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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대화를 나누니, 아침에 장승이 나다
장승쟁이 김종흥 ⑤ / "해학 넘치는 민속문화...종교적 굴레 안돼"
2010년 07월 21일 (수) 11:52:36 평화뉴스 pnnews@pn.or.kr

"무서운듯한데 익살스런 그 표정에 끌렸습니다.
잠시 어색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얼굴, 이웃이라고 할까…"


전통시대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기도 한 장승에 그는 이내 빠져들었습니다. 장승이 내뿜는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하회마을에 이사 온 뒤 곧바로 장승공부를 시작 합니다. 당시 경남 고성에서 장승을 만들던 이두율이란 이와 교류도 하고, 연구과제도 교환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장승에 대한 관심이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어디랄 것도 없이 장승을 세우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장승뿐만 아니라 솟대, 돌무더기(造山) 같은 문화유산은 전통이라는 이부자리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잠자던 장승이 뒤늦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은 90년대 들어와서입니다. 왜일까요?

   
▲ 김종흥(56)님이 만든 장승

그는 여러 이유 중에 단연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꼽습니다. 선거로 뽑힌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주민들의 관심을 제 고장으로 돌리는데 관심이 많지요. 그래서 가는 곳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데 긍정적인 구실을 했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돈 없앤다고 욕도 먹습니다만, 흔하디흔한 지역의 축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물론 이는 그 같은 장승 전도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손길과 숨결이 닿으면 전통 속에 잠자던 장승이나 솟대가 공원이나 음식점 같은 생활 현장에서 살아났습니다. 사람들 또한 장승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생소함을 떠나 당연히 우리 것으로 확인하고 즐기게 된 것입니다.

정화수 한 그릇에 정성을...국내 4천기, 외국에도 4백기

요즘의 장승은 스토리를 섞어 만듭니다. 특히 해학이 넘치는 장승을 많이 만듭니다. 그는 아직도 민속 문화인 장승을 종교와 연결 지어 터부시하는 행태가 영 마뜩잖습니다. 그래도 장승은 뚜벅뚜벅 세상길을 찾아갑니다. 이제 그의 작품은 절이나 아파트, 생태공원, 기업체 등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4천기 정도의 장승을 만들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독일, 캐나다, 미국 등 외국에도 4백기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6월에도 일본에서 장승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전통 민속문화, 또는 민족문화를 홍보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지금도 틈틈이 장승과 대화를 나눕니다. 달빛과 대화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면 장승이 나타납니다. 그 잠자리에서 영감을 받으면 새벽에 일어나 장승을 만듭니다. 나무를 다듬기 전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기를 모읍니다. 이는 수호신이든, 이정표든 우리 전통의 민속 문화를 갈고 다듬는 정성의 다른 표현입니다.

   
▲ 김종흥(56)님이 만든 장승

장승을 다듬는 일은 예전에 비해서는 쉬워졌습니다. 산에서 직접 나무를 고르는 대신에 제재소 나무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금강송 같은 경우는 나무값만 6백만 원에 이릅니다. 거기에다 나무값에 버금하는 작업비를 합치면 만만찮은 비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않고 대부분은 직업으로 먹고살기에는 부가가치가 넉넉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호구' 해결 안되는 구조...맥 끊길까 걱정

그에게도 장승 일을 배우는 문하생이 4~5명 있지만 대개 취미로 배우는 정도입니다. 여차하면 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승 깎는 일만으로는 호구가 해결되지 않는 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만 해도 전통 조각 일을 하는 사람은 전통 문화인으로 대우해 5~6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 '장승쟁이'로 불리는 김종흥(56)님

그는 남매를 뒀습니다. 작은 아들 주호는 그가 장승으로 인연을 쌓은 캐나다에 유학한 뒤 지금은 안동시청에서 문화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체험학습 실연을 할라치면 북잽이 구실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탈춤에다 장승의 든든한 동료인 셈입니다. 그런 아들이 있기에 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그의 꿈도 무르익고 있습니다.

전통 민속문화 '장승'에 종교적 굴레?

그는 흥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막걸리며 소주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회탈이며 장승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하회마을 어귀 장승이 죽 늘어선 곳, 거기에 그는 늘 있습니다. 그가 행여나 없을라치면 그의 전시공간을 둘러보면 됩니다. 그곳에서 그의 탈춤 열정과 장승의 혼과 멋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그와 마주치면 보이차 한잔쯤은 얻어 마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정부종합청사 하늘정원 옥상에 장승을 세운다고 연락이 왔습디다. 우선 한 쌍을 보내달라는군요.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만, 어떻게 될지 아직은…."(7월13일) 여전히 장승에다 종교적인 굴레를 씌워 이를 배척하는 힘센 실세종교(?)를 염두에 둔 걱정으로 들립니다.

   


[박창원의 인(人) 20]
네 번째 연재 장승쟁이 김종흥⑤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네 번째 연재, '장승쟁이'로 불리는 김종흥(56)님의 이야기입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기도 한 김종흥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독 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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