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허비(三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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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늘 때를 기다리며 살지만, 시간은 사람을 위해 기다려주지는 않습니다.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야박한 것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입니다. 앳된 얼굴의 청년이 한 순간에 백발로 변하여 어디서 "서리를 뒤집어썼나?" 착각하게 만드는 것도 야속할 정도로 빨리 흘러가는 세월의 힘이지요. 

성호이익 초상 / 사진출처:네이버
성호이익 초상 / 사진출처:네이버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은 군자가 허망하게 힘과 능력을 허비하고서는 뒤늦게 애석해하고 후회를 하는 경우가 있다 했습니다.

 그 첫째가 '사소한 술수나 이단에 마음을 둠으로써 정신을 허비하는 것(留心於小數異端, 是精神費也)'이고, 둘째로는 '급하지 않거나 유익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두어 온 힘을 허비하는 것(勞이於不急無益 是筋力費也)'이며, 셋째 '그저 덤덤하게 세월만 보내며 하는 일 없이 늙어가면서 세월만 허비(玩愒泛忽 居然衰老 是年數費也)'하는 것입니다. (<星湖僿說>-인수문).

 하지만 이 세 가지 경우는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니 군자는 각별히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정진함으로써 때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성호 이익의 처세관이요, 군자관입니다.

 봉건왕조시대 군왕의 신하라 할 수 있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이와 같은 수준이라면, 민주공화국에서 임기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한정되어 있는 선출직 공직자들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여기에는 대통령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도 벌써 삼 년째...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무엇을 이루었으며, 무엇이 달라졌던가요?

벼슬아치들에 대한 사찰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관습법(?) / 신윤복 풍속화 <월야밀회>. 사진출처:네이버
벼슬아치들에 대한 사찰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관습법(?) / 신윤복 풍속화 <월야밀회>. 사진출처:네이버

 지난 3년 동안 경찰과 검찰을 앞세운 송사(訟事)로 수많은 국민들의 정신을 쓸데없이 허비하게 만들고, 게다가 급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4대강 사업에 온 나라의 힘을 다 쏟아 붓고 있는 반면, 남북관계는 덤덤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세월만 보내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후회하여본들 흘러간 세월이 되돌아오지는 않을 것이고, 허망하게 허비해버린 힘도 되찾아오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지나가 버린 세월이 애석하면 할수록 앞날은 더 불안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나마 이 나라 대통령은 자신의 실정을 만회할 기회마저 원천 봉쇄되어 있습니다. 단임제이므로 5년 임기를 마친 뒤에는 처절하고도 냉혹한 역사의 심판만 남아 있을 뿐이지요.

 정말 야박하고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하늘 한번 우러를 겨를도 없이 땅만 쳐다보며 묵묵하게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티고 있는 평범한 국민들의 마음은 그저 무덤덤할 뿐입니다. "늘 그 놈이 그 놈이더라"라는 오랜 학습 효과 탓도 있을 터이니까요. 정해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정작 마음이 바빠지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요사스런 변덕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보다 부귀공명을 누리는 자들이 더 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육친이 낯선 남보다 더 심하다."
          ( 炎凉之態 富貴更甚貧賤, 妬忌之心 骨肉 尤狼於外人...  <菜根譚>)


 일사분란하면서도 한 치의 빈틈도 없을 것 같던 권력의 세 축, 당·정·청에서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세금폭탄"이라는 말로 톡톡하게 재미를 본 집단에서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급진적(?)구호-'부자감세 철회'-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포폰과 관련하여 "재수사를 하라"는 요구는 청와대를 수사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요구이지요. 그것도 야당도 아닌 여당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와중에 검찰은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의 사무실까지 무더기로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검찰의 활약상에 늘 박수를 쳐대던 여당의원들은 물론 국회의장의 반응까지도 뭔가 아리송한 냄새를 풍깁니다. 세월을 덧없이 허비해버린 자들이 뒤늦게 서로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활극이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초록빛 나뭇잎... 맥없이 땅바닥에 뒹굴다 / 사진. 김진국
초록빛 나뭇잎... 맥없이 땅바닥에 뒹굴다 / 사진. 김진국

 초록을 뽐내다가 단풍으로 변신하여 교태부리던 나뭇잎들이 선선하던 가을바람이 냉기를 품기 시작하자 맥없이 땅바닥에 나뒹굽니다.  그 낙엽들 무심코 걸어가는 내 발길에...
아!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무참히 짓밟힙니다.

[연재] - <시,서,화가 있는 집 - 서류당 32 > 글 / 김진국


<시, 서, 화가 있는 집 - 서류당> 연재입니다. 서류당(湑榴堂)은 '이슬 머금은 석류나무가 있는 집'으로,
시 도 있고 글도 있고 그림도 있어 편안하면서도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있는 그런 조용하고 아담한 집을 뜻합니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 김진국(의사. 신경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쓰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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