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눈물바다' 된 2차 희망버스.. 3차 버스 시동 “부릉부릉”

민중의소리 김보성 기자
  • 입력 2011.07.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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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 경찰 타협안 거부, 김진숙 지도위원 "반드시 승리한다"


9일 밤 부산시 영도 한진중공업 근방에서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경찰의 차벽을 넘기위해 계단을 만들고 있다. ⓒ양지웅 기자
9일 밤 부산시 영도 한진중공업 근방에서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경찰의 차벽을 넘기위해 계단을 만들고 있다. ⓒ양지웅 기자
9일 밤 부산시 영도 한진중공업 근방에서 경찰이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을 방패로 밀며 해산시키고 있다. ⓒ양지웅 기자
9일 밤 부산시 영도 한진중공업 근방에서 경찰이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을 방패로 밀며 해산시키고 있다. ⓒ양지웅 기자

"소금꽃 그대있어 희망은 있다".. 3차 희망버스 다시 뜬다


거리에서 48시간, 1박2일. 전국 방방 곳곳에서 출발한 185대의 희망버스. 그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길은 비록 경찰의 차벽에 막혔지만 3천여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3차 희망버스를 기약하며 또 다른 희망을 약속했다.

어깨를 걸고 ‘함께 가자 이 길을’ 노래를 부르던 어떤 이들은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오늘이 끝내 안타까운 듯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어떤 이는 서로를 격려하며 부둥켜안았다. 서울서 온 가족과 부산서 참가한 가족이 서로를 응원했다.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폭우 뚫고 185대 1만 시민 부산 도착.. 경찰 최루액·물대포로 원천봉쇄


희망버스가 9일 오후 6시 부산역에 도착하기 하루 전부터 사측과 경찰은 각각 철조망과 감시카메라, 93개 중대를 배치해 행사를 원천봉쇄했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장대비까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희망버스 185대는 기어이 부산역에 다다랐고, 1만여 시민은 부산역을 둘러싼 경찰차벽의 봉쇄를 뚫고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봉래동사거리로 진출했다. 그러나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경찰은 봉래동사거리와 SK주유소로 향하는 길목을 2대의 차벽과 3대의 살수차량을 동원했다. 수천 명의 경력을 배치해 희망버스 행진대열의 85호 크레인 진출을 빈틈없이 막았다. 결국, 대치가 길어지면서 이날 자정 최루액을 살포하며 1차 강제진압이 시작됐다. 10명의 참가자가 이때 연행됐고, 이어 경찰은 10일 새벽 2시 20분께 최루액과 색소가 담긴 물대포를 쏘며 해산작전에 나섰다. 또다시 38명의 참가자가 경찰에 강제연행됐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도 예외는 없었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과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최루액을 흠뻑 뒤집어썼고, 이정희 대표는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85호 크레인을 1km 남겨둔 이곳에서 10일 오후 2시까지 아주 특별한 ‘난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자신의 의견을 담아 자유롭게 말하고, 삼삼오오 모여 준비해온 행사를 흥겹게 선보였다. 그리고 다시 2차 희망버스의 운명을 결정했다.

10일 오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에 참석한 늘픔약사회 회원들이 한진중 프리덤 율동 공연을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0일 오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에 참석한 늘픔약사회 회원들이 한진중 프리덤 율동 공연을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0일 오전 부산시 봉래동 로터리에서 경찰이 차벽과 물대포 차로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가운데 이날 새벽 경찰이 쏜 색소와 최루액이 바닥에 고여있다. ⓒ양지웅 기자
10일 오전 부산시 봉래동 로터리에서 경찰이 차벽과 물대포 차로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가운데 이날 새벽 경찰이 쏜 색소와 최루액이 바닥에 고여있다. ⓒ양지웅 기자
10일 오후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로터리에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적고 있다. ⓒ민중의소리
10일 오후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로터리에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적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날 오후 2시 50분. 희망버스를 주최한 기획단이 마지막으로 행진대열을 부산 영도구 봉래동 사거리 입구에 한데 모았다. 기획단은 오전 △연행자 석방 △오후 2시까지 85호 크레인 행진 허용 등 두 가지 요구안을 마련해 부산경찰청에 전달했다. 경찰은 두 가지 요구안에 대해 연행자 석방은 검찰 소관에 해당하므로 결정권한이 없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고, 김진숙 지도위원 만남 성사는 30여 명의 대표단을 구성해 진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기획단은 이 같은 결과물을 들고 긴급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한 것이다.

발표에 앞서 도경정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 대표의 마지막 발언이 주어졌다. 도경정 대표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오늘 우리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했다”며 “2차 희망버스로 진정 희망을 얻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도 대표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작성한 8천여 장의 희망엽서를 반드시 85호 크레인에 올려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김진숙 "왜 두렵지 않았겠나.. 그러나 반드시 승리한다"

180여 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의 전화통화가 시도됐다. 그리고 희망버스 행사장은 금세 울음바다가 됐다.

“물대포를 맞고 끌려가는 여러분들이 정말 눈물겹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한 달 동안 우리가 만든 이것은 기적이었고, 어제 겪은 일은 역사가 됐습니다.
차가운 절망이 저 절망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여길 때 온몸으로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퇴거명령강제집행으로 조합원들이 내동댕이쳐질 때, 모이기만 하면 연행하던 때,
크레인 강제침탈기도가 몇 차례 시도되던 때, 저는 희망버스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수천 명의 경찰과 용역에 둘러싸여 고립된 85호 크레인이 왜 두렵지 않겠느냐”며 “우리 조합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데 내가 포기하지 할 수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003년 10월 17일 김주익의 시신을 확인한 뒤로 다시 이 크레인에 올랐을 때 그날 이후로 85호 크레인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신부님, 수녀님, 한진 일이라면 밤낮없이 함께 해준 트위터 여러분.
85호 크레인의 고립감과 단절감을 알면서도 김주익의 129일 그 고통을 왜 몰랐는지,
그 외로움을 129일 동안 외면했는지 이제야 반성합니다.
반드시 이들의 원한을 안고 이곳에서 다시 내려갈 겁니다.
전국에서 이렇게 함께해준 희망버스와 여러분이 계시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물방울이 모여 어떻게 희망의 바다가 되는지,
작은 희망의 꽃씨가 모여 꽃밭을 만드는지 기억해야합니다.
조합원 여러분 결코 지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김 지도위원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자 일부 참가자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훔쳤다. 또 “우리 모두 소금꽃이다. 반드시 승리하자”를 함께 외쳤다.

이어 희망버스 기획단 ‘깔~깔~깔’의 송경동 시인이 최종 결정 내용을 전하기 위해 대열 앞으로 나왔다. 송 시인은 이틀 간의 행사를 거치며 목이 쉰 상태. 희망버스를 준비하기 위해 20여 일 가까이 집을 나왔다던 송 시인은 “1박 2일 동안 우리는 저 외로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손 한번 흔들어 주고 가겠다는 그 마을 뿐이었다”며 최종 논의내용을 발표했다.

한달 내 3차 희망버스 다시 시동... 규모 늘려 다시 영도조선소로

결과는 경찰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 송경동 시인은 “아쉽더라도 저들의 기만적인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의견을 모았다”면서 “더 큰 투쟁을 결의하자”고 말했다. 대신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제발로 내려올 수 있도록 3차 희망버스를 여러분의 결의로 약속하고자 한다”며 제안을 던졌다.

송경동 시인은 “우리는 이겨왔고 또 이길 것”이라며 “날짜는 특정하지 않고 한 달 이내로 3차 희망버스를 조직해 김진숙 지도위원이 열사의 염원을 안고 스스로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들자”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어떤 진화의 버스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며 “희망의 모든 것이 되어 달려오자, 모든 새로운 꿈을 조직하자”고 참가자들을 향해 호소했다.

오후 3시 30분. 다시 영도조선소 입구 봉래사거리 희망버스 행사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함께 가자 이 길을’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3천여 희망버스 행진대열 중 어떤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어떤 이들은 서러운 듯 눈물을 훔치며 두 손을 굳게 맞잡았고, 지역을 넘어 가족과 가족이 희망을 약속했다.

한진중공업 해고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와 부산지역 참가단 50여 명이 1차선 도로 양쪽에 서서 다시 버스에 오르는 이들을 배웅했다. 배웅에 나선 조합원들과 눈물을 훔치며 각 지역으로 돌아가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마지막 인사는 다음과 같았다. “3차 희망버스에서 반드시 다시 만납시다.”

문정현 신부가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열린 '2차 희망의 버스' 정리집회에서 한진의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문정현 신부가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열린 '2차 희망의 버스' 정리집회에서 한진의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 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 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 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 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 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부산 봉래동 로터리에서 '2차 희망의 버스' 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민중의소리] 김보성 기자 / 입력 2011-07-10 17:24.수정 07-10 20:12 (민중의소리=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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