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의 가등(街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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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령 / "온 몸 흥건히 젖더라도 결코 꺼지지 않는..."


가을이 깊어질 때쯤이면 이 도시에서도 종종 자욱한 안개를 보게 된다.
안개의 형성이야 당연히 기상의 요건 때문이겠지만,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짙게 깔린 안개를 만나면 자연적인 현상을 인지하기에 앞서 먼저 몽환적인 기운을 느끼게도 된다. 어떤 위험이나 추함 따위는 예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안개의 위용은 시공간의 존재를 무시해버린 신비감이나 황홀감으로까지 다가온다.

그런 안개를 보게 되는 날이면 시인 정현종의 시(詩) <교감(交感)>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시인은 안개 낀 밤 가로등을 보며,
 
/ 밤이 자기의 심정처럼 / 켜고 있는 가등(街燈) / 붉고 따뜻한 가등의 정감을 / 흐르게 하는 안개 // 젖은 안개의 혀와 / 가등(街燈)의 하염없는 혀가 / 서로의 가장 작은 소리들까지도 / 빨아들이고 있는 /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親和) /
라고 노래했다.

안개 낀 밤의 정경을 이처럼 황홀하게 각색하여 그 무엇이든지 안개와 ‘친화’ 한다고 믿고 싶게 하는 시 구절이며. 말 그대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적(詩的)’ 일 때만 유용하지 않을까. 신비롭고 몽환적인 안개의 실체는 수평 시정(視程)을 감소시키는 작은 물방울들이 응결하여 거대한 도시와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수만 갈래의 길, 그리고 사건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들을 감추고, 가등까지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등의 역할은 안개가 감춘 그 길들을 비추고, 사건을 기록하고,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것들을 밝혀내는 것 아닌가.

가늠할 수 없는, 분별이 되지 않는 작은 요소 요소들의 결집이 우리의 시야를 가려, 생활이, 삶이, 목숨이 ‘안개정국’인 지경임에도 그 모두가 각각의 욕정들에 눈멀어 ‘친화(親和)’ 한다고 착각해 버리는 우리들의 도시에도 진정한 가등(街燈)이 필요하지 않을까.

2009년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내년이면 이 도시를 지키고 이끌어 갈 각 단체장을 새롭게 뽑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루어 진다. 경제, 행정, 교육 등 도시의 안위와 발전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할 그들은 안개 짙은 거리를 지키고 밝히는 가등이어야 한다.

젖은 혀로 안개와 교감하는 타성에 빠져있는 기존의 가등이 아니라 안개에 부딪혀 온 몸 흥건히 젖더라도 결코 안개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그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꺼지지 않는 새로운 가등이어야 한다. 그 자리에 있어서 익숙해졌지만, 친근해지기까지 했지만 안개와 결탁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만을 조성하여, 감추고, 덮는 것에만 급급하던, 안개와 한 통속인 가등을 교체하는 것은 우리들의 힘이며, 몫이다.

아침이 되어 찬란한 태양이 이 도시를 점검 할 때 후미진 골목, 불안한 거리에 제 역할을 하는 가등이 있다면, 그 가등이 있어 밤사이 무사했다면, 아무리 지독한 안개가 이도시를 엄습한다 해도 불안하지 않을 것이며, 안심하고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세이] 김은령 / 시인


김은령 / 경북 고령 출생. 1998년 <불교문예>등단. 시집 <통조림>. 현 <사람의 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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