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4.06.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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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20>
무사안일.복지부동. 三損主義...“공직사회 확 바꿔야”




김선일씨 피랍, 피살 사건으로 나라가 들끓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파병이 타당하냐의 문제는 제쳐 놓더라도, 전쟁터의 교민에 대한 안전 대책과 피랍된 교민을 구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외교능력이 총체적으로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6월 3일, APTN이 김선일씨 실종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확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문제는 한국 정부의 도덕성으로 비화되고 있다. 외신의 확인 요청을 묵살하지 않고 김선일씨의 실종 여부를 진지하게 확인하고 나섰더라도 일찍부터 손을 쓸 수 있었고, 그랬다면 김선일씨를 살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은, 어떻게 정부가 교민의 안전과 생명을 이토록 소홀히 생각하고 넘길 수 있을까 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부냐’는 지탄에 대해 정부는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외교 능력은 물론이고 도덕성마저 국내외에서 손가락질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진상을 정확히 조사하고 책임자는 엄중 문책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아가 이 사건의 본질에 주목해야 하며 진통이 따르더라도 문제의 뿌리를 도려내야 한다. 그것만이 같은 불행과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의 뿌리는 <공직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나태, 고질적인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본적 처방은 <공직사회의 총체적인 혁신>에 있다. 제도와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바꿀 것은 바꿔야 할 것이며, 공직자의 자세와 업무 관행도 획기적으로 혁신해 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는 암적 관행으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지적되어 온지는 이미 오래다. 심지어는 공직사회를 혁신하려는 정책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거나, 개혁 성향의 장관을 왕따시키고 나아가 중도하차시키는 하극상이 조직적으로 자행되기도 한다.

여기에 우월의식과 엘리트 의식까지 겹쳐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세상은 한참 앞서 나가고 있는데, 공직자들은 여전히 민(民) 위에 군림하는 개발독재 때의 공직자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향한 비판의 소리에는 귀 막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기득권을 사수하려 든다.

공직사회에 떠도는 삼손주의(三損主義)...말하면 손해고 눈으로 봐도 손해며 움직여도 손해(?)

참여정부가 정부혁신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설정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정확한 인식이었다. 참여정부는 정부혁신을 담당할 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설치하였음은 물론이고 각 부처와 지방정부에도 혁신담당관을 두도록 했다. 하지만 그것의 성공 여부는 궁극적으로 공직 사회의 혁신에 달려 있다. 공직자들의 근무 자세와 마인드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정부 혁신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공직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직시해야 하고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는 도덕적 해이와 나태를 바로보아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공직 사회의 고질병이 중앙정부만의 일은 아니라는데 있다. 오히려 지방 정부로 내려오면서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구의 공직사회에서도 三損主義(삼손주의)가 떠돈다는 이야기를 최근, 공무원들과 자주 접하는 한 시민운동가한테서 들었다. 言卽損(언즉손)이요, 視卽損(시즉손)이며, 動卽損(동즉손)이라는 것이다. ‘말하면 손해고 눈으로 봐도 손해며 움직여도 손해’라는 것이다. 말하지도 말고 보지도 말며 일하지도 말라는 공무원들 나름의 처세술인 것이다.

이러한 처세술이 공직 사회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만에 하나 진실의 일면을 반영한다면 이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의 내일을 위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공직자 문화라면, 김선일씨 실종 여부를 묻는 외신의 전화도 얼마든지 묵살할 수 있을 것이며, 기껏 57명밖에 안되는 이라크 내 교민들의 안전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아니 그 이상의 일도 얼마든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공직자의 자세와 기강과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직자들도 이제는 자신들의 문제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국민적 분노를 직시하면서 공직자 혁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참여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공직사회의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말로만의 정부혁신이 아니라 국민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공직사회 혁신을 이뤄내지 않으면 안된다. 시민단체와 언론도 사건이 터진 뒤에야 놀란 듯이 호들갑떨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공직 사회를 감시하고 공직 혁신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홍덕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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