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안돼" - 매일신문 이창환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08.0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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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구조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조직인?"


"기자는 안돼!!".
중, 고교 시절 모든 것을 함께했던 친구가 술자리에서 일갈을 놓았다.
"무슨 얘기야?".
영리한 이 친구가 뜬금없이 꺼내는 얘기는 아닐 거란 믿음속에 귀를 쫑긋 세웠다.
"기자들이 힘이 없는 거냐 아님 의식이 없는 거냐?".

친구의 독설은 이어졌다.
"신문에 뻔히 보이는 정치적 왜곡 기사를 기자가 의도적으로 썼다면 생각이 없는 거고, 편집 과정에서 키웠다면 신문사 내부에서 기자의 위치란 도데체 뭔데....?".
"공기로서의 언론, 책임있는 기자의 역할은 애당초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

덧에 걸린 꼴이었다.
기자는 '객관을 생명으로 알고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녔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의 논리대로라면 기자가 의식이 있다하더라도 내부에서 관철시킬 힘이 전혀 없는 존재였다. 생업으로서의 기자만이 있었다.

"의도적 왜곡은 별로 없을 걸..... 시각이 다르다보니까 반대편의 입장에서 왜곡으로 보는 면도 있을 거야...". "또 모든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내부의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하는 걸로 알고 있고...". 나의 변명 아닌 변명은 친구가 언론을 보는 시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고교 시절 그 친구의 형으로부터 얻은 사회과학서적들을 함께 보며 어줍잖은 논리지만 비슷한 눈으로 사회를 비판했던 나와 친구는 언론을 화두에 두고 나누는 대화에서는 출발부터 완전히 달랐다.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이미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로서 구조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조직인일 따름"이었다.

그 날 술자리에서 나는 친구의 주장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박할수록 궁색한 변명밖에 되지 않음을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고 보니 기자가 괜찮은 직업이네"라는 말이 나올 때쯤 다시 한번 그와 언론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매일신문 특집스포츠부 이창환 기자(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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