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 고(故)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울려퍼졌다.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속 글들은 2천여개 흰색의 작은 '만장'에 적혀 대구시 중구 2.28기념중앙공원 곳곳을 뒤덮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오후.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이 곳에는 퇴근시간이 아닌데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대구추모준비위 측은 "낮 시간에도 20~30명씩 줄지어 서 있는 조문객들의 행렬이 끊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며 "분향소가 차려진 24일부터 지금(26일 오후)까지 1만여명의 시민들이 조문을 했다"고 전했다. 추모방명록 6권에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이 빼곡히 적혔다. 추모준비위 측은 "2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고 했다.
조문 후 울고 있는 부인을 위로하던 이모(67)씨는 "퇴임 후 촌에서 농사 지으시며 편안하게 사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 너무나 충격"이라면서 "편안히 보내드리기에는 아직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국화꽃을 들고 조문 순서를 기다리던 손향희(31.여)씨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탈하신 분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그 소탈한 웃음을 이제 옛 사진과 영상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추모준비위원회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리본은 공원 일대를 모두 휘감아 바람에 펄럭였다. 시민들은 이 리본에 그를 보낸 슬픔과 미안함, 마지막 작별의 말을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었다. 리본에 적힌 글에는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묻어났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편히 잠드세요", "너무나 믿기지 않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그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죽어서도 당신은 나의 대통령. 당신의 진정성을 기억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원인을 한국사회의 잘못된 정치현실과 시대상황으로 바라보는, 분노와 실망이 밴 글도 눈에 띄었다. "당신을 죽인 이 나라 정치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살아남은 우리들이 지켜주겠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이 땅 민주주의도 함께 죽었다. 민주주의 죽이는 MB정권 각성하라!", "아! 이 시대를 어떡해야 할까요",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내모는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정치검찰, 보수언론! 노무현을 살려내라!"...
누군가는 노 전 대통령을 '별'에 비유해 그를 잃은 허탈감을 글로 표현했다. "사흘 전까지만해도 별은 살아서, 이따금씩 하늘이 보이면 나는 그 자리에서 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밤은 어두워도 곳곳마다 몇 개쯤 흩뿌려진 것이 내가 밝힐 줄 모르는 밤을 대신 지키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또,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이 '서울역 분향소에서'를 제목으로 지은 추모시도 대형 펼침막에 적혀 있었다. 유 전 장관은 시를 통해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 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중략)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일 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 그 사람 노무현"이라고 노래하며 노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오후 4시쯤. 몇 번을 반복해 들리던 '부치지 못한 편지'가 그치고, 공원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불렀다던 양희은의 '상록수'가 울려퍼진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삼삼오오 모여 그의 영정 앞에 국화를 바친다.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부치지 못한 편지'도 더욱 늘어간다. 그리고,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기 전 수행 경호관에게 했던 말, "담배 있나". 하필 없었던 담배. 그러나 세상과 이별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찾았던 담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영정 앞에 수북히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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