 다 해드리고 싶어"


문씨는 시어머니에 대해 "성격은 엄하셨으나 속정은 참 깊으시고 따뜻하신 어른"이라며 "연세가 워낙 높으시지만, 다리가 불편하신 것 말고는 건강하시다"고 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시지 못하시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힘들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원하시는 것 다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문씨는 지역 홀몸어르신들을 위한 선행도 실천하고 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인근에 사는 50여명의 홀몸어르신들에게 내복을 사 선물한지가 5년이 넘었다. 문씨는 그러나, "추운 겨울,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어머님 친구 분들께 내복 사드린 것 뿐"이라며 "봉사활동 많이 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내가 하는 것은 봉사도 아니다"고 겸손해 했다.

또, 시댁 선산이 있는 충청도의 한 시골마을, 생면부지의 어르신들에게도 매년 겨울과 봄마다 바지 50여벌을 선물해 드린다. 얼굴도 모르는 다른 지역 어르신들에게 왜 바지를 전달할까? 문씨 시댁의 원래 선산은 남편 고향인 경기도 오산. 그런데 몇 해전 오산 선산 자리에 개발이 시작되자 부부는 조상 묘를 충북 진천으로 이장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가 곧 자신의 어머니라는 문씨...그는 인터뷰 내내 "효도는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가 곧 자신의 어머니라는 문씨...그는 인터뷰 내내 "효도는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어머님 상여 갈 때 잘해달라고.."

문씨는 "어머님도 진천에 모시기로 했는데, 어머님 상여 갈 때 잘해달라고 그 동네 어르신들에게 바지 선물 드리는 거지... 우리 어머님 산소 거기 있게 되니 잘 봐달라고... 선행도 아니에요. 그저 우리 어머님 위한 일입니다"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문시장은 부모님과 함께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많아 보였다. 서민들의 정서가 묻어나는 이 곳에서 만난 문말선씨는 아직 자신의 표창 소식을 시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장사도 해야 하고 중구청이 마련한 행사에도 가야한다며 분주해 하던 문씨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한다.

"오늘 저녁 집에 가서 말씀 드리면 어머님께서 많이 기뻐하실 것 같아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때가 자식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 아닐까요"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