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國格)'이라 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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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을 지나면서 날씨가 잠깐 풀린 듯한데, 12월로 접어들게 되면 추위는 제대로 닥쳐오겠지요. 차가운 겨울날씨는 모든 사람들을 움츠려들게 만들긴 합니다만 누가 뭐래도 제일 힘든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노숙자들이겠지요. 그들에게 겨울을 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매일매일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나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노숙자들도 있을 정도이니, 겨울이 그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형벌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난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구조조정의 희생자들만 노숙자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일시적 현상일 것으로 치부했던 노숙자 대열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안했던 한 가정이 어느 한순간에 파산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길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수 있는 위험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고 있는 위험입니다. 그 위험 중의 하나가 바로 의료비에서 촉발되는 위험입니다. 물론 전체 인구의 5%도 채 안 되는 '강부자'들과 '고소영', '영포회' 뒤에 줄 서 있는 고관대작들, 그리고 한나라당을 필두로 한 보수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예외이겠지만...

 G 20의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정부는 우리나라의 무엇을 자랑스럽게, 또 자신 있게 보여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행권과 이동권은 물론 배설의 자유까지 침탈당한 서울 시민들의 구겨진 인상 외에 또 무엇을 보여주었을까요?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분명 국격이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국격을 앵무새처럼 내뱉는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국격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난적 의료비 및 본인부담금> OECD 국가별 비교 / 자료 출처: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책임연구원 이상윤
<재난적 의료비 및 본인부담금> OECD 국가별 비교 / 자료 출처: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책임연구원 이상윤

 국격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의료비와 관련된 지표 하나만을 보아도 우리의 국격이 어떤 수준인지, 보통사람들이 떠안고 있는 위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의료비는 가계에 부담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가계파산으로 이어질 정도의 '재난적 수준'으로 높으며, 그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1위입니다. 이 자료가 90년대 후반의 자료라 해서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수준이 더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호전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에서 2007년까지 10년 동안 <1인당 의료비 연평균 실질증가율>도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1위입니다.

1997-2007 10년간 <1인당 의료비 연평균실질 증가율> OECD 국가별 비교 / 자료 출처: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책임연구원 이상윤
1997-2007 10년간 <1인당 의료비 연평균실질 증가율> OECD 국가별 비교 / 자료 출처: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책임연구원 이상윤

 고대 중국의 편력의(遍歷醫), 편작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혼수상태에 빠져있던(‘尸厥’)에 빠져있던 괵(虢)나라의 세자를 치료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런 세간의 평판에 대해 편작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능력은 없고 마땅히 살 사람을 살려낸 것이다"
                          (吾不能起死人, 直使夫當生者起)


 의료의 본질이 이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사실은 살 사람이지만) 혼자만의 비술(秘術)로 천금만금을 얻는 것은 인술이라 할 수 없습니다. 꼼수요 사술(邪術)일 뿐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인종과 계급, 그리고 이념의 차별 없이 누구든,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즉시 공급됨으로써 당연히! 살 수 있는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의료의 본질이요, 국가의료체계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료서비스를 공급해야 할 책임과 의료체계를 확립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 누군가 중병에 걸리면 가정파탄이 일어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채 노숙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국격입니다. 이런 형편인데도 정부는 의료민영화, 의료상업화 정책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를 국민들이 정당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선거뿐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선거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자해와 다를 바 없는 투표행위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TK 표심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들은 편작이 이야기한 6 불치(不治) 중의 하나, “교만하고 방자하여 이치를 따지려들지 않는(驕恣不論於理)” 중병에 걸려있습니다. 이런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말년에는 대개 ‘탈영(脫營)’이란 난치병을 앓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지요. 탈영(脫營)은 <황제내경>에 언급되어 있는 질병으로 일찍이 귀한 자리에 머무르다 후일 천한 자리(嘗貴後賤)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이라 하였습니다(素問-疎五過論篇). 병증이 장기(臟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신체의 변형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진단도 어렵고, 약도 없는 난치병 중의 난치병이어서 의공(醫工)들의 세심한 경계가 필요한 제일 첫 번째 질병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만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모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수치를 알고 또 (스스로)품위를 갖추게 될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以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論語>-위정)"

 “격(格)이라 함은 ‘감화(感化)’를 말한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서 ‘위 아래를 모두 감화시킨다(格于上下)’ 하였고, <서경(書經)> 익직(益稷)에서 ‘감격하면 뜻을 받들고 또 등용하라(格則承之庸之)’ 하였으며, <시경(詩經)-大雅, 抑>에서는 신(神)의 감화를 헤아릴 수 없다(神之格思 不可度思)’ 하였으니 이 모두에서 격(格)은 감통(感通)의 뜻이다."
                                                            (여유당전서- 논어고금주)”

 
감통(感通)!  감화(感化)와 소통(疏通)이 절멸된 나라에서 국격은 무슨.....


[연재] - <시,서,화가 있는 집 - 서류당 33 > 글 / 김진국


<시, 서, 화가 있는 집 - 서류당> 연재입니다. 서류당(湑榴堂)은 '이슬 머금은 석류나무가 있는 집'으로,
시 도 있고 글도 있고 그림도 있어 편안하면서도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있는 그런 조용하고 아담한 집을 뜻합니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 김진국(의사. 신경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쓰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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