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서 재라도 고향땅을 밟고 싶다”

평화뉴스
  • 입력 2004.09.0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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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는 김원철(86)씨 등 북녘 출신 4명의 장기수
....가슴에 사무친 간절한 소망 “송환”
전향서 썼다는 이유로 1차 송환서 빠져
...“모진 고문으로 짜낸 전향 공작일 뿐”


김원철(86) 할아버지
김원철(86) 할아버지
['78년 가을. 전주교도소에서 말로만 듣던 사상전향공작이 진행됐다. 사상전향 전담반은 사회견학을 시켜주며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느냐"고 회유하다 곧이어 폭력적 공작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철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 끔직하게 들려오던 그때. 사상전향 전담반은 소위 '통닭구이'부터 시작했다. 봉을 가운데 두고 손과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단 뒤 몽둥이로 온 몸을 마구 때렸다.
그리고, 코에는 고춧가루 물을 붓는 등 철저히 동물적 행태를 해댔다. 수갑을 채워 의자에 온몸을 고정시켜 놓고 몽둥이로 쳐대던 그 전향전담반은, 밤에도 자살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고문을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고문에 이기지 못해 기절한 뒤 정신이 들자, 백지에 찍힌 지문을 확인하게 됐다. “조용히 살아가겠다”라는 말만 쓴다면 더 이상 고문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회유에 그들이 강요하는대로 지문이 찍힌 종이 위에 그 글을 썼다. 그것이 사상전향서가 됐다.]

올해 86살인 김원철씨가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에 털어놓은 이야기다.
지난 1918년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선박관리와 기관장을 하며 ‘바다꾼’으로 살다 홀어머니와 아내, 아들을 남겨두고 지난 1960년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듬해 1961년 간첩혐의로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6년동안 옥살이를 하다 지난 ’87년 사면돼 출소했다. 오랜 수감생활로 지칠대로 지친 김씨는, 혼자 살아갈 힘도 없이 대구 성서에 있는 ‘사법보호소(법무부 교정국 소속)’에서 청소나 잡일을 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쓸쓸히 지내고 있다.

이학천(76) 할아버지
이학천(76) 할아버지
지난 2000년, 통일만 그리며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던 비전향장기수 63명이 북녘의 고향으로 돌아갔던 1차 송환.
김씨는 사상전향공작에 따른 모진 고문으로 쓴 ‘전향서’ 때문에 1차 송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모진 고문과 전향서가 40여년에 걸친 송환의 꿈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 고문으로 짜낸 전향서를 이유로 송환의 꿈을 가로막다니...”

이같이 ‘단지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1차 송환 대상에 제외돼 2차 송환을 바라고 있는 대구지역의 북녘 출신 장기수 할아버지는, 김씨를 비롯해 이학천(76), 강창업(75), 김종하(75) 할아버지 등 모두 4명이다. 또, 전국에는 28명의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같은 처지에서 송환을 바라고 있다.

특히, 지난 해에 대구 김대수 할아버지를 비롯한 장기수 3명이 꿈에 그리던 고향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기에, 2차 송환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은 더욱 애절하다.

이 가운데, 김원철씨는 흔히 말하는 ‘남파 간첩’이지만, 다른 3명의 장기수는 사상전향과 아무 관계없는 6.25 전쟁포로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면서 북녘으로 송환돼야 했지만,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것이다.
강창업(75) 할아버지
강창업(75) 할아버지


김종하 할아버지는 28년(’55-’83)동안 옥살이를 한 뒤 출소해 지금은 칠곡에서 버려진 종이를 모아 팔며 어렵게 살고 있다. 또, 이학천 할아버지는 칠곡에서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에 기대 살고 있고, 강창업 할아버지는 경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향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 윤보현 사무국장은 “이미 정부에서도 인권침해 등 위헌성을 들어 사상전향제도를 폐기시켰고,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전향공작의 위법성을 인정한만큼, 모진 고문에 못이겨 쓴 ‘전향서’가 더 이상 송환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며 이들 장기수 할아버지의 2차 송환을 정부에 촉구했다.

김종하(75) 할아버지
김종하(75) 할아버지
윤 국장은 또, “이들 장기수 할아버지는 묻혀서 재라도 고향 땅을 밟고 싶어 한다”면서, "6.15남북공동선언의 취지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라도 이들의 송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를 비롯한 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오늘(9.2) 오전 10시에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지역의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참가한 가운데 이들의 2차 송환을 정부에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는다.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사진 제공.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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