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회장님'과 보도의 상관관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BC 회장의 '투표지침'과 '박정희' 담론 / 영남일보 '명품보'


 귀뚜라미 회장의 '권력' 

SBS의 2대주주이자 TBC 대구방송의 대표이사 회장인 최진민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이 사내통신망(인트라넷)을 통해 올린 ‘무상급식주민투표참여지침’은 우리 사회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조직’을 통해 얼마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들의 부당한 권력 앞에서도 취약한지 구조적인 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남일보의 ‘명품보’ 기사는 건설사를 모기업으로 하는 언론사의 담론(여론형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진민 귀뚜라미보일러 회장은 ‘투표지침’ 2건을 사내통신망(인트라넷)에 올렸고 이 사실을 진보신당 서울시당이 18일 공개하면서 주민투표법 제28조를 위반(직업ㆍ종교ㆍ교육 그 밖의 특수관계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주민투표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서울시선관위에 철저한 조사를, 귀뚜라미보일러에 대해서는 사과를 촉구했다. 

 '투표지침'과 '빨갱이'

<경향신문> 2011년 8월 19일자 10면(사회)
<경향신문> 2011년 8월 19일자 10면(사회)

























최진민 회장이 사원들에게 내린 ‘투표지침’은 ‘서울시민 모두 오세훈의 황산벌 싸움 도와야’와 ‘공짜근성=거지근성’ 2건. 최 회장은 ‘…황산벌싸움…’에서는 ‘빨갱이들이 벌이고 있는 포퓰리즘의 상징 무상급식을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포퓰리즘으로 망하고 좌파에 의해 완전 점령당할 것’이라면서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 빨갱이들의 횡포를 완전 제압해야 할 것’  “서울시 총유권자 수는 836만, 이중 3분의 1인 278만명이 투표에 참가하고, 투표자의 과반이 무상급식에 반대표를 던지면 오세훈이 이기는 것” “서울시민 모두는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서 빨갱이들의 행패를 표로써 완전 제압해야 할 것”이라고 무상급식정책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반대투표를 하도록 했다.

 최 회장의 '무상급식' 왜곡

두 번째 ‘지침’-‘공짜근성=거지근성’에서는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공짜 점심을 얻어먹게 하는 건 서울역 노숙자 정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라며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공짜점심 먹고 자라면 나이 들어서도 무료 배급소 앞에 줄을 서게 된다. 이는 가난 근성의 대물림’이라고 무상급식의 취지를 극단적으로 왜곡했다.

특히 최 회장의 이 ‘투표지침’은  앞머리에 ‘회장의 지시’에 의해 공고한다고 명시하고, 특히 “특별한 경우가 없다면 8월 24일 서울시 주민들은 투표에 참여 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주셨다”라는 내용이 언급돼 있어 이 ‘지침’이 단순한 공고문이 아니라 사원들의 투표지침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지침의 성격, 회사 조직에서 최 회장이 차지하는 지위를 고려하면 이 회사 사원들은 최 회장의 ‘지침’에 어떻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매체, '최 회장' 보도 외면

문제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최 회장의 이 같은 작태를 보도한 언론매체가 19일치 한겨레( “공짜점심은 노숙자 근성 준비시키는 것” 귀뚜라미회장, 사원들 ‘오세훈 돕기’ 압력)와 경향신문(귀뚜라미보일러회장 “무상급식은 빨갱이 포퓰리즘”…회사측 “남의 글 인용한 것”)만이 보도했을 뿐 다른 매체들은 눈을 감은 사실이다. 언론이 상업주의로 치닫거나 편파성을 자임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 회장의 ‘지침’은 과연 그가 회장으로 있는 TBC에는 간접적으로라도 무상급식 관련 보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한겨레> 2011년 8월 19일자 8면(종합)
<한겨레> 2011년 8월 19일자 8면(종합)

최 회장의 ‘지침’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학교 무상급식이 복지 또는 교육의 문제임에도 ‘빨갱이’란 용어를 사용한 데서 보이듯 색깔=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려는 점이다. 특히 6․25, 이후 이승만․박정희 등 권위주의․철권통치 하의 ‘반공주의’가 어떻게 국민을 움츠러들게 했는지 그 경험을 잊을 수 없는 국민들에게 최 회장의 다분히 선동적 ‘지침’은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지만 문제는 그가 시청자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란 점이다.

방송은 전파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 전파는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만일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자유로운 토론이 아니라 이념갈등을 선호하는 퍼스낼리티라면 그 방송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그 전파의 관리권을 그대로 맡겨도 되는 것일까?

 언론사CEO․자본의 성격

이것은 언론사 최고의사결정권자의 퍼스낼리티, 또는 언론자본의 성격이 언론의 논조, 즉 언론이 독자․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담론(‘여론’이라고 독자․시청자들이 믿게 되는)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상관관계를 언론소비자들은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 귀뚜라미 회장이 역시 회장을 맡고 있는 TBC는 8월 17일 ‘시사와이드’에서 ‘박정희 리더십과 새마을운동’을 집중적으로 부각(‘토론’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때 아니게 박정희 신드롬을 의제로 설정한 것과, 영남일보가 ‘강정․고령보’를 큰 사진을 곁들여 ‘명품보’로 대서특필한 기사(8월 16일 2면 ‘규모․디자인 감탄/국내 최고 ‘명품보’/양 지장체 주장/ 이해할 만하네~)가 그 사례이다.

 느닷없는 '박정희…'

TBC 대구방송 '시사와이드' - <박정희 리더십과 새마을운동>(20118.17)
TBC 대구방송 '시사와이드' - <박정희 리더십과 새마을운동>(20118.17)

TBC의 ‘시사와이드’-‘박정희…’에서 사회자의 다음과 같은 도입말을 보면 ‘미디어창’의 지적이 ‘오비이락’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7백59달러를 기록하면서 3년 안에 국민소득 3만 달러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 국민소득 3백 달러 남짓했던 시절에 비하면 전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불과 40년 만에 후진국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국대열로 올라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제기적을 이뤄낸 힘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탁월한 안목과 리더십을 꼽고 있습니다.
오늘 시사와이드에서는 이러한 박정희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리사회가 더욱 다원화된 지금 이 시점에도 박정희 리더십이
국가와 지역발전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전문가들과 토론해보겠습니다.


이 도입말이 이날 ‘시사와이드’의 내용을 압축해서 안내한다고 한다면 이 도입말은 박정희를 ‘탁월한 안목과 리더십’으로 ‘경제기적’을 일군 ‘영웅’으로 부각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지만 ‘토론’ 어디에서도 박정희의 이른 바 ‘박통 18년’의 억압․폭력․통제정치,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강압과 배제를 구사함으로써 ‘실종’ 사건이 잇따르는 등 도저히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인물(전인권 지음, 『박정희 평전』)이었다는 점은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상업방송으로 치부되는 TBC가 ‘박정희…’를 의제로 해서 의미를 남다르게 찾으려 했다면  ‘박근혜’ 등장을 위한 멍석 깔기로 보는 일각의 시각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객관적 시각에서 토론답게 진행해야 했다.

 '명품보' 기사, 모기업 자본의 속성?

그런가 하면 영남일보의 ‘명품보’ 기사는 이 신문사의 최대 주주가 건설회사임을 여지없이 드러낸 점에서 건설회사가 최대 주주인 언론사의 보도행태가 가지는 문제점을 보여줬다. 이 신문은 ‘명품보’-‘강정․고령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보 길이 953.5m/저수량 1억800만t/수문크기 세계 두 번째/가야금 형상 본뜬/구조물 ‘탄금대’/유원시설 ‘낙락섬’/가야․달성군 문화조화/풍성한 볼거리 제공’

<영남일보> 2011년 8월 16일자 2면(종합)
<영남일보> 2011년 8월 16일자 2면(종합)

이만하면 ‘명품보’라는 수식어가 되레 모자랄 지경이고 차라리 ‘환상의 보’라고 하는 것이 바를 듯하다. 그러나 이 기사의 어디에도 MB의 ‘4대강사업’이 역행침식 등으로 자연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시키고 그것이 우리세대, 우리 후손 세대의 삶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학자․전문가들의 경고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최근 강정보에서 강정고령보를 바꾼 명칭이 다시 논란’이 된 것을 ‘논란’거리라면서 끄트머리에 장식했을 뿐이다.

얼핏 전형적인 호기심 자극 흥미위주 또는 홍보성 보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아니라 건설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언론사가 ‘개발만능주의’ 담론을 모기업 자본의 속성으로 매끈하게 잘 우려냄으로써 독자를 개발만능의 환상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언론 자유-특수관계의 상관성

TBC도, 영남일보도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누려야 한다. 그러나 회사조직이란 ‘특수관계’를 통해 국민/주민의 신성한 투표권에 영향을 미치려 하거나, 모 기업의 자본적 속성에 영합한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이점은 일부 대형교회들이 교회라는 조직을 활용, 교인들에게 설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투표에 영향을 미친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10대 동성애 늘 것’ 등 터무니없는 메시지를 관계있는 양 주입하기까지 한 일부 종교 대형교회의 일탈/타락(한국일보 8월 24일 1면 대형교회 ‘투표독려’ 불법 난무했다)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해야 할 종교가 제 자리에서 일탈함으로써 사회가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경향신문 8월 25일 사설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 한겨레 8월 20일 사설 ‘부끄럽게도 선관위 감시받는 ‘정치교회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일탈행동은 기득권을 더욱 키우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것이 궁극 목표/목적이지만 그럴수록 사회 양극화와 갈등은 더 커질 뿐이다. 그것을 막는 길은?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49]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