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유치전, '신공항' 보도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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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구 "백화점 입점으로 약령시 위기" / 대구MBC "과학벨트 힘겨루기"


대구시민이라면 누구나 대구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싶어 한다. 지난 2주 동안 대구 공중파 TV 방송보도에 비친 쟁점과 이야기들에는 대구에 대한 그런 긍지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있어 관심을 모았다.

약령시 실종위기 보도

지난 5일 KBS대구 메인뉴스는 약령시 실종 위기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 약령시가 인근에 대형 백화점 입점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임대료 상승과 교통난 등으로 입점 업체의 이탈이 계속되는 등 상권위축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KBS대구 뉴스9 (2011.5.5)
KBS대구 뉴스9 (2011.5.5)















약령시는 대구 '아이콘'


약령시-외지에서 가장 쉽게 대구를 떠올리는 아이콘이다. 오죽하면 대한제국이 붕괴되기 전에 대구에 와서 (결국 대한제국을 무너뜨리는데 안에서 협조한) 상업을 해서 돈을 벌고 신문사(조선민보사)를 경영한 한 일본인조차 '본방(그러니까 이 사람에게는 일본을 가리킨다)의 소학교 교과서 교재(敎材)가 됐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딱 80년 전에 이야기한(1931년 나온 『대구이야기』), 바로 그 '대구 약령시'가 실종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약령시와 백화점을 바꿀 수 있나?

대구에 살던 일본사람조차 '본방의 유명한' 자랑거리로 여긴 그 약령시(약전골목)가 지금 비틀대고 있는데 보도에 따르면 그 원인이 딴 게 아니라 약령시 인근에 들어선 대형 백화점 때문이다. 이 백화점이 들어선 결과 임대료가 뛰고 차는 막히고 그래서 약전골목에서 입점 업체들이 속속 떠나고 그에 따라 상권위축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장기발전계획은 시가 수립하고 있지만, 약령시 운영자나 건물 주인이 약령시 보존을 위해 자구노력해야 한다"는 대구시 당무자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다지 적절한 말도 아닌 것 같다. 약전골목을 떠난 약령시가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문제'가 현실로


이 보도가 지적한 문제점은 그 백화점이 들어선다고 몇 년 전 보도됐을 때부터 제기돼 온 '예상문제'란 점에 있다. 이제 '예상'이 '현실'이 된 것인데 이 사태(모 백화점 입점의 판을 짠)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는 이날 보도가 다루지 않았지만 그 책임에서 대구시가 자유롭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약령시

약령시가 위축된다는 것은 수치로만 따져도 대구의 위기다. '지방화가 세계화'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대구를 알리기 위해 돈을 쏟아 붓고 있는 판에 대구를 알리기 가장 좋은 약령시가 지금 사라질 위기에 있다면 이것은 대구로서는 큰 일 중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모 백화점이 입점해서 대구에 가져다줄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대구의 아이콘 '대구약령시'가 사라지는 것은 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낳는 거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예삿일이 아니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대구의 긍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돈으로만 치더라도 대구의 축제를 거기서 시작하고 있고, 그 동안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관광대구'에 볼거리가 없다는 판이 아닌가.

대구시 고위당무자 정책능력 따질 시금석

그러면 대구시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 라고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이 물음은 대구의 아이콘과 모 백화점을 바꿀 수가 있나 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대구에 백화점이 아무리 많이 들어선다고 해도 대구가 '백화점도시'로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는 쉽지 않다(그리고 '백화점도시'가 된들 대구에 돌아올 이익이 뭘까?) 따라서 약령시 위기론은 대구시 고위당무자들의 정책능력을 따지는 시금석이 돼야 한다.

'과학벨트' 신공항 보도 재판 양상

과학벨트 유치 관련 보도가 대구의 신문과 방송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보도량만 보더라도 영남신공항 재판이란 인상을 준다. TBC는 지난 4월 27일 '벨트시리즈1'-'왜 유치해야 하나'로 시작해 5회 연속 집중 보도해 시청자들에게 과학벨트에 대한 대대적인 방송교육을 시작했고 여타 공중파들도 집중 보도하기는 마찬가지다.

TBC대구방송 프라임뉴스(2011.4.27)
TBC대구방송 프라임뉴스(2011.4.27)















과학벨트를 시청자-대구시민? 경북도민-에게 알리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후의 대대적, 집중 보도라면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의 교훈이 배어난 보도가 되기를 시청자들은, 정치권에 대해서 바라듯이 당연히 바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힘겨루기로 흘러' 제목의 지난 9일 대구MBC 보도를 보자.


대구MBC 뉴스데스크 5월 9일 / '힘겨루기로 흘러'

정부의 과학벨트 입지 2차 평가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정부가 충청과 광주의 정치공세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경북도 붉은 머리띠를 둘렀습니다. 홍보전이라고 이름 붙인 세대결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SYN▶ "정치적 논쟁을 철저히 배격하고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SYN▶ "변경되어야 한다, 변경되어야 한다"
법에 정한 대로 하자던 경고성 어조는 절박한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대구.경북.울산이 요구한 평가지표 수정이 연일 이어지는 대전과 광주의 정치공세에 밀린 탓인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 과학자를 평가단에 포함시키자는 제안과 비교평가지표를 늘리자는 요구는 모두 묵살됐습니다. 평가 안을 만드는 교과부는 귀를 막고 등을 돌리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SYN▶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굉장히 아이러니한 이야긴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정권을 창출한 지역에서 정치적인 해결을 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3개 시.도 대학생 공동연대가 대통령 출신 지역이라는 이유로 역차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오는 12일에는 국회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결의대회를 엽니다. 과학벨트 특별법이 무색하게 정치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과학벨트 입지 선정은 결과 발표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역차별' 강조

김관용 지사는 보도 속 화면에서 '굉장히 아이러니한 이야긴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정권을 창출한 지역에서 정치적인 해결을 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라고 했다. 정치 부문이 과학벨트 입지 선정에 개입할 소지를 암시하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는 대구 경북 울산의 3개 시도 대학생 공동연대가 '대통령 출신 지역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 김 지사가 말하는 '절박한 상황'은 '역차별'과 맥이 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흐르기 시작'

김관용 지사의 말이나 학생들의 말은 기자가 자기 보도에 동원하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 그 '재료들'을 통해 '정치'='역차별'이 현재진행형임을, 또는 그 가능성이 있음을 시청자들에게 환기한 기자는 '과학벨트 특별법이 무색하게 정치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과학벨트 입지 선정'이란 흐름으로 보도를 맺었다. '정치'를 단연 차단해야 한다는 것을 기자가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보게 한다.

그런데 기자는 이런 말도 했다. '정부가 충청과 광주의 정치공세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경북도 붉은 머리띠를 둘렀습니다.'

정치공세 기정사실화?

충청도와 전라도의 정치공세를 기정사실화해서 시청자들에게 방송교육을 하는 셈인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 동안 보도를 보면 세종시가 후보지에서 탈락했을 때는 '다만 충청권에서 그간 최대의 이유로 내세운 세종시 공약 이행이라는 정치논리에서는 벗어나게 됐습니다'고 했다(4월 29일 세종시 탈락 영향은?).(그런데 대통령이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국민에게 제시하고 당선 뒤 공약을 이행하는 '공약이행'이 '정치논리'가 되나?)

정치권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지난 4일 '정치권도 나선다'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한 바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호남지역은 민주당 5선 의원이 유치위원장을 맡아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충청권 국회의원들은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국민중심연합 할 것 없이 소속 정당을 초월해 유치 지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소관상임위인 교육과학위원회 소속 의원 외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대구MBC 뉴스데스크 (2011.5.4)
대구MBC 뉴스데스크 (2011.5.4)




















그 결과 그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온 대구의 국회의원들이 뒤늦게 유치 지원을 위한 긴급모임을 갖고 국회에서도 관련세미나를 열어 대정부 압박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충청과 호남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별로 유치 노력을 했고 이제 대구의 의원들도 뒤늦었지만 유치노력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보도의 맥락을 보면 '정부는 충청과 호남의 '정치공세'에 밀리지 말아라'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치공세가 있었다면) 늦었지만 제대로 된 일이다. 

감성보도, 지역감정? 남 탓하기 '부채질'

과학벨트는 정말 정치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만큼 보도도 '정치공세'와 관련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감성보도가 아닌, 건조하더라도 사실보도여야 한다. 반드시 납득할 만한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쪽도 그러니 우리도...'하는 교정 불능의 지역감정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여론몰이는 지역감정, 남 탓하기란 고질병을 고착화하는 지름길이다.

'힘겨루기' 지양할 대책 고민해야

'힘겨루기'는 기자의 보도대로라면 충청-호남에 이어 대구권 의원들도 가담한다고 하니까 삼각 대결을 시청자들은 언론-TV보도에서 보게 될 듯하다. 문제는 기자가 말한 '힘겨루기'를 지양할 대책이다. '힘겨루기'는 공정하게 할지 모르나 과학벨트 입지 선정의 질적 향상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 대목을 언론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행여 아직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33]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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