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억의 좁았던 그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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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로..."옛 길, 비 갠 공원에서 꽃 친구 이름을 부르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의 길은 대부분 좁고 긴 골목길 이였다. 길가에 쭉 늘어선 집들이 거의 내 동무들의 집들이였다. 이 길을 내 동무들과 매일 매일 뛰어 다녔지. 내가 살았던 삼덕동의 그 초라하고 퇴락한 집 옆에도 좁은 골목길이 있었지. 큰 길가의 집에서 살았던 내 동무들은 골목길에 살고 있던 애들을 ‘골목애’들이라고 불렀고 좀 경계를 했었고 잘 어울리지는 않았었다. 왜 경계를 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짧은 점심 식사 후 여느 때 처럼 병원을 나선다. 병원 바로 앞의 좁은 골목길을 들어선다. 들어선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면서 시간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골목길과 겹쳐지기 시작한다.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것은 예전의 골목길과 별 차이가 없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진다. 하지만 그때의 동무들과 모여 구슬치기를 하던 흙길은 사라지고 시멘트 블록으로 덮혀 있다. 하지만 그 블록 사이에 민들레, 질경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쁘고 어린 노란 꽃과 야생초들이 한가로이 숨을 쉬고 있다.

오늘처럼 이렇게 초여름의 비가 내리니 더욱 더 정겹고 눈물겹게 반갑다. 비갠 후 어린 시절의 그 골목길에는 많은 지렁이들이 흙 밖으로 나와서 기어 다녔지. 그들을 피해 학교를 가는 것이 그 때는 힘들었던 것 같다. 개구쟁이들은 집에서 소금을 들고 나와 지렁이 몸에 뿌리곤 하던 치기어린 철없던 장난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갑자기 섬뜩해지고 가볍게 떨린다.

몇해 전 학회 참석차 독일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때 시간이 좀 나서 중세의 도시 모습이 잘 보전된 ‘로텐부르크’를 찾아갔었다. 3.4km의성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특별한 교통수단 없이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붉고 뾰족한 지붕과 창이 많은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무작정 걸었었다. 갑자기 길이 끊어졌고 멈추어 섰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주위의 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힐 때 비로소 좁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었던 것을 알았다. 무엇에 홀렸는지... 하지만 지금도 그 좁은 골목길은 어린 시절의 나의 골목길과 많이 달랐지만 문득 문득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오르곤 한다.

북성 6길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북성로 기계공구 거리로 나간다. 한 때는 대구 시민을 다 먹여 살렸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활성화된 거리였지만 오늘 이처럼 비마저 내리니 허황하리만큼 조용하다. 허나 가게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공구들이 쌓여있다. 초등학교 친구 기호네 집도 이 근처였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옛 모습의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초등 2학년 때쯤 기호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에 가방 놔두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있다.

어렸을 그때에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 했었다. 특히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 영화를 좋아했었다. 영화가 마쳤을 때에는 이미 해가 넘어가 어두워진 후 였다. 갑자기 두려워졌고 친구 집을 갔을 때에는 벌써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당시 기억에 가게는 북성로에 있었고 가정집은 삼덕동에 있었던 것 같다. 가게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집에 돌아갔는지 가방을 찾아 갔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길을 바꿔 조금 걸어 내려오면 경상감영 공원이 나타난다. 비 내리는 경상감영공원은 나의 정원이 된다. 날씨 맑은 날 나이 지긋한 분들의 사교장인 이곳이 비가 오면 아무도 없는 나의 멋진 정원이 되곤 한다. 지난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이 하면서 나무들의 줄기와 가지의 모습과 꽃들을 보면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매화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산수유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고, 살구나무가 이토록 멋진 자태를 가지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지 알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


“산사나무, 음나무, 느티나무, 살구나무, 모과나무, 벚꽃나무, 석류나무, 산수유, 배롱나무, 소나무, 전나무, 산사과나무, 이팝나무....”
이들을 하나 하나 불러본다.
이제 이들과 친구가 된다.
친구 왈 “그런데 너희 인간들은 왜 그렇게 염치가 없니”
.........






[주말에세이]
한동로(의사. 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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