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출신 장기수의 마지막 소원, "송환"

평화뉴스
  • 입력 2004.09.0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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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장기수 할아버지 2차 송환 촉구 기자회견
..."죽어서라도 고향에..."



◇ 대구지역에서 2차 송환을 바라는 장기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늘(9.2) 대구여성회 4층 강당에서 [2차 송환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가운데 서있는 사람은 최고령자인 김원철(86)씨.)


"2차 송환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향 갈 희망만으로 삽니다."
"북녘에서 눈을 감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놓은 대구지역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간절한 호소다.

지난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된지 꼭 4년이 되는 오늘(9.2) 대구시 중구의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열린 '2차 송환 촉구 기자회견'에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장기수 할아버지들 세 사람이 참석했다.

여러 기자들의 시선속에서 할아버지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몇 십 년 동안 가슴에만 담아두었던 송환의 꿈과 힘겨웠던 과거를 털어놨다.

올해 86살인 김원철 할아버지는 남파간첩으로 26년동안 옥살이와 모진 고문 끝에 지난 '87년 출소했다. 사법보호소에서 청소나 잡일을 하며 살고 있는 김할아버지의 마지막 바램은 다름아닌 북녘으로의 송환이다.

평북 영변이 고향인 김종하(75) 할아버지도 한국전쟁 당시 남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전향 각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뒤 결혼해서 가정도 꾸렸지만 김할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고향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싶다.

이학천(76)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전쟁포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간첩혐의를 덮어쓰고 무고하게 옥살이를 겪어야 했다. 이할아버지는 출소 뒤에도 끊임없는 감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목수 등 힘든 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이들 세 사람의 할아버지와 오늘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한 경산의 김창업(75) 할아버지를 포함해 대구지역에서 2차 송환을 희망하는 사람은 모두 네 사람이다. 전부 모진 고문 끝에 강제로 전향각서를 쓰고 숨죽여 살아왔다. 특히, 김창업 할아버지는 최근에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와 연결됐는데, 1차 송환이 이뤄진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기수 할아버지들. (왼쪽부터 이학천(76), 김종하(75), 김원철(86)씨)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와 [대구경북통일연대], [대구경북민중연대] 등 지역의 3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들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2차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문에서 이들은 "지난 2000년 1차 송환에서 제외된 장기수들은 잔혹한 고문 등 부당한 사상전향제도 아래에서 강제로 전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가운데는 전향과 전혀 관계없는 전쟁포로 출신도 있다"면서 "정부는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비전향장기수 등 인도적인 문제를 조속히 풀어갈 것을 합의한 대로, 지금까지의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 2차 송환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 윤보현 사무국장은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공식적으로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할아버지들의 연세가 모두 7,80대의 고령이기 때문에 2차 송환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국장은 또, "아직까지 뚜렷하게 진행되는 일은 없지만 북측과의 사이가 호전됐던 지난 2000년 1차 송환이 매우 빨리 이뤄졌기 때문에, 앞으로 남북관계에 따라서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우선은 지역에서부터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송환에 대해 알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2차 송환을 요구하는 장기수들은 대구의 네 사람을 포함해 전체 28명. 이 가운데 21명이 70세 이상의 고령이다. 이들은 "죽어서라도 북녘에 묻히고 싶다"며 2차 송환에 남은 생을 걸고 있다.

한편, 오늘 오전 11시 서울에서는 [비전향장기수 송환 4돌기념 및 2차 송환 촉구대회]가 대규모로 열렸다.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pnsun@pn.or.kr






<6.15 공동선언 합의 사항이다. 장기수 2차 송환을 거듭 촉구한다.>

지난 2000년 9월 2일, 분단의 아픔을 안고 수 십년 옥고를 치루면서도 통일된 조국만을 염원하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던 비전향장기수 63분이 북녘의 고향으로 송환되셨다. 이들 선생님들의 송환은 당사자들의 귀향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6·15 공동선언 3항에서 합의한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 등 인도주의 사업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장기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송환이 있은 후인 2001년 2월 6일, 1차 송환에서 제외된 또 다른 장기수 33분들은 '전향 철회 선언'과 함께 '2차 송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부당한 사상전향제도 아래 잔혹한 고문 등으로 강제 전향을 당했던 사람들이었다. 이 분들이 1차 송환에서 제외된 이유는 바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폭력과 고문에 의한 강제 전향은 전향이 아니었다.

이미 정부에서도 인권침해 등 위헌성을 들어 사상 전향제도와 준법서약제를 폐기시켰으며 국가기관인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전향공작 과정에서의 위법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전향 공작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재조명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2차 송환 희망자들 가운데는 전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쟁포로 출신 13명도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구속과 재판, 전향 강요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전쟁 포로는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본국으로 송환되었어야 함에도 이들은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당국에 의해 간첩이 되고 말았다.

장기수의 송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들 선생님들이 모두 고령이라는 점이다. 작년 대구의 김태수 선생님을 비롯해 장광명 선생님, 김경선 선생님 등이 꿈에도 잊지 못할 고향을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현재 송환을 요구하고 계시는 분들 중 80세 이상이 6명이고, 70세 이상이 15명인 상황이다.

대구지역에는 김원철 선생님, 이학천 선생님, 김종하 선생님, 강창업 선생님 등 모두 4분이 2차 송환을 희망하고 계신다. 고향이 모두 북쪽인 이들 선생님들은 묻혀서 재라도 고향 땅을 밟고 싶어 하신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의 두 정상은 평양에서 만나 "615 공동선언"에 합의하였다.
이 선언의 3항에서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바 있다. 귀향의지를 밝히고 있는 장기수가 있는 한 합의서 정신에 따라,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반드시 이들을 북녘의 고향으로 송환시켜야 함이 마땅하다.

정부는 이제까지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으로 장기수 2차 송환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2004년 9월 2일

대구경북지역 양심수후원회, 대구경북 통일연대(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전농 경북도연맹, 민주노동당 대구시지부, NCC 대구 인권위원회, 대구경북지역대학 총학생회연합, 대구경북 청년단체연석회의, 대구 여성회, 518 동지회,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범민련 대구경북연합, 반미 여성회, 평화통일 대구시민연대, 민자통 대구경북회의, 강북시민연대, 대구경북 반미청년회, 평불협 경북대구본부, 경북대 민주동문회, 영남대 민주동문회, 계명대 민주동문회, 대구대 민주동문회,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구경북 민중연대, 대구참여연대, 반딧불이, 손석용열사 추모사업회, 박동학열사 추모사업회, 경산대 민주동문회,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청소년문화센터 우리세상, 공감대구인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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