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헌신성을 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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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이충렬..."작품에 대한 목마름..나를 치료한 힐링무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로망을 꿈꾸기보다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헌신과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일하시는 아버지, 소를 닮은 아버지, 아버지를 닮은 소..."

이충렬 감독(사진.남승렬 기자)
이충렬 감독(사진.남승렬 기자)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제작한 이충렬 감독은 4일 영화 기획의도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이 감독은 이날 '워낭소리를 통해 본 삶과 영화'라는 주제로 대구MBC 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아버지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강연은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대구사회연구소>가 지난 5월 28일부터 오는 7월 9일까지 여는 '2009 민주시민교육아카데미' 두 번째 강좌로, 시민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이 감독은 자신을 '이름없는 삼류 PD'라고 소개하며 워낭소리를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워낭소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한 때는 극심한 외환위기로 이 땅의 아버지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 그는 외주제작을 하는 비정규직 독립PD. 노인과 어린이 프로그램부터 드라마와 코메디까지 '잡식성'으로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이 만든 프로가 '돈벌이'로 전락하는 데 따른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작품' 대한 심한 '목마름'을 느꼈다.

이 감독은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그 때, 아버지를 주제로 잡고 무뚝뚝하지만 자식에게는 한없이 헌신하는 아버지들의 우직함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제작 과정에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말을 못하는 소, 귀가 어두우신 데다 무뚝뚝하신 할아버지,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색해하시는 할머니... 근접 촬영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특히, 할아버지는 '싫어, 안돼, 집어치워' 이러한 단답형으로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 자랑 하실 때만 빼고요. 경북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근접촬영이 여의치 않자 이 감독은 기존 다큐멘터리에서 금기시하는 '서정성'을 선택했다. "다큐멘터리의 전형인 '서사성'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액티리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대신 서정성에 중점을 두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는 그들의 '관계'와 '소리'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그림 놓쳐도 좋으니 대화와 갈등을 소리로써 포착해야겠다는 생각에 원거리 촬영을 하자 피사체들의 어색함도 사라졌다"면서 "워낭소리, 할머니의 잔소리, 새 소리, 농기계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소리들이 관객들의 노스탤지어(향수)를 자극하는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민주시민교육아카데미...'워낭소리를 통해 본 삶과 영화'(2009.6.4 대구MBC  / 사진.남승렬 기자)
민주시민교육아카데미...'워낭소리를 통해 본 삶과 영화'(2009.6.4 대구MBC  / 사진.남승렬 기자)

그는 또, 워낭소리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치료한 '힐링무비'(Healing Movie)였다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느릿느릿한 할아버지와 소의 걸음은 물욕적이고 속도만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대비된다"면서 "할아버지의 정직한 노동을 통해 절제와 비움, 여유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또, "영화에 담긴 절제와 비움, 여유 등이 잊혀져가는 존재인 고향과 부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이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준 것 같다"며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찝찝한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를 영화 곳곳에 담아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워낭소리는 '정치적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일부에서는 워낭소리가 아니라 '원망소리'라는 표현을 하며 이명박 정부의 '속도'를 일거에 내리친 정치영화라고 평가하는데, 절대 정치적 올바름과 미학적 성취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며 "삶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노동을 표현한 영화"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시민교육아카데미는 오는 7월 9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대구MBC 대강당에서 열린다. 다음 강좌는 6월 11일 열리며, 고전평론가 고미숙씨가 '우리 시대의 사랑법'을 주제로 강연한다. 이어 ▶생태지역공동체(6.18/황대권) ▶대중음악의 저항성과 나의노래(6.25 /이지상) ▶섬진강과 어머니(7.2 / 김용택) ▶민주주의 그 소중함에 대하여(7.9 / 백기완)를 주제로 한 강좌가 잇따라 열린다.

이날 강연에는 시민 50여명이 참석해 이충렬 감독의 영화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강연에는 시민 50여명이 참석해 이충렬 감독의 영화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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