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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픈 세상 끝 '숨 쉬는 노동자 쉼터'
장명숙 세실리아 ⑥ / "힘겨워도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2010년 06월 16일 (수) 09:22:18 평화뉴스 pnnews@pn.or.kr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그가 좋아하는 달팽이의 노랫말입니다. 달팽이의 세상 끝이 바다이듯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세상 끝이 있습니다. 그가 맞닿고 싶은 세상 끝은 노동자 곁을 맴도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도 세상 사람들과 등지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희망 이야기 입니다. 장만해 놓은 시골집을 ‘노동자 쉼터’로 꾸미고 싶은 이유입니다.

식모살이- 직물공장- JOC- 선거- 노동자신문- 농장...

그는 이런 꿈을 꾸고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돌아왔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식모살이로 사회생활에 발을 디딘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직물공장에 들어가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며 노동자의 아픈 삶을 체험했습니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활동으로 시작한 노동운동과 생사의 고비마다 그의 곁을 지켜준 노동형제들은 현재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 뛰어든 91년 지방선거는 그에게 현실의 벽과 기대를 동시에 맛보게 했습니다.

   
▲ 장명숙 세실리아
그는 선거 뒤 곧바로 노동활동을 이어갑니다. 이듬해 노동자학교 상임위원과 노동자학교장을 이태 정도 맡습니다. 노동정책연구소와 노동자신문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때 자기 회사 돌아가는 것은 알게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경제 분석교실을 운영했다가 ‘조합주의’, ‘경제주의’라는 험한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가정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공장 다닐 때 외에는 제대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노동을 해서 밥 먹고 사는 정도였습니다. 결혼이후 아이도 생겼지만 뚜렷한 수입원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가정 경제가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94년부터 2년 남짓 산수농장을 운영해보지만 자발적인 폐업을 하게 됩니다.

집마저 날리고...

“안녕하십니까. 이 지역을 담당한 ◯◯화재 장명숙 입니다. 좋은 정보가 있어 알려 드리러 왔습니다.” 그는 모르는 집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이 열리면 이렇게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그는 왜 반은 어울리고 반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보험 영업을 하게 된 것일까요. 지난 96년 4․26 총선에 남편이 집을 잡혀 출마한 뒤 빚을 안고 낙선한 때문입니다.

남편의 출마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로 후유증을 안겼습니다. 선거전 운영하던 가게(산수농장)도 정리한데다 하나 남은 집마저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해 6월,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법인 보험영업을 택한 것입니다. 대구에서 상대적으로 낫다는 수성구의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몸으로 부딪쳤습니다.

“주변에 딱히 보험을 들어줄 사람이 흔치 않았습니다. 우선 보험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보험에 들만큼 형편이 좋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1천만 원을 빌렸습니다. 3년 뒤에 갚기로 하고, 1년간 생활비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70년대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를 떠올렸습니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성, 헌신성을 약속할 수 없다면 그 집에서 떠나야 한다.’는 경구입니다.

세상과 진하게 부대끼며 흘러온 삶...

잠시하고 끝낼 작정으로 뛰어든 보험일이 이미 15년째를 맞았습니다. 앞으로도 7~8년은 더 벌어야할 것 같다고 합니다. 현재 고객은 5백 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개인별로 백만 원을 넘는 고액 고객은 없다고 합니다. 지난 정권 때나 지역의 알려진 사람들이 한번 찾아오라고 기별이 와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움츠려 들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당한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장명숙 세실리아. 천상의 백합은 아닐지라도 그는 세상과 더불어 변한 만큼만 바뀌었습니다. 그의 삶은 세상과 진하게 부대끼며 흘러왔습니다. 그의 메일주소가 5.18인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의 남은 꿈 역시, 지치고 힘겨워도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숨터이자 쉼터에서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낯선 세상과도 친해졌겠지요.

   



[박창원의 인(人) 15]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세 번째 연재입니다.
직물공장 여공에서 대구의 노동운동가로 살아 온 장명숙(세실리아)님의 이야기입니다.
장명숙님과 함께 활동하셨거나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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