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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넷, 이불 뒤집어쓰고 속닥이던 그 밤들..
이은정.."행복하게 잘, 늘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 언니들"
2009년 06월 26일 (금) 09:50:17 평화뉴스 pnnews@pn.or.kr
   
▲ 강원도 어느 계곡에서 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한 2005년 여름 휴가...(사진.이은정)

요즘은 여자형제 많은 것이 참 ‘복’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 키우며 맞벌이로 살기 위해 친정과 나란히 붙어 지내는게 대세라지만 나이가 들수록 언니들이 좋아진다. 몹시 외롭고 우울할 땐 아무 이유없이 언니한테 가고 싶다.

나의 유년이 세 언니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았던 흐뭇한 추억들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을 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집안 대소사의 가장 큰 의지가 되는 것이 바로 언니들이다.

여자 넷이 3평도 채 되지 않는 방 한 칸에 20여년을 같이 오글오글 살았으니 온갖 일이 다 있었다. 옷 싸움이 가장 치열했다. 누구 하나 새 옷을 사면 일찍 먼저 일어나서 입고 나가는 게 임자였다. 새 옷 주인이 아침에 농문을 열어보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는게 아침풍경이었다. 나는 언니들에 비해 몸집이 작은 데다 막내인지라 겉옷은 엄두도 못내고 맨날 너불너불한 속옷만 물려입다가 가끔 언니들이 사놓은 속옷을 훔쳐 입기도 했다.

화장품이 금방금방 떨어져 “꼭 돈 없을 때 화장품 같이 떨어진데이~ 좀 아껴써라.”는 타박을 엄마한테 듣곤 했지만, 취직을 한 둘째 언니가 별수 없이 화장품 담당이 된 뒤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먹는 싸움이 치열했음은 물론이다. 밥이 모자란 날은 엄마가 식은 밥을 한데 비벼 놓고 숟가락 네 개를 꽂는 순간 누군가 “내꺼야!”하며 침을 뱉아도 아구아구 맛나게 먹었다.(남동생은 따로 한 그릇을 받는다.)

사춘기를 시작한 언니들이 나누는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외로움’이란 걸 알았다. 언니들의 감수성에 영향을 받아 나는 당시 중학생으로서는 꽤 조숙한 편이었다. 하루는 대학생이 된 큰언니 일기장을 훔쳐보는데 남자친구와 키스한 이야기가 적혀있는게 아닌가! 둘째, 셋째 언니들과 돌려보면서 우리끼리 낄낄거렸지만 그 때, 온 몸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 속에서 이성에 눈을 뜬 것 같다. 일기장은 아예 언니들이 볼 거란 걸 예상하고 자체검열을 거쳐 적어야 했다. 일부러 언니들 욕을 써놓은 적도 있다.

남자친구를 사귀면 맨 먼저 형제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늘씬하고 예뻤던 둘째언니한테 잘 보이려는 남자들이 우리들을 불러내어 맛난 걸 많이 사주면서 코찔찔이 우리들에게 연애상담을 할 정도였으니까. 결혼을 앞 둔 둘째언니가 그 기다란 손가락에 금반지 열댓개를 끼워놓고 "다 팔기 전에 니 한 개 골라 가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겨울밤 연탄불을 갈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당번을 정하곤 했는데, 한번은 딸 넷이 연탄가스를 마셔 큰일이 날 뻔했다. 아버지는 당장 연탄을 보일러로 갈아치웠다. 밤늦도록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할 얘기가 어찌 그리 많았는지, 엄마가 “전기세 나간다.”며 불을 끄고 나가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닥대던 그 밤들... 지금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이야기들은, 조용한 골목길을 지나가던 찹쌀떡 장수의 외침과 사춘기 소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던 라디오 음악 속에 아련히 묻어 있을 뿐.

외모도 성격도 인생도 다 다르지만, 집안의 그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극복해온 우리들만의 불문율이 있다면 ‘집안일에 공동으로 책임질 것, 누군가 한 일에 대해 절대 탓하지 말 것.’이다. 그런 과정들이 형제들의 우애를 더 두텁게 만들어 온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가장 큰 비결은, 넉넉하건 궁하건 각자가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다. 때문에, 나는 언니들이 늘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행복하게 잘 살아줘서. 내 곁에 늘 함께 있어줘서.

   





[주말에세이] 이은정


* 이은정씨는 달성군 화원읍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했습니다.

   
▲ 강원도 여름 휴가 때 식당에서..(사진.이은정)

   
▲ 서해안 서천군 신성리에서 보낸 2006년 여름 휴가...(사진.이은정)

   
▲ 영화 JSA 촬영지 서해안 서천군 신성리에서 보낸 2006년 여름 휴가..(사진.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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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넝쿨
(211.XXX.XXX.11)
2009-06-26 10:47:00
참 아름답습니다.
화목하고 건강하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살고있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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