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유보임금', 추석 임금을 연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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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악습 '쓰메끼리' / 건설노조 "하루 벌어 사는데...14일 이내 지급해야"


지난 1월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형틀목수 일을 한 이모(56)씨는 그 달 보름치 임금을 3월 30일에 받았다. 대구시 달서구에 사는 이모(52)씨는 2009년 8월 임금을 해를 넘겨 2010년 1월 20일에야 받았다. 보통 직장이라면 늦어도 다음 달 5일이나 10일쯤 받았을 임금을 무려 5개월이나 기다려야 했다. 

'유보임금' 실태 / 자료.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유보임금' 실태 / 자료.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건설현장에는 이처럼 임금을 뒤늦게 받는 '유보임금'이 관행처럼 굳어져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유보임금을 속칭 '쓰메끼리'라고 부른다. 일본 말 '쓰메끼리'는 '손톱 깎기'라는 뜻으로, '손톱 깎듯이 임금을 잘라 준다'는 의미로 오래 전부터 쓰이고 있다.

실제로, 전국건설노조가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건설 사업장 104곳을 조사한 결과, 평균 32일씩 임금을 늦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은 평균 43일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심했다. 올 추석에 받아야 할 임금을 올 연말에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건설노조는 "유보임금 관행은 공공.민간 공사 가릴 것 없는 고질적인 악습 관행"이라며 "첫 달치 임금을 두 세달 늦게 받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왜 그럴까?
대구경북건설노조 박성원 사무국장은 "발주처와 원청, 하청 간 문서교류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하청업체가 한달치 작업물량에 대한 정산을 하고 원청업체에 올리면, 원청은 이를 다시 발주처에 제출하게 된다. 그리고, 발주처는 원청업체에 1개월 단위로 진척된 작업물량을 기준으로 임금이 포함된 기성(공사대금)을 지급하고, 원청업체는 이 기성금을 받아 5일 내지 10일 정도 지나서야 하청 협력 업체에게 각 작업물량에 대한 공사 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두 달 이상 임금이 연쇄적으로 체불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라고 박 국장은 지적했다.

대구경북이 다른 지역보다 '유보임금'이 심한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지역 건설업체들이 무너지고 외지 업체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공사확인과 서류 검토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라고 박 국장은 말했다.

건설노조는 이같은 관행에 대해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줄일 수 있다며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박성원 사무국장
박성원 사무국장
박 국장은 "발주처와 원청, 하청 간의 공사확인과 서류검토 기간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노동자의 임금은 '산재보험'을 비롯한 여러 증빙서류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14일 이내에 임금을 지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표적인 발주처인 LH(대한토지주택공사)조차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하도록 홍보하고 있다"며 "유보임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발주처가 기성 중 임금 부분을 따로 떼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1년에 평균 8개월, 한 달 평균 15.5일을 일하는 것으로 건설노조는 분석하고 있다. 공휴일은 쉬는데다, 비가 오거나 몸이 아프거나, 일감이 없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일당마저 제때 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건설현장의 고질적 체불 악습의 근원인 유보임금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건설노조는 이같은 '유보임금'과 관련해, 9월 14일 전국 시.도 노동청 앞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측에 제도 개선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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