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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헌재의 무효 결정도 가능했다
[김윤상 칼럼]..."적법성 판단 후에 별도로 유무효 판단했어야"
2009년 12월 07일 (월) 00:48:00 평화뉴스 pnnews@pn.or.kr

미디어법과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한 글을 쓰려니 주저된다. 헌재 결정은 10월 29일로 벌써 여러 주가 지났는데, 매일매일 초점이 바뀌는 언론에 싣는 글로서는 너무 낡은 주제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디어법은 현재진행형인데다가, 헌재의 결정에는 주목받지 못한 중요한 일면이 있는 듯해서 한번 짚어 두고 싶다.

헌재 재판관 9명은 신문법안에 대해서는 7:2로 방송법안에 대해서는 6:3으로 국회 절차가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가결선포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청구에 대해서는 신문법안에 대해서는 6:3으로 방송법안에 대해서는 7:2로 기각하였다.

커닝은 했지만 성적은 유효?


미디어법 통과를 기정사실화 하고 싶은 정부, 여당, 보수언론 쪽에서는 이런 결과를 환영하였다. 무효 선언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서 그랬는지, 헌재가 ‘유효’라고 결정했다고 왜곡까지 하였다. 비판하는 여론도 많았지만 역시 오해가 있었다. 헌재가 ‘커닝은 했지만 성적은 유효’라고 결정했다고들 생각하였다.

이런 반응에 대해, 헌재의 하철용 사무처장은 11월 1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헌재는 국회의 자율적 시정에 맡기자는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커닝은 했지만 성적 처리는 담당 교사에게 일임한다’는 뜻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헌재가 과연 하 처장의 해명에 맞는 결정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신문법안을 예로 들어 보겠다. 재판관의 의견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확인 청구는 판단할 필요가 없다. (민형기, 목영준)
-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시정 조치는 국회에 맡긴다. (이강국, 이공현, 김종대)
- 입법 절차가 국회법은 위반했지만 위헌은 아니다. (이동흡)
- 무효다. (조대현, 송두환, 김희옥)

국회 자율에 맡기자는 의견은 과반수 미달

재판관 9명 중에서 6명이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하는 의견을 냈지만, 국회의 자율적 시정에 맡기자고 한 재판관은 3명뿐이다. 위헌이 아니기 때문에 유무효 여부를 가리지 않겠다고 한 이동흡 재판관을 혹 포함시킨다고 해도 4명으로 과반수가 안 된다. 따라서, 헌재가 유무효 판단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헌법기관인 헌재가 대의제의 기초인 법률제정 절차에 대해 결정을 했지만 결정 이유를 알 수 없다니? 이런 이상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연계된 안건을 집단적으로 결정할 경우에는 혼자서 결정할 때와는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미디어법과 관련하여 헌재가 결정해야 할 사항은, 국회의 입법 절차가 적법한지와 위법이라면 무효가 아닌지의 두 가지였다. 이 중에서 적법성 판단은 유무효 판단의 전제가 되므로 당연히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각 재판관은 이런 순서를 따랐으므로 개인적으로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적법 의견을 낸 재판관 2명(민형기, 목영준)이 유무효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적법성 판단 후에 별도로 유무효 판단했어야

그러나 헌재는 합의체다. 당연히 적법성에 관한 집단적 결정을 먼저 하고 재판관 모두가 그 결정을 수용하는 가운데 유무효 판정을 해야 했다. 신문법안이 이런 단계적 결정을 거쳤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문제의 두 재판관은 국회가 자율적으로 시정하도록 하자고 했을 수도 있고 무효라고 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자율 시정 대 무효가 6:3이 될 수도 있었고 4:5로 뒤바뀔 수도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헌재가 어정쩡한 결정을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었다.

헌재는 왜 이런 점에 주목하지 않아 스스로 신뢰와 권위에 흠집을 내었을까? 단순한 불찰? 아니면 헌재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랬나? 헌법재판소장의 지도력 부족? 혹은 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각 재판관이 독불장군인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위해서도 그렇고, 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할 막중한 책임을 가진 헌재의 위상을 위해서도 그렇다.

   




[김윤상 칼럼 25]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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