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의 의문사 결정, “어떻게 볼 것인가”

평화뉴스
  • 입력 2004.07.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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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21>
...“감정적 색깔공방과 원시적 이분법에서는 벗어나야”



지난 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매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1970년대 유신 시절에 옥중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죽거나 자살한 비전향 장기수들의 죽음을 <의문사>로 인정한 것이다. 의문사로 인정받은 주인공들은 최석기, 박융서, 손윤규 등이다. 결정이 파격적이라 함은 그들이 빨치산 출신이거나 남파간첩이었기 때문이다.
법규정에 따르면, 그들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음을 당한 이들로 해석된다. <의문사>의 법률적 의미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한 죽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일견 누가 보아도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수 언론과 보수 논객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었다고 우려하는 네티즌들도 적지 않다. 많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한동안 주춤하던 낡은 색깔 논쟁까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이 있고 난 이후의 논쟁과 혼란을 바라보는 필자도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번 논쟁은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한 차례 치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주제와 쟁점들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마냥 착잡해 할 수만은 없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거칠게 다투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을 통해서 논쟁 당사자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있다. 우리가 이 논쟁을 이성적으로 잘 소화해 낼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정신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매우 성숙한 사회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잘 소화해 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이다.

이성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논쟁 당사자들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흥분하거나 토론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설정해서는 이성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 또한 여러 가지 쟁점들이 얽혀 있는 주제를 놓고 토론할 때에는 이분법의 망녕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빨치산의 삶과 죽음은 무조건 나쁘고 그들을 잡아내어 처단한 권력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그 역의 이분법, 어떤 한 사람의 행위는 무조건 선이고 그와 싸운 다른 한 사람의 행위는 무조건 악이라는 식의 이분법 등, 갖가지 방식의 원시적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최소한 토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둘째, 사실 관계만큼은 쌍방간에 분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사실 관계까지 왜곡하려 들어선 안 된다.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비전향 장기수 3명에 대해 ‘의문사’ 인정 >
최석기...전향공작 위해 투입한 폭력범 재소자에게 폭행당해 사망
박융서...전향공작 위해 고문을 당하다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 끊어
손윤규...강제 전향에 단식투쟁으로 항의하다 고무호스로 강제급식 당하는 과정서 사망


따라서 여기서도 최대한 흥분은 자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상호 확인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분명히 확인해 두고 토론을 이어 가도록 하자.
첫째, 앞서도 언급했듯이 최석기, 박융서, 손윤규 등은 과거 빨치산 출신이거나 남파간첩 출신들이었다. 말하자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반대․부정하고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를 지지한 이들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특히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상황에서 그들은 적극적인 이적 행위자들이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남한 당국이 요구한 사상 전향을 거부하다가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최석기는 남파간첩 출신으로 전향 공작을 위해 투입한 폭력범 재소자 2명에 의해 폭행당해 사망했고, 박융서 역시 남파간첩 출신으로 전향공작 전담반에 의해 고문을 당하다 옥중에서 자살을 택했다. 한편 손윤규는 빨치산 출신으로 자수해 수감되었다가 고문을 이용한 강제 전향에 단식투쟁으로 항의하다가 고무호스로 강제급식을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갖고 지킬 자유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였고 국가 권력에 의한 강제전향제의 부당함에 맞섰으며, 결국에는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죽임까지 당했던 것이다.

최소한 위의 두 가지는 객관적 사실이다. 문제는 위의 두 가지 사실을 어떻게 종합적으로 인식할 것인가에 있다. 어렵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1기와 2기가 결론을 달리 내렸다. 1기 때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것은 인정되지만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들의 죽음을 의문사로 인정했다.
사상전향제에 대한 그들의 저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킨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사상전향제를 폐지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과 공유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개념을 둘러싼 논쟁부터는 간단치가 않다. 예컨대,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민주화운동은 무엇이며, 의문사는 또 무엇인가에 대해서 개념적 입장과 관점이 다르다면, 논쟁은 늘 어긋나거나 소모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진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중요한 개념들에 대해서도 관점을 모아 가는 자세와 노력이 요구된다. 여기서는 논란의 두 당사자가 갖고 있는 개념적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이성적 판단과 상호 이해의 여지를 넓혀 보고자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성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빨치산과 간첩 출신의 장기수, 그들이 전향을 거부하며 지켜려 했던 가치에 대한 논란
...그러나, “개인의 전력 때문에 그의 주장이나 행위가 모두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무관할 수는 없다.”


우선 자유민주주의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입장부터 보자. 위의 논쟁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를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사상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억압당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사상을 버리라고 물리적으로 강제되어서도 안 된다. 누구라도 한 사람의 사상을 강제할 수도, 사상을 빼앗기 위해 폭력을 행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1970년대에 위의 세 사람을 고문하고 두들겨 때리면서 사상의 전향을 강요했다면 그것은 매우 비민주적인 권력 행사였다고 해야 한다. 그에 저항했다면 그것은 사상의 자유, 즉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분명 잘못된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이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는 그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해서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지켰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나아가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소극적이나마 민주화운동의 성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면서 죽음으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이 과연 민주주의였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개인의 전력 때문에 그의 주장이나 행위가 모두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판단을 규탄하는 이들은, 위의 세 사람이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 사상 전향을 거부했던 것이고 죽음까지 불사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상의 자유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행동도 실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과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규명하고 바로 잡아야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민주화운동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가 위 세 사람의 죽음을 의문사로 해석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 역시 충분히 일리 있는 추론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가 그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서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 했다는 미시적 사실 자체에 주목했다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는 위 세 사람의 과거 사회주의 혁명가 경력과 사상에 주목했던 것이다. 어느 유추가 맞는지, 그리고 어디에 주목하는 것이 <의문사 진상규명>의 원래 법 취지에 부합하는지 필자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양 입장의 문제의식과 관점은 그것 자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는 지금 확인할 수 없는, 죽음을 앞에 두었던 그들의 생각과 내면을 판단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의 죽음이 가져온 결과에도 주목하였던 것이다. 즉, 그들의 죽음이 결과적으로 반민주제도였던 사상 전향제도와 그것을 대체한 준법서약제를 폐기시키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그들의 죽음을 민주화운동으로 넓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역시 일리가 없지 않은 주장이다.

“빨치산.남파간첩 출신...이들의 과거 행적 모두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감정적인 색깔 공방과 원시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그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진전 -- 를 가지고 그들의 행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은 주체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 실현되었든 아니든 주체의 <의도와 계획>에 의해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민주화운동, 혹은 의문사로 규정하는 것이 그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여야 하는지, 아니면 그의 특정 행위, 특히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특정 행위에 국한한 평가인지의 문제도 짚어보아야 한다.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그들의 죽음이 의문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그들의 과거 삶과 사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들의 사상과 과거 전력이 무엇이었든지, 그들이 부당한 사상전향 공작에 맞서다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 그 자체만큼은 민주화운동으로 또한 의문사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반면에 반대론자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의 결정이 그들의 삶 전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국가 기관이 세 사람의 빨치산 경력과 남파간첩 경력까지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분노한다. <빨치산도 민주화운동이란 말이냐?>,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그러한 해석의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가 주목하고 판단한 것이 그들의 죽음과 직접 관련된 그들의 행위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미시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와 같은 비난은 다분히 논리적 비약의 산물이거나 정서적인 거부인 것으로 생각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의 과거 빨치산 경력이나 남파간첩으로 행동했던 모든 것들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도 감정적인 색깔 공방과 원시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념적 성숙을 위해 우리 자신을 성찰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사상 간의 대화와 공존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할 때가 된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넓혀가는 노력 기울였어야”
...“상대방의 건강한 문제의식과 일리있는 우려들을 이해하고 접점을 넓혀가려고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은 이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한동안은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자신의 결정이 논리적으로는 일리가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동안 냉전체제에서 살아왔고 남한체제의 수호를 위해 희생해 온 국민들의 정서를 현실적으로 고려해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넓혀 가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는 지적, 그들의 결정이 결과적으로 국민적 혼란과 이념적 갈등을 불거지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서로 간에 흥분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지금의 논쟁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는 어떤 점에서 그들의 죽음을 의문사로 인정한 것이고, 또 다른 입장은 어떤 점에서 그러한 결정을 우려하고 있는지를 이성적으로 명확히 하면서, 상대방이 갖고 있는 건강한 문제의식과 일리 있는 우려들을 이해하고 또한 접점을 넓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의 판단과 그러한 판단이 내려지기까지의 문제의식과 고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우려와 그 우려의 근거도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필자가 정작 걱정하는 것은 이번의 결정을 놓고 토론이 비이성적으로 흐르고 그 결과 국론이 비생산적으로 균열될 가능성이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도적으로 오해를 증폭시키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결국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식으로 이 문제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정립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볼테르(1694-1778)는 이미 250여 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진수요 핵심인 것이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있는 자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2004년의 대한민국 국민이 250여 년 전에 볼테르가 지녔던 고민과 지적 수준만이라도 소화해 낼 수 있다면, 지금의 소모적인 갈등과 논란은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논쟁과 진통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면서 우리 국민이 지혜있는 국민으로 성숙해 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성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홍덕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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