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 다시는 없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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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추모제> "바보 같은 애인.보석 같던 사람...나의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촛불 행진'(2009.5.28 대구 한일로 / 사진.남승렬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촛불 행진'(2009.5.28 대구 한일로 / 사진.남승렬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시민추모문화제가 열린 28일 밤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추모글이 적힌 수천개의 흰색 '만장'은 산책로를 따라 공원 전체를 휘감아 돌았다.

시민들이 밝힌 촛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만장에 적힌 글귀는 밤인데도 선명하다. "내일이면 영원한 이별. 그러나 저는 당신을 보내지 못합니다", "그 곳에선 꼭 행복하세요. 다시 태어나시면 정치 하지 마시고... 당신이 바랬던 시골 농부로 행복하게 사세요", "귀여운 손녀 보고싶어서 어떡해요ㅠㅠ", "내 생애 첫 투표, 대통령님이 주인공이었는데 이렇게 떠나시다니.. 보고싶습니다"

남녀노소 모두 "노무현, 당신을 기억합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 1,200여명은 공원 광장뿐 아니라 산책로, 주변 잔디밭 곳곳, 공원 앞 인도에서까지 촛불을 밝혔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미처 조문을 못한 시민들은 공원 입구에서부터 인도까지 100m이상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조문록에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이 빼곡했다. "모든 시름, 걱정 다 버리시고 이제는 정말 편히 쉬세요", "나의 대통령, 노무현.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가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 무등 탄 어린 아이,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 추모객은 연령과 계층도 없었다. 봉하마을에서의 생활을 담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나오자 많은 추모객들은 눈가를 훔쳤다. 노 전 대통령이 즐겨불렀던 '상록수'를 일제히 따라부르기도 했다. 달성에서 왔다는 시민 한원호(36)씨는 한동안 하늘을 봤다. 눈물이 툭 흐른다. 한씨는 "그동안 잘 참았는데 살아계실 때 영상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며 슬퍼했다.

대구 2.28공원을 가득 메운 1,200여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사진.남승렬 기자)
대구 2.28공원을 가득 메운 1,200여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사진.남승렬 기자)
이날 추모문화제는 시민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자유발언뿐 아니라 일부는 즉석에서 무언가를 만들기도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삼삼오오 모여 자신이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학생 김예슬(23)씨와 강채련(20)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정치권을 꼬집는 그림을 추모제 현장에서 그리기도 했다. 김씨는 "추모제에 나왔다가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물감과 종이를 사와 대통령님 서거를 추모하는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그림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도, 반성하지 않는 한나라당 정치인들을 노무현 대통령의 눈물과 국민들의 촛불이 심판해 끝내는 우리가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착하디 착한 애인이 떠난 심정"

수성구에 사는 직장인이라고 밝힌 시민은 노 전 대통령을 '바보 같은 애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정말 바보처럼 한결같이 나만 바라봐 준 착하디 착한 애인이 날 떠난 심정"이라며 "그 바보 같은 애인을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또, "순박하게 웃어주는 대통령 다시는 없을까봐, 그런 사람 다시는 없을까봐, 그게 너무 두렵다"며 "보석 같던 사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경북 봉화에서 온 이유빈씨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도와 그 인연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오늘을, 2009년 5월 23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 절대 잊지 않겠다"고 비통해 했다.

평범한 여대생이라고 소개한 한 시민은 "정치는, 정치인은 모두 더럽고 치사한 것 같아 신문 정치면은 보지도 않았는데, 그 생각을 깨게 만드신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서 "그를 지켜주지 못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또다른 대학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부와 기득권에 서민들의 존재, 촛불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 시민은 "노 전 대통령은 진보주의의 좌표가 아니라 우리와 다름없는 소탈한 한 인간이었다"면서 "노 대통령을 본받아 나라와 서민을 위해 촛불과 같이 태워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노란 풍선... 한 시민이 이 풍선에 '행복'이라고 적었다
노란 풍선... 한 시민이 이 풍선에 '행복'이라고 적었다
추모문화제 막바지, 무대 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했던 수십개의 '노란 풍선'이 하늘로 솟는다. 시민들은 "아!"하는 탄성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누군가 날아오르는 풍선을 겨우 잡아 매직으로 글을 남긴다. "행복". 이유를 묻자, 그는 "그 분이 가장 바랬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의 행복..."

추모문화제에 앞서, 대구시민추모위원회는 이날 오후 7시 추모제를 열고 '촛불 행진'에 나섰다. 시민 1,200여명은 2.28공원을 공원을 출발해 동성로 통신골목, 대구백화점, 한일로를 거쳐 다시 2.28공원까지 행진했다. 10여개의 만장을 앞세운 행렬 속 시민들은 '상록수'와 ''부치지 않은 편지' 등을 부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추모제가 열릴 때 쯤 2.28공원 인근에 전경버스와 전경을 배치해 빈축을 샀다. 특히, 시민들이 추모문화제를 하기 위해 다시 2.28공원 입구에 왔을 당시 수십명의 경찰이 행진을 가로막아 비판을 받았다. 한 시민은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죽어 국상 중인데 경찰이 왜 나와있는지 모르겠다"며 "무엇이 그토록 겁나길래 이렇게 까지 하느냐"고 성토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그림을 그리는 김예슬(왼쪽)씨와 강채련씨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그림을 그리는 김예슬(왼쪽)씨와 강채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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