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폭만 알고 전쟁은 잊었는가..." - 김두현

평화뉴스
  • 입력 2004.08.13 09: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범국 일본, 식민지 민중의 고통과 한을 기억해야"


지난 8월 6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반도를 넘어 이국땅을 밟아보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핵폭탄의 피해를 입은 일본 히로시마였다. 태어나서 바깥으로 처음 나가본 곳이 지난 2001년에 간 평양이니 이래저래 통일과 평화를 위해 살아야 하는 팔자인가 보다.

이번 방문은 '8·6 히로시마 대행동'이라는 일본의 평화운동 단체의 초청에 의한 것이었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최봉태 대표 등 5명의 평화운동가들이 8월 5일 부산에서 훼리호를 타고 출발하였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8월 6일은 낯선 날이다. 우리는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8월 15일을 기념해 왔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원폭이 일어난 8월 6일은 일본에게 태평양전쟁의 패전을 가져온 날이자 우리에게는 해방을 가져온 날로 인식되어 오기도 했다. 그래서 8월 6일을 기념해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는 일본 평화운동의 인식에 대해 거리감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과연 8월 6일 일본에게 아니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날인가? 또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은 8월 6일을 어떻게 봐야할까? 6일 새벽 선상에서 바라본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설렘과 함께 혼란도 찾아왔다.

8월 6일 낮 12시 히로시마 현립체육관의 열기는 뜨거웠다. 일본 열도 곳곳에서 모인 평화운동가들의 반전 평화의 의지는 분명했다. 약 3천여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외쳤다.
"침략전쟁 저지하자", "자위대 파병 결사 반대한다", "이라크 전쟁 반대한다", "일.미 안보조약 반대한다."

구호는 현립체육관을 넘어 3시부터 시작된 거리행진에서도 쉴 새 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3천여명의 확고한 의지와 열정과는 달리 히로시마 시의 대부분의 시민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통역 자원봉사를 해준 후꾸도메씨는 이를 일본의 우경화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8월 7일 오전 우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을 방문하였다. 그곳에는 원폭의 공포와 광대한 피해의 절절함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폭격에 의해 훼손된 돔건물, 원폭의 후유증에 의해 사망한 소녀의 사연. 3살짜리 아이가 사망하고 남긴 자전거 유물. 그리고 우리의 역사속에서 기억속에서 지워져 있던 조선인(한국인) 피해자의 위령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원폭의 끔찍함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의 원폭의 피해를 잊지 않기 위해 히로시마의 시민들과 일본 국민들이 이날도 끊임없이 찾고 있었다. 원폭의 피해속에서 히로시마는 분명 군사도시에서 반전과 평화의 도시로 거듭나 있었다.

"사죄와 반성없는 일본...원폭의 아픔과 더불어 식민지 민중의 고통과 한을 기억해야"
"일본의 우경화,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한.일 민간 평화운동의 교류로 전쟁없는 동북아시아를!"


하지만 나는 원폭에 의해 불탄 13세 소녀의 교복을 보며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원폭의 피해가 넘쳐나는 이 자료실 속에서 일본인의 아픔과 일체감을 느끼기에는 뭔가 모를 공허함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자료실에 8월 6일은 넘쳐나지만 8월 15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기념관의 기록은 8월 6일 원폭으로 인한 일본의 피해를 강조하면서 일본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만 기억시키고 있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와 태평양 침략전쟁에 대한 명확한 사죄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역사의 기록으로 인해 일본인들은 근대사를 침략의 역사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8월 6일과 히로시마가, 일본의 평화운동이 보편성을 가지려면 8월 15일날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식민지 민중의 아픔과 고통도 히로시마 평화기념 자료관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일본은 8월 6일 원폭의 피해와 아픔과 더불어 식민지 민중의 고통과 한을 공유해야 한다. 이에 더불어 한국도 8월 15일 해방의 기쁨과 함께 원폭의 피해와 아픔을 공유해야 한다. 이것이 8월 6일이 일본의 날, 8월 15일이 한국의 날이 아닌 8월 6일과 15일 양일모두 동북아시아 민중이 함께 기억해야 하는 날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길이다.

7일 저녁 한일 평화운동가들의 교류회에서 일본의 평화운동가들도 이에 대해 동감을 표시했다. 한일 양국 평화운동의 연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과거를 넘어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최근 미국의 새로운 동북아 지배전략에 대해 한일 평화운동 진영이 공동 대응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공격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의 재배치와 더불어 MD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주일미군의 강화는 둘이 아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8월 6일과 8월 15일의 간극을 뛰어넘어 동북아 공동의 평화의 집을 위해 미국에 맞서 든든한 평화의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동북아사아의 평화는 한일 양국 정부에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한일 민간 평화운동진영의 교류와 연대만이 이를 위한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한일 민간 평화운동진영의 든든한 연대를 통해 동북아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핵 위협이 없는 동북아시아를 위해.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동북아시아를 위해.
평화와 민주주의 동북아시아를 위해.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

[시민사회 칼럼]은
매주 수요일마다 실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8.18(수) 조근래(구미경실련 사무국장)
8.25(수)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국장)
9. 1(수) 문창식(대구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9. 8(수) 정재형(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 사무국장)
9.15(수)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www.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