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노조 간부로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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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 노동자의 삶과 희망,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며


 전태일 열사가 자신에 몸에 불에 붙이면서 이 사회에 던졌던 외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정말 이런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는가...

 법으로 보장된 교섭을 하기 위해 자신에 몸에 불을 부친 구미 KEC 김준일 동지,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무려 1,895일을 투쟁한 기륭전자, 비정규직으로 해고되어 복직하는데 걸린 시간 5년의 동희오토 동지들의 얘기를 들으며, 아직도 이 사회는 노동자들을 전태일 열사가 되어 라고 한다.  

또한 여전히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는 “비정규직 철폐하라!” “최저임금 보장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생존권을 보장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들을 외치고 있는 2010년의 대한민국은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현실이란! 자신의 권리와 생존을 위해서는 온 몸으로 투쟁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태일 열사는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유년기, 청년기를 그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단 한번 배움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집안의 어려움 때문에 중도에 포기해야 했으며, 배우기 위해 가출까지도 하였다.

 평화시장 노동자로서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1964년, 그의 나이 16세 때 시다로서였다. 시다들의 현실은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 되는 일당 50원이었다. 아침 8시 반 출근에 밤 11시 퇴근으로 하루 평균 14~15시간이었다. 한 달을 통틀어 휴일은 이틀, 제1주일과 제3주일의 일요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그것이나마 꼭 지켜지지는 않았다. 요컨대 평화시장 일대의 노동자들에게는 일정한 ‘노동시간’ 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아예 없는 것이며 업주가 필요로 할 때에는 언제든지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돈을 벌어 공부하고 싶고,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꿈꿔온 전태일의 가슴엔 어린 여공들의 현실은 언제나 심장에 남아 있었다. 7,000원 월급을 포기하고 4,000원을 받는 재단보조로 청계천 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도 어린 여공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점심도 변변히 먹지 못하는 여공들을 위해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에서 미아리까지 걸어 다녔던 전태일 열사였다.

어느 날 피를 토하며 쓰러져 그냥 버려지는 여공을 보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뜬다. 근로기준법을 접하면서 청계천 노동현장에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 후 같은 청계천 노동자들을 모아 바보회와 삼동회를 결성한다.

사업장 안에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며 노동청과 신문사를 찾아가지만 전태일과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전태일의 노력에 열악하고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신문에 알리면서 그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져 정부에도 이런 현실을 알리며 개선할 것을 약속받았지만 그것은 잠시 사회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것과 힘없는 노동자의 외침은 아무도 들어주려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분신을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전태일 열사의 삶은 당시 노동자들의 현실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노동운동 한다는 내 가슴속에 계속 고민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 노동자들의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의 모습과 나의 실천이 없다는 것이다.  85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문제, 턱 없이 부족한 최저임금, 이것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나의 일로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지 못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그나마 노동자들의 희망인 민주노총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민주노총의 조합원으로서, 대구일반노조의 간부로서 어떠한 고민과 투쟁들을 준비하고 있는가...기계적으로 지역에 투쟁에 연대하여 참가하고, 우리 사업장 문제에만 매몰되어 어린 여공들은 외면하는 나의 모습은 아닌가! 전태일 열사처럼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여공에게 풀빵하나 사 주는 마음으로 노동 운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이처럼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부끄러움에 고통 받게 하는 고욕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다시금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부족함을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는 언제나 우리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게 하고, 살아가기 위해 자신만을 위해 어려운 이웃을 아픔을 외면 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의 삶처럼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 때면 다시금 전태일 평전을 꺼내 보자!






[기고]
김대식 / 대구일반노조 조직부장 dgilb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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