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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주셔서...
박선현 / "기차 안 짧은 만남...더 큰 베풂으로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2009년 12월 11일 (금) 15:27:22 평화뉴스 pnnews@pn.or.kr

대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당시 나는 방송작가가 되고자 작가교육원을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기차를 타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고된 시기이었지만 힘들거나 괴롭진 않았다. 오히려 칙칙폭폭 꿈을 향해 다가간다 생각했기에 가는 길은 즐거웠고, 오는 길은 뿌듯했다.

그런 나에게 기차 안에서의 만남은 또 하나의 설렘이었다.
‘오늘은 누가 옆자리에 앉을까...
이왕이면 멋지고 잘 생긴 남자면 좋은데...히히
뭐... 남자가 아니어도 여자면 가는 길이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

그러다 보면 진한 담배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를 만날 때도 있고, 보따리 보따리 누군가에게 줄 음식을 싸가는 아주머니를 만날 때도 있고, 또 앉은 내내 이어폰을 꽂고 게임에 몰두하는 남학생을 만날 때도 있는가 하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몇 시간씩 책을 읽어 내려가는 여학생을 만날 때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이 시대의 피곤한 서민들이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대반 설렘반으로 옆자리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객실 문이 열리고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워워워~ 누구십니까. 어서오세요~
이 사람인가? 아니고... 저 사람인가?? 아니네...
그럼 이분?? 역시 아니고... 엥?? 할아버지??!!‘
그랬다. 그 날은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옆자리로 오셨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옷차림.. 그냥 할아버지다.
‘어쩌다 한 번 기차 탄 내 친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좋은 만남을 이어가더만 이 넘의 팔자는 매주 타도 안 되는구만. ㅋ~’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셨다. 이윽고 코끝을 사로잡는 김밥 냄새... ‘우앙~~ 맛있겠다...’
이럴 땐 모른 척 잠을 자주는 센스~. 그래야 먹는 사람이나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불편함이 덜 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얼마나 있었을까.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께서 도시락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이내 카트에 먹을거리를 싣고 가는 홍익회 아저씨를 불러 삶은 달걀과 바나나 우유를 사셨다.
‘영감님 꽤나 많이 시장하셨구만...’
그런데 계산을 마친 할아버지께서 톡톡 내 팔을 두드리신다.
“네??”
“이거 먹어요.”
“(급당황) 아뇨 괜찮습니다. 할아버지 드세요.”
“아니, 나는 김밥을 많이 먹어서... 같이 좀 나눠먹을까 했는데, 딸아이가 싸준 김밥이 아침엔 괜찮더니 지금은 맛이 살짝 가는 듯 하네.”
“?!.. 아...예...”
“어여 먹어요.”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어른이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먹는 거야. 우리 손녀 같아서 그래~”
“(주저하며) 그럼 다는 너무 많고, 같이 드세요”
“아이고 몇 개 된다고 이걸 같이 먹어. 어여 들어요. 목 막히면 이것도 좀 마시고.. ”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의 흐뭇한 미소 앞에서, 또 ‘저 아이가 어떻게 하나’ 레이더망을 쫙 펼치고 있는 승객들 앞에서 서너 개나 되는 달걀을 먹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보여주신 호의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씩씩하게, 끝까지 다 먹었다.
난생 처음 기차 안에서 잠깐 만난 나를 손녀 같다 여기고 마음을 써주신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모르고, 그저 젊고 잘 생긴 남자가 아니라고 급실망 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아직도 기차 안에서 이런 만남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 속에 세상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이젠 버스 안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받아주는 어른들도 잘 보이지 않고, 학생들도 자신의 가방을 선뜻 맡기지 않는다. 하다못해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모습도 보기 힘든 요즘이니 기차 안에서 모르는 이에게 음식을 사주고, 그걸 웃으며 지켜봐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이 추억은 나에게 참 소중하다.
언젠가 나도 호호 할머니가 되면 아이들에게 이런 추억을 선물해주는 ‘어르신’이 되리라.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나의 숙제다.

“할아버지~ 어디 계시든 편안하세요.
할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호의, 더 큰 베풂으로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제 인생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주말에세이]
박선현 / 방송작가. 대구KBS 1R '아침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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