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상과 해학, 웃음과 눈물을 다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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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쟁이 김종흥 ① / "나무뿌리에서 삶을 다듬다"


"여보 각시, 사람 괄세하지 마소. 일가산에서 늙은 중이, 이가산 가던 길에, 삼노 노상에서 사대부녀를 만나, 각시 오줌 냄새를 맡고, 육정이 치밀어서, 칠보단장 아니 해도, 팔자에 있던동 없던동 구별할게 뭐 있니껴? 여보 각시, 몸이나 한 번 주오~."

안동 하회마을 어귀 ‘목석원’(木石圓) 아랫마당. 직장인인 듯 중년과 청년이 잘 섞인 남녀 한 무리가 좁다란 마당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음을 배우며 연방 즐거워합니다. 이들은 별신굿의 알짜 볼거리인 탈놀이를 전수자로부터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줄을 친 동그라미 안에선 탈을 쓴 중늙은이 한 사람이 ‘으쓱으쓱’ 두 팔을 휘저으며 사설을 합니다. 그가 왔다 갔다 하며 사설을 한 도막 할라치면 조금 떨어져 앉은 젊은 북 잡이는 거기에 맞춰 중북을 울리며 장단을 맞춥니다. 급기야 중늙은이가 파계승마당에 이르러 승려가 부네(婦女)의 오줌 내를 맡는 원초적 모습을 보이며 ‘십자놀이’를 읊자 웃음보가 터집니다.

연신 땀을 훔치는 중늙은이는 연희를 하랴 설명을 하랴 낱낱이 탈을 씌워 가며 지도를 하랴 눈코뜰새 없습니다. 그는 차림새도 독특합니다. 흰 머리를 풀어 뒤로 동이고 수염은 허옇게 기르고 오로지 한복 차림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은 탈놀이 전수가 다는 아닙니다.

그가 지내는 목석원의 자그마한 방에 들어서면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 방망이를 휘둘러 시커먼 끌을 때리자 소나무 원목에서 나무 파편이 총알처럼 사방으로 튕겨나갑니다. 우리 조상의 삶 속에 녹아든 풍상과 해학, 웃음과 눈물이 오롯이 역사 속으로 뭉뚱그려져 전해오는 장승을 다듬는 사진입니다. 공력이 절로 느껴집니다.

'장승쟁이'로 불리는 김종흥(56)님
'장승쟁이'로 불리는 김종흥(56)님

장승을 만드는 사진 속의 주인공은 김종흥(56) 님 입니다. 장승쟁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는 목조각 이수자이자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목석원 앞에는 장승과 솟대가 즐비하고 1년 내내 국‧내외 초청행사나 퍼포먼스가 끊이질 않습니다. 또 주말, 평일 가릴 것 없이 그에게 탈놀음을 익히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만드는 장승이나 솟대란 무엇일가요? 치켜 올라가 부릅뜬 눈과 주먹 코, 그리고 귀 밑까지 찢어진 입모양은 장승의 표준형 얼굴입니다. 예전에 조상들은 무서운 듯 하면서도 익살스런 이런 모습의 장승을 나무나 돌로 만들어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웠습니다. 이런 장승은 이정표나 경계석이기도 했고, 잡귀나 질병을 쫓고 소원을 비는 수호신이기도 했습니다.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것을 말합니다.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지요. 삼한시대에 신을 모시던 소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주홍색을 칠한 장대 끝에 청색용을 만들어 붙인 솟대를 마을 입구에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장승과 솟대를 깎고 탈놀이 이수자가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분했던 끼가 쌓이고 쌓인 것이지요. 지금도 그의 귀를 왱왱 울리는 것은 마을 옆 공터에서 모이던 풍물패의 풍물소리 입니다. 뒷북을 울려대는 약장수가 오면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장터에 어쩌다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천막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객석을 차지했습니다.

마을장터, 그곳은 그에게는 친구를 사귀고 놀이를 즐기고 문화생활을 하는 문화센터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수시로 나무뿌리를 모아 만들기 재주를 부려보고 볼품 있는 물건을 볼라치면 빠지지 않고 주워 모았습니다. 장승쟁이가 되기 전에 뿌리공예로 실력을 닦은 셈이지요. 그는 자신의 삶과 희망을 일찍이 나무뿌리에서 다듬기 시작한 것입니다.



[박창원의 인(人) 16]
네 번째 연재 장승쟁이 김종흥①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네 번째 연재, '장승쟁이'로 불리는 김종흥(56)님의 이야기입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기도 한 김종흥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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