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도된 제목을 달아왔다" - 영남일보 백승운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07.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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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의 첫 고백...기자로서 죄스럽다”

고백, 새길수록 죄스럽다. 기자로서의 고백은 더욱 그렇다.
몇 번을 곱씹어 발음해보지만 죄스러움은 크다.
어떻게 말할까? “미심쩍을 땐 진실을 말하라” 그래서다.
잠시 자문해보기로 한다

“나는 기자로서 치열했는가?”
“나는 기자로서 침묵하지 않고 제대로 말하고 있는가?”
“나는 기자라는 ‘가식의 누더기’ 를 쓰고 있지 않은가?”

답은 간결하다 “그렇지 못했다”. 그렇지 못함의 원인은 무엇인가.
천박한 권력과 자본에 얽매여 있는 언론의 구조 탓인가? 거창한 변명일 뿐이다.
잘잘못을 꼬집어 주지 않는 언론선배들의 탓인가? 역시 구차할 뿐이다.
원인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광장의 촛불처럼 뜨겁지 못함과 절대다수의 힘에 눌려 침묵함과 그리고 알량한 기득권에 중독되어버린…이 모든 원죄는 누구의 탓도 아닌 <나> 자신의 탓이다.

들머리가 길어졌다. 고백의 범위를 구체화 하자.
나는 편집기자다. 편집기자, 독자들에겐 여전히 생소하다. 신문에서조차 좀처럼 이름을 찾기 힘든 無名의 기자다. 그래서다.

고백의 단상에 오르기 전에 잠시 편집을 이야기하자. 편집은 무엇인가? 1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책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신문제작은 뉴스수집과 뉴스처리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수집’쪽은 취재기자의 활동이며 ‘처리’쪽은 편집기자의 활동을 가리킨다. 무형의 뉴스를 기획하고 모으는 활동과 그것을 신문이란 지면 위에 유형화하는 작업을 취재와 편집으로 나눈다.” 다분히 교과서적인 설명이다.

취재기자가 출고한 기사에 제목을 다는 기자, 수많은 기사들 중에 어떤 기사를 어느 위치에 실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자…. 단순하게 말하면 편집기자는 이런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편집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어떤 한 선배기자는 편집을 이렇게 말한다
“편집은 어쩌면 가장 신문인다운 삶이며 가장 기자다운 삶이다. 한 시대의 희망과 절망의 예봉이 바로 편집이며, 한 신문사의 체질과 색깔(보수와 진보)이 바로 편집이다. 그걸 어찌 내가 모두 알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며 또 느낄 수 있겠는가”

그렇다. 편집은 신문의 심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편집기자가 뽑아낸 기사의 제목은 그 신문의 체질과 색깔을 결정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左와 友, 보수와 진보, 그 갈림길에서 편집기자의 유형의 작업(제목달기와 뉴스가치판단)은 나침반이 된다. ‘기사읽기의 열쇠가 편집에 있다’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는 고백의 단상에 오를 차례다.
편집기자로서의 고백, 더러는 감상이라고 나무랄 터이다. 하지만 고백을 작정한 이상 고백한다.
과거를 돌아보건데, “편집기자로서 나는 지나치게 의도된 제목을 달아왔다.” 냉철한 분석과 정교한 논리로 승부하지 않고 신문사의 이익에 우선하는 제목을 뻔뻔하게 활자화 시켜왔다. 때로는 돈되는 광고에 기자정신을 팔아 먹기도 했다. 광고와 관련된 기사라는 주문(?)을 받게되면 의도적으로 우호적인 제목을 달아 내 배를 살찌웠다. 이곳에 치열함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곳에 끓어오르는 기자로서의 열정은 곱씹어 봐도 없다. 자본과 놀아난 비굴함 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된 것이다. 자본에 속박될 수 밖에 없는 한국신문의 기형적인 환경에 말이다.

속죄할 것은 또 있다.
“기사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편집기자로서 나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선거나 주요이슈가 있을 때 그것은 더욱 두드러졌다. 단지 ‘내가 지지한다’ 는 이유로 특정인물을 부각시키고 취사선택하는 왜곡(?)을 일삼았다.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기사는 의도적으로 의미를 축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진실을 가린 편집을 죄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릇됨을 옳다고 억지쓰는 어리석음과, 반성에 무뎌진 무뇌아적인 사고, 이것들은 나와 신문을 갉아먹는 독소만이 아니다. 독자의 눈을 가리는 죄악인 것이다.

기자생활 만 6년만의 고백, 시원찮다. 그래서다. 지금도 죄스럽다.

영남일보 편집부 백승운 기자(swback@yeongnam.com)

추신 : 편집기자로서의 고백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영남일보 홈페이지(www.yeongnam.com)에 접속하시면 기자클럽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자로서의 고백과 신문편집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질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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