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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상희' 선생 재조명을 기대한다
대구MBC '박상희 재조명' /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 / 결식아동 / 수달의 죽음
2009년 10월 06일 (화) 10:58:43 평화뉴스 pnnews@pn.or.kr

독립운동가 박상희 선생

박상희 선생의 독립투쟁을 재조명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구미지역에 일고 있다고 대구MBC가 10월 5일 아침 MBC투데이에 '박상희 재조명'으로 보도했다. 구미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박상희(1906~1946) 선생은 일제강점기 신문기자로, 사회운동가로, 해방공간에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의사를 지방 행정에서 실천하려고 인민위원회를 결성, 지도하다 대구 10.1인민항쟁 당시 출동한 미군정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 박상희 선생(사진.대구MBC)
대구 10.1 항쟁 당시 곳곳에서 성난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해 친일 경찰을 살해했지만, 구미 선산에서는 불상사가 없었던 데는 박상희 선생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좌익'이란 편견과, 아우이면서 극단적인 반공노선을 걸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작용하면서 그동안 선생에 대해 재조명되지 못했다고 대구MBC는 보도했다.

이 보도는 이어, 박상희 선생의 일제강점기 언론인 생활, 신간회 선선지부 등 사회단체 참여, 해방공간 선산인민위원회 간부로서 10.1항쟁에 참여한 자세 등을 재조명해야 할 근거로 예시했다.

알려진 대로 박상희 선생은 동아일보 선산지국 기자, 조선중앙일보 대구지국기자, 중외일보 선산지국 기자, 조선일보 선산지국장, 지역 언론인들이 보도 협조는 물론 이면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극심한 경제난 속에 허덕이는 소작농 등을 지원한 경북 '보도협조망' 선산요원(박상희, 최관호) 등 언론을 통한 항일활동, 선산 소비조합 이사, 신간회 선산지회 간사, 전국대회대의원, 선산청년동맹 서무부장 등 사회단체를 통해 선후배들과 함께 항일, 지역사회 계몽운동을 활발히 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선산군인민위원회 내정부장과 선산군 민전 사무국장으로서 선산지역 정치.경제를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민중의 이해를 반영시키는 데 힘썼다. 대구 10.1항쟁의 제1원인은 해방이 돼도 바뀔 줄 모르는 친일경찰의 득세였다.

기자가 '박상희 재조명' 보도에서 다룬 선산군의 10월 항쟁 대목은, 일제 때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던 미군정의 쌀 수집(공출), 반출에 항의하던 군민 두 명이 미군정의 총에 맞아 숨졌을 만큼 미군정의 초기 최대 실정(失政)인 곡식 수집 문제로 선산군 농민과 미군정.친일경찰이 날카롭게 대치한 이후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박상희 선생 재조명 문제는 아직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친일경찰로 상징되는 친일잔재 청산문제와 동전 안팎의 관계인데다, 박상희 선생처럼 일재 감옥에서 고난을 당했거나 해방공간에서 미군정포고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한국인 법관과 검찰이 어정쩡하게 손 놓고 있는 사이에 미군정재판에 넘겨져 재판받은 인사가 비일비재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0.1 항쟁을 취재한 이목우 기자는 "10.1사건 관계 폭동혐의자를 심판하는 마당에서, 사법의 기관장들은 미군 계엄하라는 이유로 한국인을 미군사위원회의 통역재판에 회부하는 데 묵묵좌시만 했던 것이다...해방된 이 땅에서 외국인에 의해 왜 우리민족이 재판을 받아야 하나...이것이 주민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젊은 법조인들의 생각이며 울분이었을 것이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해방공간의 성격이 일제강점에서 해방됐지만 아직 국가를 세우지 못한, 그래서 '국민'이랄 수도 없는 '인민'들이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자기 고장을 자주관리하려 한 노력 즉, '인민'의 주권이 미군정의 통치와 공존.경합하는 '복수주권기'라는 해석이 현재 학계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구MBC가 박상희 선생 재조명 움직임을 다룬 것은 한가위를 전후해 시청자들에게 우리 근현대사에서 민족과 주권을 지키려 우리 고장 선인들은 어떻게 투쟁했는지 일단을 드러내 보였다. 이날 보도는 인민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다 외세의 지배에 항거한 대구 10.1 항쟁과 관련해 타지에서 응원 온 경찰에 의해 숨진 '독립운동가 박상희 선생'과, 박상희 선생의 행보와는 거리가 아득한 '극단적인 반공노선을 걸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출발점.배경이 어디서부터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다.

대구MBC가 의제로 설정한 한 독립운동가의 재조명 문제는 그 주인공이 일제강점기나 해방공간 모두에서 민족해방과 국가 주권 회복(국가건설)에 몸을 던진 면에서 왕산 선생과 시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투쟁 성격에 차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박상희 선생 재조명에 대한 속보를 기대한다.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단신' 뿐인가?

이에 앞서, 추석을 며칠 앞둔 지난 9월 28일 대구지역 공중파 TV 채널은 일제히 구한말 의병장이면서 독립운동가인 왕산 허위 선생의 순국을 기념하는 기념관 건립에 관한 기사를 다뤘다.

KBS대구는 "구한말 항일 의병장인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는 왕산 기념관이 오늘 구미 임은동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왕산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추모시설과 도서자료실 등을 갖추고 허위 선생의 사진과 유품 51점을 전시합니다"라고 알림성 단신  기사로 다뤘다.

대구MBC 는 "개관식에 앞서 선생의 주도로 구성된 의병연합군의 서울진공작전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연극(왕산, 구국의 혼)이 공연돼 눈길을 끌었다"고 개관기념식 상황과 함께 왕선 선생의 손녀 허로자 여사의 인터뷰로 일신을 돌보지 않은 당시 혁명가들의 조국독립 일념, 왕산 선생 순국 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곳곳에 흩어져 고난을 겪은 상황 등을 전했다.

TBC는 1907년 전국의 의병을 모아 13도 연합창의군을 조직한 뒤 군사장으로서 서울 진공 작전을 벌이다 일제 헌병에 체포돼 순국한 의병투쟁 경위와 함께, 개관한 왕산 기념관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왕산 허위선생을 재조명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높이는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왕산 선생의 기념관을 건립하고 순국 혼을 기리는 작업에 자치단체 등이 나선 것은 그야말로 '만시지탄'이지만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일부 보도에서 보이듯 매일 있는 행사 다루듯이, 또는 특정 공무원 얼굴을 예외 없이 부각해 왕산기념관 개관이 '낯내기' 행사로 비치게 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왕산 선생을 '일제와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어른' 정도로 막연하게 비춤으로써 과연 이 보도를 시청한 시.도민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열의 희생정신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을지 조심스러웠다. 왕산 선생이 목숨을 내놓고 투쟁한 대의가 기자 보도임에도 선명하지 않았다.

왕산 선생과 동지들이 벌인 투쟁은 당시 전국적인 민족적 거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왕산 선생이 의병투쟁을 벌인 시기는 태프트-카츠라 밀약과 제2차 영일동맹, 러-일 전쟁을 결말짓는 포츠머쓰 강화회담에서 일본은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종주권.보호.탁월한 이익을 보장받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 했고 여세를 몰아 대한제국의 군대마저 해산시킨 상황이었다.

경찰권이 일제에 넘어갔고 군대마저 해산당한 나라가 어떻게 주권이 있는 나라의 모습인가? 왕산은 그것을 알았기에 주권을 되찾으려고 목숨을 걸었고 전국의 수많은 의병부대도 그것을 위해 거병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왕산의 손녀 허로자 여사 등 그 후손들이 아직도 우즈베키스탄 등 이국땅을 떠돌고 있다. 일신을 독립투쟁의 제단에 바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독립을 되찾은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그런 것인지도 보도는 짚어야 했다.

지역 결식아동 3만명, 내년엔...

10월 6일 아침 대구MBC는 '결식아동 3만 명에 내년 급식 중단 위기' 제목으로 대구경북 결식아동 3만2천여명(대구 만3천, 경북 만9천여명)이 정부의 내년 급식지원비 삭감에 따라 방학 중에 꼼짝없이 밥을 굶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급식 예산을 삭감키로 한 것은 이 사업이 지방이양 사업이란 이유 때문이라는 것. 대구시는 재정이 열악해 정부가 국비로 지원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4대강사업과 관련해 지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수질개선사업비 부담금을 지방에 떠넘긴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과연 배고픈 약자 사정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비수도권-지방에 관심을 가지고나 있는 건지 잇따르는 뉴스는 이명박 정부의 이중행태를 행간으로 전하고 있다.

'청정 생태 환경' 지표, 수달의 죽음

지난 9월 28일 대구MBC는 뉴스데스크에서 '수달 두 마리' 제목으로 구미시 무을면 안곡저수지에서천연기념물인 수달 2마리가 그물에 걸려 숨져 있는 것을 생태사진가 한태덕 씨가 발견했다고 짧게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곳에 수달이 모두 6마리 서식하고 있었는데 이날 죽은 두 마리와 함께 모두 네 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었다. 청정 생태 환경의 지표처럼 여겨지던 수달이 떼로 죽었는데도 환경당국의 노력은 어떤지, 자치단체는 그동안 무얼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구미 수달 죽음 보도는 짧았으나 의문의 여운은 길었다.
하나, 이 수달들이 대구 신천에 살다 시민 손에 죽었다고 해도 신문.방송은 이렇게 다뤘을까?
둘, 이 수달들을 죽게 만든 '죽음의 고리'는 무엇일까?
셋, 수달들이 떼죽음했는데 왜 속보는 하지 않을까?
넷, 대구에서, …에서 신문.방송이 다뤄온 수달보도는 진짜 수달의 보호를 위해서라기보다 '청정 환경에서 서식하는 수달'의 이미지를 '청정 치적'으로 홍보하려는 정치적 욕망의 반영은 아니었을까?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수달이 우리 신천, …에도 산답니다. 우리의 신천, …강 살리기 노력, 인정해주시겠죠!'하는, 수달을 앞세운 치적 홍보 말이다.

대구 신천에서 살다 죽었다면 죽은 뒤에나마 호들갑 보도가 이어졌을 지도 모를 수달들. 아무래도 구미나 다른 시.군 강.저수지의 수달들은 수달임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대구 신천으로 이사 오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신천 밖의 수달은 너무 서럽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51]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대구MBC '박상희 재조명'
-  보도 전문. 2009.10.5 도건협 기자

일제 식민지시대 구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박상희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좌익 활동을 했다는 편견 때문에 묻혀졌던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곱 남매 가운데 세째였던 박상희 선생은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1925년, 약관의 나이에 언론계에 입문해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지국장을 지냈습니다.

좌우합작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 선산지회와 선산청년동맹 설립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4차례나 투옥돼 결국 해방을 대구형무소에서 맞이했습니다.

해방 이듬해 대구 10월 항쟁 당시 곳곳에서 성난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해
친일 경찰을 살해했지만 선산에서는 불상사가 없었던 데는 박상희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INT▶ 박준홍/박상희선생 아들
"같은 민족끼리 살상이 일어나는 이런 일이 있어서 되겠느냐. 여러분이 당한 억울한 것을
내가 대표자로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돌아가라고 그렇게 설득을 하신 겁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생은 진압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서 온 응원경찰대에 사살됐습니다.
일관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선생의 업적이 묻혀진 것은 좌익 활동을 했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학계에서는 그러나 선생이 오히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고 간부로 활동했던 인민위원회도
좌익만의 단체는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INT▶ 이윤갑/계명대 사학과 교수
"민주주의 국가면서 식민지 여러 잔재를 청산하고, 정치·경제·교육에서
균등을 실현하려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만 참가했다고 보기 어렵다."

극단적인 반공노선을 걸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오히려 가려졌던 선생의 업적을
이제는 재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고향 구미에서도 일고 있습니다.

◀INT▶ 조근래/구미경실련 사무국장
"박상희 선생은 일제 강점기 구미·선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였다.
선생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

유족을 비롯해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올해 안으로 추모모임을 결성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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