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더 외로운 홀몸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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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 복지관 돌보미가 유일한 말벗...“추운 겨울이 빨리 갔으면”


"너무 외로울 때 김치 한쪽에 소주 한 병이면 돼... 그러다 취해 잠들면 아무 생각도 안나서 좋지..."

가족도 자식도 없는 전군자(74.대구 남산동) 할머니에게 겨울은 외로운 계절이다. 외로움을 가끔 술로 달래보지만 누구 하나 같이 잔 기울일 사람이 없다. 그나마 근처에 살던 언니마저 작년 8월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졌다. 전 할머니는 "아직도 언니가 세상을 떠난 게 믿기지 않는다"며 "그냥 잠시 딸네 집에 갔다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따뜻한 봄에는 집 밖에 나가 동네사람들을 만나 잠시라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만, 추운 겨울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병원 갈 때 무릎이랑 허리가 아파 몇 번이고 주저 않고 싶을 정도"라며 "날씨 추울 땐 밖에 나가지도 못해 방 안에서 TV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지를 하루 앞둔 12월 21일, 전 할머니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남산종합사회복지관 소속 노인돌보미들이 관내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팥죽을 전달하고 있었다. 팥죽을 받아 든 할머니는 "아이구, 정말 고마워. 맨날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해 죽겠네"하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아오는 복지관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말벗’이다.

동지를 하루 앞둔 21일, 복지관 아주머니가 건넨 '팥죽'을 받아든 전군자(74) 할머니...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아오는 복지관 노인돌보미가 할머니의 유일한 말벗이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동지를 하루 앞둔 21일, 복지관 아주머니가 건넨 '팥죽'을 받아든 전군자(74) 할머니...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아오는 복지관 노인돌보미가 할머니의 유일한 말벗이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전 할머니는 32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언니가 있는 대구로 내려와 줄곧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언니가 있었을 땐 그래도 자주 놀러가고 같이 밥도 먹고해서 덜 외로웠는데, 이제는 의지할 데가 없어 너무 외롭고 적적하다"며 "날씨가 추워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할머니는 40여년 전 집에서 빨래를 널다 발을 헛디뎌 2층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크게 다쳤다. 그래서 지금도 제대로 앉지 못하는데다 요즘은 무릎 관절염과 고혈압까지 앓고 있다. 혼자인데다 몸도 성하지 않은 전 할머니에게 일거리가 있을리 없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달 나오는 30여만원과 기초노령연금 8만8천원이 한 달 소득의 전부다.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이 돈을 4년간 조금씩 모아 2년 전 전셋집을 얻었다. 전셋집이라 해도 작은 부엌이 딸린 방 하나와 재래식 화장실, 마당 한 평이 전부다. 할머니는 "그동안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입고 싶은 것도 못 입어가며 한 푼 두 푼 모아 전셋집을 마련했다"며 "전세금 1,300만원 중에 500만원이 부족해 언니에게 빌렸는데 다 갚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전군자(74) 할머니...한 맺힌 사연에 눈물이 맺혔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전군자(74) 할머니...한 맺힌 사연에 눈물이 맺혔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할머니는 평생 한 맺힌 사연도 털어놨다. 할머니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 선산에서 살았다.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23살에 결혼해 남편을 따라 서울 영등포에서 살았다고 한다. 전 할머니는 "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캐고, 어머니는 파출부로 일하셨다"며 "당시 살림살이가 빠듯해 밥 숟가락 하나라도 덜려고 남편과 무작정 결혼했다"고 말했다. 가족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에겐 자식도 남편도 없다. 신혼 시절 임신이 되지 않아 찾았던 병원에서 불임 판정을 받아 아이를 갖지 못했다. 할머니는 "한 평생 아이 갖지 못한게 한이 됐다"며 "젊었을 때 아이를 훔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전 할머니는 42세가 되던 해 남편과 결국 이혼했다. 결혼 20년이 지났을 즈음 남편에게 자식 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소리 듣고 내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어. 근데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남편이 막 때리더라고..." 결국, 남편과 이혼 한 뒤 언니가 있는 대구로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뜰 무렵. 전 할머니는 "꼭, 자주 찾아와 달라"며 당부했다. 할머니는 문 밖에 나와 골목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그만큼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한편, 2010년 10월 현재 대구 중구의 홀몸어르신은 3500여명으로,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80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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