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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과 물(水), 그리고 국민
김수호(변호사)..."호수 같은 국민, 이러다 성난 파도가 되지는 않을까"
2009년 05월 15일 (금) 11:25:44 평화뉴스 pnnews@pn.or.kr

법(法)과 물(水)

내가 대학에서 법학개론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 '법(法)이란 물(水)이 간다(去)는 뜻인데, 법은 물 흐르는 것 같이 흘러야 한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좋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 책에서 '法이란 한자는 약자(略字)이며 원래 정자(正字)는 灋인데, 이 글자에는 물(水)과 해태(廌)가 간다(去)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灋이라는 글자는 옛날 중국 묘족이 神意裁判을 할 때 해태를 재판석 앞에 내세우면 해태는 반드시 죄 지은 자에게로 가서 뿔로 떠받는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해태가 법의 상징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해태의 석상을 즐겨 세웠다는 것이다.

法을 약자로 물이 가는 것으로 해석하든, 정자로 물과 해태가 가는 것으로 해석하든, 공통점은 물이다. 여기에 여러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일단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법 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다. 현대생활에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법의 적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태어나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국적법에 의한 것이다. 현대생활에서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물은 순리대로 흐른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법도 마찬가지로 순리대로 만들어지고,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법은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물(水)과 국민

국민은 물과 같다. 물이 많고 높으면 큰 배도 띄우지만, 물이 적고 얕으면 작은 배도 못 띄운다. 거울같이 잠잠한 호숫물도 있지만, 엄청난 파도가 치는 바닷물도 있다. 물을 너무 무서워하고 의식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물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면 물에 빠져 죽는다. 국민은 호숫물처럼 고요할 때도 있지만, 바닷물처럼 역동적일 때도 있다. 그래서 국민은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지만, 창출한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입법을 전쟁치르듯이 하겠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소리가 들린다. 국회에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한다. 영화의 익숙한 장면처럼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물처럼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다수 국민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유지, 발전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기 전, 국회의원 100여명 이상이 외유성 해외출장을 갔거나 갈 준비를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국민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국민들이 성난 파도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주말에세이]
김수호 / 변호사.변리사. 영남대 법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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