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재야원로 강창덕(83) 선생은 '배려'와 '외유내강'이란 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품을 기억했다. 특히, "민족자주, 평화통일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확고한 분"이라며 고인의 서거를 애도했다.
강창덕 선생은 민주화운동에 이은 '정치적 동지'로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자유당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다 7차례 투옥돼 13년을 복역한 강창덕 선생은,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대구경북상임공동의장을 지낸 뒤 정치권에 참여하게 됐다. 강 선생은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당 합당에 반대하며 이우정씨와 함께 '신민주연합'에 참여했는데, 1991년 김 전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던 평화민주당(평민당)과 '신민주연합당(신민당)'을 창당하며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이우정씨와 함께 신민당 공동대표를 맡았고, 강 선생은 통합전당대회 임시의장과 중앙위원회 의장(당 서열 3위)을 맡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19년 동지로 지냈지..."
"김 전 대통령이 그 때 나를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싶다며 여러 번 얘기 했는데, 내가 인혁당 조작사건 때문에 할 수가 없었지. 그분의 배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 강 선생은 1974년 이른 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과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8개월을 복역했다. 지난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인혁당 무죄'가 선고되면서 오랜 멍에를 벗었다.
강 선생이 기억하는 김 전 대통령의 성품은 '배려'와 '내유외강'이었다.
"동교동에서 밥반주도 한잔씩 하고 했는데, 회의 때나 식사 때나 항상 대구에서 고생한다며 배려해주셨어. 주위 사람들 일일이 챙겨주는...외유내강, 전형적인 외유내강 사람이었지"
"대구에서 재야운동 하던 시절이니 내가 돈이 없었어. 그런데 당비가 꽤 됐거든. 그때 현역 의원은 한달에 100만원, 원외 위원장은 한달 50만원이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내 당비를 꼬박꼬박 부담해주셨지. 대구에서 재야 하는데 무슨 돈이 있겠냐며..."
그러나, 그 성품 못지 않게 '통일'에 대한 신념에 강 선생은 놀랐다고 한다.
"신민당 시절부터 남북문제 통일문제로 많은 토론을 했는데, 김 전 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이었고 나는 민족자주통일론을 주장했지. 생각이 좀 달랐는데, 6.15선언 때 평양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강조하는 걸 보고 참 놀랐지. 민족자주, 평화통일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분이셨어. 그 철학이 6.15선언 때 발휘된거야. 정말 신념이 대단한 사람이야"
강 선생은 김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초청받아 참석했고, 재임시절 대구에 왔을 때 한번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퇴임 후 보지 못하다 2006년 3월, 김 전 대통령이 영남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강연할 때 인사했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강 선생은 <대한민국 15대 김대중 대통령 대구시민추모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19일 추모위원회 합동분향 때 고인의 영정에 국화 꽃 한 송이를 놓았다.
|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