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환희’에 가려진 노동자 분신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 입력 2010.11.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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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 분신 왜…"비정규직 차별 없애야 한다"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 때도 있다. 거울 뒤에 있는 모습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환희’가 이어지고 있다. 축구 대표팀이나 야구 대표팀처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인기 종목’도 있지만, 조용히 금메달 소식만 알리는 비인기 종목도 있다.

스포츠는 일상에 지친 국민에게 청량제로 다가올 수 있다. 여자 역도의 세계적인 선수 장미란이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도 놀라운 정신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국민은 열광하고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금메달 환희’는 선수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땀과 노력의 결실이기에 충분히 평가를 받을 일이다. 하지만 언론이 온통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빛 축제’에 신경을 곤두세우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거울 뒤의 모습은 가려질 수도 있다.
    
현대차비정규지회 황인하 조합원이 20일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에서 분신을 하신 후 몸이 불타오르고 있다. ⓒ사진출처-레프트 21 임수현기자
현대차비정규지회 황인하 조합원이 20일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에서 분신을 하신 후 몸이 불타오르고 있다. ⓒ사진출처-레프트 21 임수현기자

노동자 분신 사건이 발생했다 1970년 11월 13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노동계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구미 KEC 김준일 지부장 분신 얘기가 아니다. 또 다른 노동자의 생살이 타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일 울산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 도중 비정규 노동자 황아무개씨가 분신을 시도했다.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가 생수통에 들어 있던 휘발유를 몸에 부은 뒤 라이터 불을 당겼다.

주변에 있던 관계가자 급하게 불을 꺼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2~3도의 화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은 불법파견 사내하청 문제와 관련이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 교섭을 요구하며 7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한 노사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21일 성명에서 “분신이 발생한 어제 역시 현대차는 1천여 명의 관리자를 동원하여 농성현장을 침탈했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7월 대법원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명확히 인정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고등법원 또한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임을 재차 확인했다”면서 “현대차는 민주노총의 대화노력을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자세이자 양심”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노동계 또는 울산 지역에만 관심 있는 사안일까. 그렇지가 않다. 정치권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1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정문 근처 ‘명린공원’에서 불법파견 규탄, 폭력탄압 중단, 정규직화 실현을 위한 당 총력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정희 대표 등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21일 황씨가 치료를 받는 부산 베스티아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21일 성명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우리사회가 진정하게 공정한 사회로 나가느냐 천박한 자본가 세상, 불평등과 소수의 탐욕이 판치는 사회로 남느냐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라고 주장했다.

조승수 대표는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차별이 자행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다”면서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좋은 일자리와 복지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사회연대 복지국가가 실현되어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조승수 대표 주장처럼 울산 현대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한국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번 사건을 분신을 선택한 황씨와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눈물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미디어오늘] 2010년 11월 21일 (일) 12:06 류정민 기자 (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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