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날들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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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현 / '정리해고'에 맞섰던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의 끝에서


날이 무척이나 덥습니다.


이 무더운 날들을 부산에서는 김진숙 동지와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평택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닫힌 공장 문 앞에서 용역들의 폭력과 경찰들의 탄압에 맞서 ‘밤에는 잠 좀 자자’라는 아주 소박하고 당연한 구호를 외치며 아직까지 싸우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2011.8.6) / 사진. 김동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2011.8.6) / 사진. 김동은

또한 전라북도에서는 ‘킬로미터 임금제’란 듣도 보도 못한 임금체계에 고통당해 온 버스 노동자들이 민주당 지방정부와 경찰들의 탄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 무더운 날들을 더욱 무덥게 하고 있는 온갖 폭력과 탄압에 맞서 전국에 많은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시절이 수상하고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또 다시 금융위기를 동반한 자본의 경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긴축재정과 복지부분 삭감 등으로 이어지는 이들 국가의 경제위기(정확히는 자본의 위기)는 결국 노동자 민중들에게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97년 IMF때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금융위기 상황도 마찬가지였지요... 노동자들에게 대량해고와 실업이라는 반갑지 않은 선물을 건네는 자본의 피에 물든 손에 노동자들은 짱돌과 꽃병과 투쟁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너무 무기력하게 자본의 협박 ‘경제위기가 지속되면 모두 다 죽을 수 있다, 그러니 다수를 위해 일부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라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강요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자본의 협박에 노동운동의 지도부, 상층 관료들은 계획된 총파업을 접었고 잡혔던 투쟁 집회를 철회 하면서 자본의 정리해고를 용인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그 가슴 아픈 상황을 구구 절절 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당시의 아픔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그리고 이어지는 길고 긴 실업 그리고 스스로 죽었으나 그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고통스런 기억들...
정리해고를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투쟁 끝에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는 막을 수 없는 것, 정리해고를 막을 수 없는 노동조합은 믿을 수 없는 것, 그렇다면 붙어 있을 때 많이 벌어 두자라고 하면서 잔업과 특근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정리해고 도입 이후 노동자들의 가슴과 영혼엔 씻을 수 없는 아니 도저히 이겨 낼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바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그야말로 실리적으로만 생각 할 뿐 더 이상 스스로 투쟁에 나서게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오직 잔업, 특근만이 살길이며 내 옆에 동료가 죽든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 등이 사라지고 오직 경쟁을 통한 살아남기만이 유일한 목표로 남아 버리게 되었습니다.

실감 나지 않는 문자 메시지

며칠 전,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성당새마을금고 타결...명퇴 3명 및 위로금 지급...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금고 측의 온갖 부당행위를 당해가면서 그리고 정리해고에 맞서 싸워 왔던 성당새마을금고 노동자들의 2년여 간의 투쟁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에 대해 깊이 연대하지 못하고 가깝게 고민하지 못한 점은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많이 반성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 이렇다 저렇다고 쉽게 이야기 할 순 없지만 그래도 할 이야기는 해야겠습니다.
<성당새마을금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와 노조원들이 성당새마을금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고자 복직'과 '금고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2011.06.21)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성당새마을금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와 노조원들이 성당새마을금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고자 복직'과 '금고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2011.06.21)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최근 노동조합 투쟁에서 ‘정리해고’, ‘명예퇴직’이란 말이 너무 공공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 이것은 우리 노동조합 활동가 혹은 노동운동가들이 깊이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명예퇴직’은 무엇입니까?
과연 ‘명예’와 ‘퇴직’이 나란히 적혀 있어도 무방한 것입니까?
저들이 주장하는 ‘명예’는 평생을 바쳐 가며 한 직장에서 착취당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평생을 자본을 위해 일 해 주었으니 고맙다는 감사의 표현입니까?
그리고 ‘퇴직’은 또 무엇입니까? 쓸 만큼 사용했으니 이젠 그만 나가라는 섬뜩한 비수의 표현입니까? 이렇게 자본이 주장하는 ‘명예퇴직’이란 것이 과연 누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입니까? 그것은 감히 주장하건데 자본이 정리해고의 부정적인 의미를 축소 은폐하기 위한 단어를 노동 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혹은 알면서도 모른 채 하면서 공히 사용해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저들의 말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그것이 마치 정리해고는 아니니...위로금도 넉넉히 지급되니...이만하면 괜찮지 않느냐고 스스로 자족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새마을금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마는 데에는 감히 생각건대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이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고 어느 것 하나 여론화 될 수 없는 아주 작고 작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하찮은 투쟁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투쟁 과정 속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많은 양심세력들이 이 투쟁에 헌신하고 투신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민주노총 대구지역 본부의 활동가들도 이 투쟁 승리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헌신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당새마을금고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 새마을금고 노조(상층)의 무성의한 지원, 여론을 받을 만큼의 파급력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은 아니었다고 자평 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투쟁을 온전히 성과의 측면으로 볼 순 없겠지요.
제가 너무 심하게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번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을 우리 스스로가 저들이 이들 여성 노동자들을 탄압한 것과 같은 이유, 즉 여자들이 뭔 투쟁을 한다고, 해봐야 뭐 나올 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 할 테면 해봐라. 암만 투쟁해도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같은 이유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기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은 노동자 투쟁에서 절대 인정해선 안됩니다!!

성당새마을금고가 만약 부산 한진중공업과 같은 평택에 유성기업과 같은 대규모 사업장이었다면 혹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같은 상징적인 인물이 있었다면 과연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을 우리가 이렇게 소홀히 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성당새마을금고 노조는 아시는 것처럼 쪽수도 별로 없고 금속노조 처럼 노조의 재정과 투쟁력이 강한 것도 아닌 그야말로 노동조합 속에서도 작고 작은 노동조합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작은 노조, 비정규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노동자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노동자들, 거기에다 여성이었던 노동자들....
도대체 뭐 하나 내세울 것도 내 보일 것도 없었던 노동자들을 우린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너무나 쉽게 이들의 투쟁을 재단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작고 작은 노동자들의 절절한 투쟁에 얼마나 연대한 것인지 새삼 더욱 암담하고 쪽팔리는 상황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대구지역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정리해고’는 절대 안 된다는 그것이 명예퇴직이든 혹은 또 다른 이름의 구조조정이든 ‘해고’는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투쟁에 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에 별다른 개입도 관심도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의 결과가 결국 명예퇴직 3명으로 정리되고 이 문제를 대구지역 노동조합이 혹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그냥 넘어 가버린다면 이후 노동조합 투쟁에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길거리로 내 쫓기고 말 것입니다.
노동자들에게 해고란 것은 살인과 다름없습니다. 쌍용자동차 투쟁 사례에서 보듯 정리해고로 수많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생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정리해고를 비롯한 모든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습니다.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투쟁해왔던 선배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룩한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합이 지난 97년 이후로 계속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번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을 계기로 저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 있는 모든 활동가들과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활동가들은 먼저 겸허하게 반성을 하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개입하고 지역에서부터 토론을 활성화 시켜 한 사업장의 정리해고의 문제는 단순한 비단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함께 대처하고 투쟁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이번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에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게을리 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더욱 더 노력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성당새마을금고 노조 투쟁에 헌신적인 투쟁을 해왔던 모든 활동가 동지들에게 수고 했다는 말과 함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더 치밀하고 투철하게 투쟁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이후 성당새마을금고 투쟁을 지역적으로 평가하고 토론 하면서 우리 노동자 투쟁의 길-원칙적이고 계급적인 그리고 단결과 연대로 마침내 승리할 수 있는-을 올바르게 걸어 나갑시다.






[기고]
신경현 / 노동자 시인. 성서공단노동조합 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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