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 예수를 대구 시내로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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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 "4대강 사업 반대...고담 대구, 생명평화의 도시로 되살아나기를"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반대하는 천주교 사제와 신자, 시민들이 2010년 4월부터 매월 '대구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8월 23일에는 7차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 미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실무를 꾸려가고 있는 활동가들 가운데 임성무 선생님이 그간의 과정을 글로 보내주셨습니다. 임성무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 평화뉴스


우여곡절 끝에 24일 방송된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 계명대 김종원 교수의 ‘본래 깃들어 살고있는 야생생태계는 다 쫓겨’날 것을 아파하는 말과함께 달성습지 장면이 애처롭게 비쳤다. 나는 가끔 성서공단을 지날 때면 달성습지 둑에 서서 멀리 야간 조명을 밝히고 강을 파헤치는 강정댐을 보면서 조용히 십자가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한다.  비가 많이 오면, 하느님께 비가 집중호우로 한 200mm가 낙동강에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갑자기 강가에 사는 농민들이 생각나면 ‘어이쿠나’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이니 알아서 하시라고 주문을 바꾼다. 

하지만 낙동강을 갈 때마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폭력 앞에서 우리의 순례와 기도가 무슨 힘이 있을까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대한하천학회에서 ‘4대강 16개 댐을 폭파하는데 200억이면 된다.’는 발제를 보고 통쾌하게 웃었다. 그 다음부터 기분이 나아졌다. 이 정도 돈이면 국민성금을 모아서라도 폭파하자. 그 다음은 자연이 알아서 복원할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앞산터널' 반대에서 '운하' 반대로...

나는 앞산터널반대투쟁을 하면서 깊은 절망감에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몸뚱아리와 기도뿐이다.’는 생각을 했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산신령이든 누구라도 앞산을 지키도록 기도하는 게 유일한 방도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무래도 신들과 사이가 좋을 종교인들을 찾아 뵙고 부탁드렸고, 범종교인이 함께 생명평화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앞산의 생명들과 함께하는 - 사실 사람보다 더 답답한 이들은 뭇 생명들일 테니 - 미사를 봉헌했다. 하지만 앞산은 보기 좋게 뚫리고 있고 우리는 현상적으로 실패했다. 앞산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앞산 살림을 위한 범종교인 생명평화 촛불문화제(2006.4.27 달비골)..."우리 모두가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고 말하는 허운스님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앞산 살림을 위한 범종교인 생명평화 촛불문화제(2006.4.27 달비골)..."우리 모두가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고 말하는 허운스님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2008년 운하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순례가 이어졌다. 이분들이 대구지역을 지난다고 하면 나와 몇몇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종교인들이 오는데 대구지역 종교인들은 별 준비나 참여가 없었다. 쉴 곳을 마련해 드리기 위해 교회와 성당을 찾아갔고 겨우 고령 ‘월막 피정의 집’  도움을 받았다.

사제단 시국선언...신부님을 찾다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우리는 막바지 앞산투쟁을 하고 있었다. 전국의 사제들이 용산을 지키고 미사를 드릴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런데 전국사제단의 시국선언에 대구교구 소속 사제가 3분이 참여하셨다. 우리는 경산으로 권혁시신부님을 찾아갔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7차 생명평화미사(2010.8.23 저녁. 대구시 중구 대봉성당)...경산 용성성당 권혁시 주임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7차 생명평화미사(2010.8.23 저녁. 대구시 중구 대봉성당)...경산 용성성당 권혁시 주임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하지만 우리는 용산을 위한 시국미사를 드리지 못한 채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앞산재판 결과 나를 포함하여 6명이 벌금형을 받았다. 우리는 4대강이 파헤쳐지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2010년을 맞았다. 나는 새해가 시작되고 바로 전국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 연수로 안동에서 지율스님을 통해 낙동강의 파괴현장을 보았다. 하지만 대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3년간 혼신을 다해오던 공간앞산달빛과 마을학교 일로 복잡하고 심란해졌다. 6.2선거에 마을후보를 내려던 노력도 멈추었다.    

느슨한 가톨릭NGO, '낙동대구'로

거의 자포자기에 이르렀을 즈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다른 지역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구에서 사회문제로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이 70여명이 참여한 미사를 드린 일은 박정희와 이효상 정치인과 서정길, 이문희 주교로 이어온 대구대교구 100년을 통해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이 기적 같은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나는 가장 지쳐있을 때 가장 귀중한 일에 심부름꾼이 되었다.

5월 22일 도동성당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한 뒤 도동 개포나루터까지 '낙동강 순례'에 나선 수도자와 시민들...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5월 22일 도동성당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한 뒤 도동 개포나루터까지 '낙동강 순례'에 나선 수도자와 시민들...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3월 12일 천주교 춘계 주교회의에서 4대강을 반대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뒤 이어 전국 5005인의 사제 수도자들의 4대강 반대 선언이 나왔다. 나는 급하게 명단을 확인하고 교구청 누리집에서 사제찾기를 했다. 그리고 신부님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가 부활절을 앞두고 있었다. 정홍규신부님께서 우리도 낙동강에 가서 몇이라도 모여 미사를 봉헌하자고 하셨다. 신부님은 앞산 미사를 드리고 난 뒤에 조용하게 가톨릭 NGO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다.

그 뒤 몇몇 신자들이 모여 느슨한NGO 하나 만들고 공부모임을 이어갔지만 말 그대로 느슨해져 있었다. 우리는 급히 모여서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자고 하고는 범어동 곰네들에 모여 ‘낙동강을생각하는대구사람들(낙동대구)’을 만들었다. 겨우 1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우리는 신부들의 심부름을 하겠다 하고는 교구청에 들어갔다. 그동안 지율스님을 따라 낙동강을 수차례 다니며 기록을 하던 정수근선생이 이 일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흩어진 신부님들을 소통시키는 심부름을 잘 했다.

주교단의 '4대강 반대', 그러나...

천주교는 하나의 교회이고 교황과 주교단의 결정에 순명해야하는 교도권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사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개신교처럼 사제를 내칠 수는 없다. 그래서 신자들이 냉담을 하게 된다. 신자들이야 냉담을 하면 되지만 사제들은 그럴 수 없으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 3.12 한국천주교주교단의 입장발표로 나는 모든 성당에서 4대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나붙고, 신자들의 서명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신도인 나는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보수적인 주교의 교도권에는 순명해 온 사제들과 많은 평신도들은 4대강사업을 반대하라는 주교단의 교도권을 대놓고 무시했다. 영세 때 가르친 교리와 교회법을 사제들이 스스로 어긴 것이다. 이미 하나의 교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교도권을 믿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구 달성보에서 봉헌된 '4대강 사업 저지 대구생명평화미사'(2010.4.10)...원유술 신부(포항 죽도성당 주임)가 "4대강 사업 저지에 함께 나서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공정옥 객원기자
대구 달성보에서 봉헌된 '4대강 사업 저지 대구생명평화미사'(2010.4.10)...원유술 신부(포항 죽도성당 주임)가 "4대강 사업 저지에 함께 나서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공정옥 객원기자

생명평화미사...달성보에서 대봉성당까지

이런 현실에서 신부님들과 의논하여 먼저 현실을 바로 보기위해 3월 27일, 1차 낙동강 순례를 갔다. 그리고 4월 10일 첫 미사를 드렸다. 이날 과연 몇 분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올까? 몇 명의 신자들과 시민들이 올까? 골재원노동자들이 오면 지나치게 투쟁적으로 비쳐 혹시 사제 수도자들이 다시는 미사를 못하겠다고 하면 어쩔까?

조바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홍보만 하고 조직하지 않았음에도 20명이 넘는 사제들과 50여명의 수녀님들이 오셨고, 200여명의 신자와 시민들이 참여했다. 골재원 노동자들은 당당했고, 사제와 수도자들은 박수로 이들을 맞아주셨다.

달성보에서 봉헌된 생명평화미사에는 사제와 수도자, 시민단체를 포함해 100여명이 참가했다 / 사진.평화뉴스 공정옥 객원기자
달성보에서 봉헌된 생명평화미사에는 사제와 수도자, 시민단체를 포함해 100여명이 참가했다 / 사진.평화뉴스 공정옥 객원기자

글을 쓰면서도 나는 그 날 생각에 눈물이 핑 돌고 감사를 드리게 된다. 나는 첫 생명평화미사를 마친 다음 날부터 한달 넘게 위장병으로 날마다 병원을 다녀야 했다. 그 사이 정홍규신부님은 몇몇 분들과 조용히 달성댐에 가서 두 번의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교구청에서는 4대강 관련 강좌를 두 번 열었고, 드디어 4월 26일 천주교 대구생명평화연대가 조직되었고, 달마다 낙동강 현장과 본당을 돌며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5.22 도동서원, 5.31 삼덕성당(중구), 6.12 화원유원지, 6.21 대현성당(북구), 7.19 월배성당(달서구), 8.23 대봉성당(남구) 까지 일곱번 미사를 드렸다.

작은 불씨가 되다

천주교의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는 약해지고 희망마저 사라지는 시민사회의의 노력에 작은 불씨가 되었다. 미사를 이어가는 중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고, 골재회사 사장의 자결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범종교,문화예술,시민단체들이 연석회의를 만들어 다시 4대강사업저지를 위한 활동을 이끌어 냈다.  미사는 냉담 중이거나 교회에 부정적이던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다.

제5차 대구생명평화미사(2010.6.22.대현성당) ...대현성당 한명석 주임신부가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제5차 대구생명평화미사(2010.6.22.대현성당) ...대현성당 한명석 주임신부가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지난 6개월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새삼 종교의 소중함을 깨달은 시기였다. 오래전 민주화운동의 시기에 종교가 우산이 되어주었지만 종교는 더욱 보수화되고 권력화 되고 관료화되어 가면서 예수나 부처는 장롱 속으로 밀려나고 세상은 더욱 혼란해져갔다. 하지만 생명평화미사는 예수를 대구 시내로 모셔내었다.

"장롱 속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지난 8.23 미사를 마치고 천주교 대구생명평화연대는 4대강과 생명평화 실현에 힘있게 결합하기 위해 사제단으로 구성된 생명평화연대에 수도자와 신자들을 결합하자고 의논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천주교 신자이거나 냉담중인 분들은 동참해 주기 바란다. 장롱 속 예수님을 따뜻한 햇볕 아래로 모셔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낙동강으로, 삶의 현장으로 가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인 신자들은 더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 자신의 신앙을 회복하고 또 일하는 분야의 과제를 교회의 이름으로 공유하고 연대하는 작은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를 요청한다.

그런데 슬슬 걱정이 된다.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보수적인 대구대교구에서 다치지나 않을까 말이다. 첫 미사를 앞두고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재영 이사님이 사제단을 지켜내기 위해 삭발을 하자고 제안해 올 정도로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신부님들을 만나면 순교하셔야지요? 하고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미사 때마다 신자들의 언덕이 되게 해 달라고 신자들의 기도를 했으니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범종교.제정당.사회단체.학계.문화예술계 연석회의"(2010.6.29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사목국)...이날 모임에는 종교.정당.시민사회를 포함해 각계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범종교.제정당.사회단체.학계.문화예술계 연석회의"(2010.6.29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사목국)...이날 모임에는 종교.정당.시민사회를 포함해 각계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고담 대구, 생명평화의 도시로 되살아나기를"

이렇게 천주교가 움직이고, 개신교가 움직이고, 불교 원불교가 움직이면서 연이어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이 되살아나기를 기도한다. 고담 대구가 생명평화의 도시로 되살아나기를 기도한다.

자, 모이시라. 손잡자. 우선 급한 4대강사업을 중단시키는 일에 힘을 쏟아보자. 9월 5일 국채보상공원에 모이고, 9월 6일 안동 목성동성당에 모이고, 9월 13일 고산성당에 모이자. 그리고 2.28공원에 모여 수요일에는 촛불을 들자, 목요일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걷자. 함께 촛불을 들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자.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말이 되고 행동이 되게 하자. 그 다음 일은 하느님께 맡기자. 어차피 하느님의 일이니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단지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를 일이다. 진인사대천명이다. 그런데 아직도 강에 나가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으면 낙동대구 카페에 가입하시길 바란다.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전화드리겠다.  믿음이 있고 든든한 언덕이 있으니 다시 느긋해진다.






[기고] 임성무 / 초등교사
낙동강을생각하는대구사람들(http://cafe.daum.net/nakdongdg)

※ 천주교대구대교구의 움직임에 대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사 제목들이 변화의 움직임을 잘 설명해 준다. 참고 바란다.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성령강림사건 발생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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