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지기(鼯鼠之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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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는 여덟 개의 발에다 두 개의 집게까지 가지고 있지만 뱀이나 지렁이(蛇蟺)의 굴(穴)이 아니면 의탁할 곳이 없는 것은 조급하고 부산하게 마음을 쓰기(“用心躁也”) 때문이다."
  <순자>의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누가 제일 마음이 조급하고 부산스러울까요? 인정사정도 없이 매정하게, 잠시도 쉬지 않고 똑딱거리기만 하는 시계추가 제일 원망스런 사람이 누구일까요?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지하벙커가 아니면 한 몸 마음 편하게 의탁할 곳조차 변변치 않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수심이 깊은 사람이 겉으로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다 할지라도 지어낸 웃음 뒤에 드리워진 그늘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상의 언어가 모두 거짓으로 점철된 채 일생을 보낸 사람이 막다른 길에 이르러 내뱉는 말에 무슨 진정성이 있을는지요? 그저 조급하고 부산스런 마음만 더 뚜렷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조급한 마음은 무리수를 부르고, 무리수는 또 다른 악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자연스런 세상 이치입니다.

 설문(說文)에는“구멍을 파고 거기에 의탁해사는 모든 동물(穴蟲之總名)”들을 일컬어 서(鼠)라 부른다 하였습니다. 그런 서(鼠)의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그 중에서 오서(鼯鼠)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 풀어쓰면 날다람쥐입니다. 잔재주를 많이 가진 쥐의 일종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순자는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주를 품고 있어도 결국에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며, 날다람쥐의 잔재주를 조롱하지요(<순자>, 권학편).

사진 출처. 네이버
사진 출처. 네이버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란 날고, 기고, 헤엄치고, 또 구멍도 파고, 달리기까지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탁월한 재주입니다. 하지만 그 날다람쥐가 제 재주를 뽐내며 날아봤자 지붕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어 올라가더라도 나무 끝에는 이르지 못하고, 헤엄도 쳐보지만 계곡을 건너지는 못하고, 구멍을 파더라도 제 몸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하며, 달리지만 사람보다는 앞서지 못하는, 끝이 빤히 내다보이는 졸렬한 재주입니다 (五技, 謂能飛不能上屋 能緣不能窮木 能游不能渡谷 能穴不能掩身 能走不能先人). 그런 시원찮은 재주를 가진 날다람쥐가 “내가 땅 좀 파 봐서 아는데...”라며 세상이 온통 제 것인 양 온 나라 땅과 강을 파헤치며 ‘삽질’하고 다니는 꼴을 본다면 누구든 헛웃음이 절로 나겠지요. 그 끝이 어디일지, 그런 날다람쥐의 운명이 어찌될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돈다‘는 말이 그냥 만들어진 말은 아니겠지요.

 그런 날다람쥐 같은 인물이 군주의 자리까지 올랐다면 나라의 꼴이 어찌 될까요? 고대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그런 인물이 종종 군주의 자리에 올랐던 모양입니다. 제 멋에 겨워 혼자 떠벌리고 다니는 군주와 그런 군주에게 발탁된 신하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날다람쥐 같은 군주 밑의 신하들은 “무능한 데도 관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공로가 없어도 부귀해지며, 파당을 짜서 사리(私利)까지 도모합니다”. 이런 형편인데도 군주는 혼자서 날고, 기고, 달리고, 헤엄치고, 삽을 들고 구멍 파는 일에만 열중할 뿐, ‘신상필벌’이란 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라의 기강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한비자는 이런 군신관계가 유지될 때 그 군주는 결국 신하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군신(君臣)의 처지가 뒤바뀌는 번신(藩臣)의 처지로 전락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2년 남짓 남은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하는 대통령과 새로운 권력 주변에서 정치생명을 이어가야 할 여당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는 일치할 수 가 없지요. 게다가 지금 대통령은 스스로 “일을 하러”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라 했습니다. 정치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던 듯하니 운명을 함께 할 정치적 동지가 있을 리도 없습니다. 지금 야당 의원들이 터트리고 있는 최고 권력 주변의 고급정보들...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몹시 궁금합니다. 여기저기서 물새는 소리가 들리는데 지하벙커는 어떨지...  

[연재] - <시,서,화가 있는 집 - 서류당 34 > 글 / 김진국


<시, 서, 화가 있는 집 - 서류당> 연재입니다. 서류당(湑榴堂)은 '이슬 머금은 석류나무가 있는 집'으로,
시 도 있고 글도 있고 그림도 있어 편안하면서도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있는 그런 조용하고 아담한 집을 뜻합니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 김진국(의사. 신경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쓰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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