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한 곳에서...어느 '뻥튀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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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천대로 / 한 봉지 2천원, 한 시간에 겨우 한 두개..."혼자 살기도 힘들어"


대구 신천대로 동신교 북쪽 신호등 앞. 늘 같은 자리에서 '뻥튀기' 과자를 파는 한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새해 첫 월요일인 1월 3일. 간간이 눈발이 날린 이날 오후에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이 신호등 앞에서 뻥튀기를 팔고 있었다. 등에 뻥튀기 한 보따리를 짊어진 채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차 사이를 오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매우 힘겹게 보였다.

할머니가 파는 뻥튀기 값은 단돈 2,000원. 그러나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할머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자마자 정지선 바로 앞부터 차례로 차창을 두드리며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애를 쓰지만, 이내 신호가 바뀌어 서있던 차들이 모두 떠나고 만다. 차가 지나간 뒤 또 다시 정지선으로 돌아오기를 하루에도 수십차례 반복한다.

대구 신천대교에서 뻥튀기를 팔고 있는 할머니...수 없이 차창을 두드려 보지만 대부분 눈길도 주지 않는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 신천대교에서 뻥튀기를 팔고 있는 할머니...수 없이 차창을 두드려 보지만 대부분 눈길도 주지 않는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한 뻥튀기 할머니(71.칠곡)는 "이곳에서 장사한지 10년이 넘었다"며 "매일 칠곡에서 버스를 타고 온다"고 말했다. 날씨가 추운 탓에 내복과 모자, 보자기와 장갑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모습이었지만 그리 따뜻해 보이진 않았다.

"늙어서 배운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이거라도 팔아야지..."
할머니는 매연으로 시커멓게 찌든 옷을 손으로 가리키며 "날씨도 추운데다 차 연기(자동차 매연)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다"며, 특히 "하루 종일 걷는 일이다 보니 다리는 물론이고 발바닥이 터질 듯이 아프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또 "몸이 좋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며 "아침 겸 점심을 챙겨먹고 이곳에 나와 해지기 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사람이) 할 짓이 못돼. 하루 종일 힘들게 팔아도 혼자 먹고살기 힘들어. 그래도 별 수 있나. 이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할머니는 도로가에 앉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뻥튀기를 꼭 끌어 앉고 있었다. 

뻥튀기를 꼭 끌어 안고 오가는 차들만 바라보는 뻥튀기 할머니...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뻥튀기를 꼭 끌어 안고 오가는 차들만 바라보는 뻥튀기 할머니...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 "할머니, 집도 멀리 있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장사하세요?"
= "10년 넘게 여기서 팔았어. 여기가 그나마 괜찮으니 계속 나오지"

- "하루에 얼마나 파세요? 돈 벌이는 좀 되나요?"
= "차는 많아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어. 한 시간에 한두 개 팔 때도 있고, 못 팔 때도 있어. 돈 버는 것도 혼자 겨우 먹고 살만큼 밖에 안 돼"

- "다리가 불편해 보이던데, 병원은 가보셨나요?"
= "병원을 어떻게 가. 먹고살기도 힘든데..."

- "엊그제 새해였는데, 떡국은 드셨나요?"
= "아이고, 삼시 세끼 밥 먹기도 힘든데 떡국을 어떻게 먹어. 못 먹었지..."


할머니에겐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반겨줄 가족이 없다. 5년 전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줄곧 혼자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딱히 정해진 직업 없어 이곳 저곳에서 잠깐씩 일하며 간간이 돈을 벌었다고 한다. "두 딸과 아들이 있지만, 멀리 있는 자식들도 사는 게 힘들어 잘 찾아오지 못 한다"며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명절 때 가끔 찾아온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1시간 내내 할머니는 도로 위 차들만 쳐다봤다. '손님 하나라도 놓치면 어쩌나'하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괜히 할머니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뻥튀기 5봉지를 사드렸다. 그래도 더 이상 할머니를 붙잡아 두면 안 될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할머니는 끝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화를 마친 할머니는 다시 뻥튀기 보따리를 등에 짊어진 채 서둘러 차량 행렬 사이로 향했다.

신호가 바뀌자 다시 정지선 쪽으로 다가가는 뻥튀기 할머니...하루에도 수십 차례 이곳을 오가며 팔지만 할머니는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신호가 바뀌자 다시 정지선 쪽으로 다가가는 뻥튀기 할머니...하루에도 수십 차례 이곳을 오가며 팔지만 할머니는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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