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서, 화가 있는 집- 서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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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를 시작하며> 김진국 / "매화꽃 피었습니다. 곧 지겠지요..."


0.  대문을 열면서....

   제가 평화뉴스와 인연을 처음 맺게 된 것이 <인의협> 일을 할 때, 회원들과 함께 <평화뉴스>에 <인의협의 의료진단>을 연재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 매체에 의료, 건강정보가 넘쳐날 지경으로 쏟아지고 있었지만, 정작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건전한 의료, 건강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인의협>내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사업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평화뉴스>측의 요청에 의해 이런저런 잡문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4-5년의 세월의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평화뉴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될 무렵, 시간이 좀 지나면 세상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몇 년 흐른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그저 사방팔방이 아득하기만하고,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세상이 거꾸로, 때로는 미쳐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세상은 정말 마음 둘 곳 없고, 정 붙일 곳 없는 삭막한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처참하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했지만, 쉽게 남 탓을 하거나 원망하기도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세상을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미디어의 변화가 제일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권력의 입맛에 따라 사람을 찍어 내기도 하고, 발표내용을 ,"맛사지" 하기도 하고, 있었던 사실이 없었던 일로 바뀌기도 하고, 지극히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을 "오해"라 몰아붙이는 일들이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군함이 두 동강난 채 가라앉고, 수 십 명의 젊은 생명들이 배속에 갇혀 가라앉아 있는데 진실은커녕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 사실을 제대로 캐보려는 언론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참 갑갑한 세상입니다.

 참여정부 출범 전후로 인터넷 언론의 위력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왠지 하나같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둘째치더라도 말과 글이 권력 앞에 위축되는 시절이다 보니 인터넷 매체의 활기가 예전만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겠지요. 어려울 때일수록 말과 글이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중국의 고대, 춘추전국시대를 백가쟁명의 시대라 하는 이유는 무법천지와도 같은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길을 찾기위한 서로의 몸부림이 그만큼 치열했고, 치열했던 만큼 반성과 전망의 말과 글들도 치열하게 쏟아져 나온 때문이겠지요. 그런 말과 글들이 모이고 섞이면서  수천 년의 생명을 지닌 학파(儒家, 道家, 墨家....)들이 형성되었겠지요.   

 우리 지역에서 <평화뉴스>라는 인터넷 매체가 생긴 지도 꽤 여러 해가 지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연령과 비교하여 보면 걸음마 단계는 훨씬 지난 것이지요. 지역사회에서 <평화뉴스>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였는지는 제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판단은 제가 할 노릇이 아니고,  대신 저는 이제  걸음마 단계를 지나 성큼성큼 걸어가는 <평화뉴스> 어깨 위에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걸쳐 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보따리를 사람들 앞에 펼쳐 놓으려면 작은 공간 정도는 하나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평화뉴스>라는 공간에 작은 집을 하나 지으려고 합니다.  시도 있고, 글도 있고, 그림도 있어 편안하면서도 자유롭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조용하고 아담한 집입니다. 당호(堂號)는 서류당이라고 하였는데, '이슬 머금은 석류나무가 있는 집' 정도가 되겠네요. 집터가 자리 잡히면 당연히 집들이도 한번 해야겠지요.

 아!  몰론... 서류당에 걸릴 시, 서, 화는 제가 쓴 시(詩), 서(書)나 찍은 그림(사진)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시서화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나 서, 또는 이야기를 모아 묶어 둔 것이 책이라 부르는 것일진대, 장자는 책을 일러 "옛사람의 찌꺼기(糟魄)"라 폄하한 바 있습니다. 수레바퀴를 깎는 목공에 불과한 윤편(輪扁)의 입을 빌려 제나라 환공(桓公)이 읽고 있던 성인의 이야기책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책을 옛사람의 찌꺼기라 했다 해서 당대의 사상조류를 꿰고 있던 장자가 책을 읽지 않았을 리 만무합니다. 당시 실천없는 지식인의 위선과 교언영색을, 그리고 현실과 현장에서 동떨어진 고담준론을 겨냥한 일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길이 막막할 때는 뒤로 돌아가는 지혜가 때로는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옛 것은 오늘을 반성하는 근거이기도 하고, 내일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겠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들도 합니다. 경험을 활자로 바꾸어 묶은 것이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 경험은 별 쓸모가 없는 모양입니다. 경험이 천대받는 사회에서 밑천이 경험뿐인 노인들은 갈 곳도 오라는데도 없습니다. 노인이 안 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그래서 화려하지만 참 슬픈 세상인거지요.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기 보따리가 언제 밑천을 드러낼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들은 토막글일 수도 있고, 하품나게 지루하거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저 꾸역꾸역 미련하게 밀고 나가 볼 생각입니다.
 

                        춘사(春思)-가지(賈至, 718-772 盛唐)

草色靑靑柳色黃(풀빛은 푸르고 버들가지 노란데)
桃花歷亂梨花香(복사꽃 어지러이 흩날리고 배꽃 향기 내뿜는다)
東風不爲吹愁去(봄바람은 수심을 불어 없애주지는 않고)
春日偏能惹恨長(봄날은 원한만 더 깊게 만든다)  

 
벌써 4월인데, 아직도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무거워 보입니다. 천길 바닷속은 더 차갑겠지요. 거짓이 진실의 목을 조르고 있는 세상입니다. 군대도 안갔다 온 사람들만 골라모아 지하벙커에서 안보회의를 하는...

그래도 그래도 허허! 웃어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분노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이지요. 풍류와 해학이 없는 저항은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합니다. 스스로 지쳐 쓰러지거나 변절하거나...

 중요한 사실 하나! 꽃은 피고 진다는 것... 그것만큼은 동서고금을 떠나서 변함이 없는 사실이이고, 감출 수도 없는 사실입니다. 매화꽃 피었습니다. 곧 지겠지요. 매주 월요일 찾아 뵙겠습니다.

글. 김진국 / 의사. 신경과 전문의

매화꽃 피었습니다. 곧 지겠지요...
매화꽃 피었습니다. 곧 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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