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사칭은 무죄?" - 한국일보 전준호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06.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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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핏대’로 통하던 문희갑씨가 대구시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1998년 10월의 마지막날에 대구시청 화장실에서 ‘깡통천사’로 불리던 송모(당시 57)씨가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시청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하겠죠.

그런데 그 자살의 사유가 더 문제였습니다. 6.4지방선거 때 문 시장 선거운동을 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저서 ‘깡통으로 맺은 사랑을’이라는 책을 팔기로 했으나 선거캠프에서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대구 중부경찰서가 즉각 수사에 돌입했습니다.
경찰 출입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시장과 선거, 금품, 자살 등 기사작성을 위한 온갖 양념들이 한 가득 있는데 이를 어떻게 맛깔스런 음식으로 차려내느냐가 모두의 관심사였습니다.

당시 기자 7년 차였던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 건 해야지’라는 욕심도 무럭무럭 솟아오르면서 하루 이틀이 지나갔습니다.

송씨가 남긴 것 중에는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문 시장 선거캠프 측근들과의 대화내용이 담긴 소형 녹음테이프입니다. 유서에는 송씨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겨있었지만 이 테이프에는 쌍방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돼있기 때문에 그 내용 공개를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경찰은 그 테이프를 녹취사무소에다 맡겼다고만 했습니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같은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일부러 숨기려고 발뺌을 하는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대구에는 녹취사무소가 5곳밖에 없었고 114를 통해 쉽게 전화번호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시경 기자실 한 귀퉁이에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아, 여기 시경인데요. 거 우리가 맡겼던 녹취록 어떻게 됐습니까?” 넘겨짚는 질문에 “무슨 말씀이세요. 언제 뭘 맡겼나요?”라는 대답이 오가길 몇 차례, 한 녹취사무소 여직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녹취를 시작했는데요.”

녹취사무소를 확인하긴 했는데 아직 진전이 없다니 참 답답했습니다. 기왕 경찰을 사칭했는데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거 수사상 굉장히 중요한 내용인데 왜 그리 늦습니까. 경찰청장님도 궁금해하시는데 말이죠. 내가 직접 가서 좀 들어도 되겠죠.” 수화기에서 “그러세요”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차를 몰고 휭하니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아가씨 한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시경에서 왔습니다”라고 말을 건넨 뒤 시경에서 신분확인용으로 출입기자들에게 만들어준 출입증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손가락으로 소속사 이름은 싹 감추고 포돌이 마크만 보이도록 했죠. 소장은 멀리 출장갔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통과해야될 관문이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 얼씨구나 했죠. 소파에 앉아서 테이프를 듣고 있으려니 아가씨가 커피까지 한잔 가져다줬습니다. ‘테이프 듣게 해주는 것만 해도 황송한데 커피씩이나…’
1시간반정도 그렇게 테이프를 듣고 수첩에 옮겨 적었습니다. 테이프에는 선거운동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곤 휑하니 사무실로 들어와 기사를 써 보냈죠.

다음날 아침 시경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경찰을 사칭해 수사중인 내용을 몰래 도둑질하다시피 해 기사를 쓴 것은 절대 묵과할 수 없다”며 사법처리 하겠다고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저도 기죽기 싫어 맞고함을 질렀습니다. “수사를 질질 끌면서 뭐 잘 한 게 있다고 큰소리냐”구요.
그러나 내심 걱정도 됐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검찰에 출입하던 한 기자가 퇴근한 검사방을 뒤져 수사자료를 빼내다 구속된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녹취사무소의 아가씨가 이 일로 경찰에서 조사까지 받은 터라 미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기자의 사칭, 국민의 알권리보다 취재편의일 뿐...정당화될 순 없어”


결국 기사욕심에 벌였던 ‘사칭’ 행각은 흐지부지됐고 선거캠프 관계자 2명은 불구속기소 돼 벌금형을 받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이 있고 난 후 습관화되다시피 한 ‘사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신문사 수습시절부터 ‘사칭’은 취재방편의 하나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한 변사자의 사진을 구해오라는 선배 지시를 받고 경찰이라고 유족들을 속인 뒤 그 집의 사진첩을 통째로 들고 오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형사님, 아들 사건 좀 빨리 끝내주세요”라며 70대 할머니가 손때묻은 만 원 짜리 3장을 건네주려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사칭’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갖다댈 이유는 많습니다. ‘국민의 알권리’에다 ‘권력기관에 대한 파수꾼 역할’ 등등. 그러나 대부분은 취재 편의를 위해서이지요. 기자라고 하면 경계심을 갖다가도 권력기관을 사칭하면 쉽게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분위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심지어 껄끄러운 취재 때는 다른 언론사의 동료까지 팔기도 했으니…. 취재편의 때문에 사칭이라는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도 취재현장에서 마감시간에 쫓기면 ‘사칭’하던 습관이 불현듯 튀어나옵니다. 참 곤혹스런 순간입니다. 아직도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아마 기자로 있는 동안에는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일보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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