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간 30분간 아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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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이유, 설득할 수 있을까?"



둘째 조카가 태어난 지 한 달.
힘들어하는 동생 부부의 요청으로 큰 조카를 하루 데리고 있었다.
“10시쯤 자면 아침 8시까진 안 깨고 자.”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던 아이는 10시가 넘어도 잘 생각을 안 한다.

내 손을 이끌고 밥솥으로 데려가 맘마 맘마 하는 걸 두어 번, 김에 싼 밥을 고 작은 입에 쏙 우겨넣어 주면 또 얼마나 오물오물 잘 먹는지. 그러다, 밥을 먹다,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미운 세 살이라지만 이제 24개월도 채 되지 않은, 엄마 아빠라는 것만 또렷하게 말할 줄 아는 이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르며 심장이 터지도록 운다.

이제야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일까? 가끔, 밥을 먹다 갑자기, 컥, 목이 메어오며 눈물이 글썽글썽해 지는 이유 없는 설움을 이 조그마한 아이도 느끼는 것일까? 아이의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지고 땀을 콩죽같이 흘리며 동네가 떠나가라 목청이 터지라 울어대는 이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전적이고 유일한 방법, 사랑으로?

“영인아, 우리 이쁜 영인이, 고모가 많이 많이 사랑해. 오늘은 고모랑 자자, 우리 영인이도 고모 사랑하지?” 아이는 꽉 껴안은 나의 품에서 발버둥을 치고 주먹을 휘두르며 발악을 해 댄다. 조금, 배신감이 든다. 결국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운다. 아빠가 델꼬 가라는데.”
“허허허... (데리러 올 생각이 없는 웃음임을 감지한다.) 한 시간 쯤 울었나?”
“(사실 15분 정도 울었다) 응. 그쯤 되는 거 같은데. (나의 뻥을 감지했을 것이다.)”
잠시 침묵.
“알았다. 함 설득해 볼게.” 나는 결국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만다. 갑자기 투지가 불끈 솟는다. 재우고 말리!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설득? 설득해 본다고? 이 아이에게 이곳에서 자야하는 이유와 엄마 아빠가 없는 이유를 설득할 수 있을까? 우는 이유가 그것이 맞을까? 단지 잠투정은 아닐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는 아이의 속을 모르고 아이는 내 심정을 모른다. 아이의 속과 내 심정 사이에 태평양보다 더 큰 게 있다.

최근 들어 허허로운 전화와 쪽지와 메일이 유난하다. 가을이라서 그런가? ‘그냥...막막해서..’ ‘언니, 나 직장 그만두었어요...오빠한테는 말 했는데...여행가고 싶어요..’ ‘집에서 선 보라는데...그저께 선 본 친구랑 얘기하는데 울컥 하더만. 집에선...’ ‘딱 5년만 더 견디고...’  ‘내가 건강하게 보여?’ 소주잔 찍은 사진이 날아오는가 하면, 아무 말 없이 훌쩍훌쩍 우는 이도 있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소통될 수 없는 근원적인 불능과의 대면. 우는 아이를 달래는데 번번이 실패하는 엄마처럼, 아마도 자괴감 같은, 자기혐오와 자기방어의 반복된 감정 그것만은 토로하는 이나 듣는 이나 같을 것이다. 

마음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모’와 ‘조카’사이의 태평양보다 큰 그것처럼, ‘나’와 ‘타인’사이에 그것이 있다. ‘나’와 ‘타인’은 ‘우리’이기에 ‘우리’는 너무 무겁다. 그러면 ‘타인’과 ‘타인’사이는 어떨 것인가. 이성적인 우정, 정직한 이해, 이타적 친절, 엄격한 중용, 인본주의적 관용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이 오히려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닐까? 포기가 아닌 인정을, 온전한 담담함을.

그렇다면 ‘나’와 ‘타인’이 아닌,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소유격 ‘의’를 소거한, ‘타인’과 ‘타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까? 이런 젠장할, 번잡스러운, 방어적인, 결국 수치스러운 생각 때문에 오래 못살겠다. 그것은 창처럼 뾰족하고 검처럼 날카롭다. 관통하면 죽음에 이르고, 스치면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지. 

아이는 12시가 훌쩍 넘어서야 잠이 든다. 고요한 숨소리 속에 울음이 남아 가끔 흡, 흡, 하는 숨을 토하며, 천사 같은 얼굴로 잔다. 참, 슬프다. 아이란, 슬픔 덩어리다. 이번 주말, 동생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이번에도 하루 영인이 두고 가도 괜찮지?” 동생이 묻는다.
아!





[주말 에세이]
류혜숙 / 평화뉴스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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