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여있는 지역 사회...어떻게 해야 하나 ” - 문창식

평화뉴스
  • 입력 2004.09.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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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화된 지역 사회...고인 물은 섞고, 썩은 물에는 생명이 깃들 수 없다”

1991년 3월 16일 강정정수장에 페놀이 오염된 낙동강 원수가 취수되었다. 정수에서 악취가 발생하자 정수장 근무자는 습관적으로 염소를 투입했다. 가정으로 수돗물을 급수하기 전에 악취를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정으로 급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항의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수돗물에서 독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근무자는 당연히 염소 투입량을 더 늘렸다.

하루가 지나자 악취가 더욱 심해졌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뿐만 아니라 부산경남 지역에서도 똑같은 민원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시작된 항의전화는 수돗물을 많이 사용하는 목욕탕, 대중식당, 식품회사 등으로 확산되었다.

수돗물로 요리한 곰탕, 설렁탕을 먹던 손님들이 하나같이 수저를 놓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날을 잡아 담갔던 된장을 모두 폐기처분한 회사도 발생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정수장에서는 악취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더 많은 염소를 투입한 수돗물이 계속 공급되었다. 당국은 냄새나는 수돗물도 끓여서 마시면 인체에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방송국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당국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행정당국은 원인규명과 사태수습에 부산을 떨었고, 사법당국은 악취 원인을 찾기 위해 낙동강 강정취수장 상류를 샅샅이 뒤졌다. 결국 구미공단 두산 전자에서 페놀원액 30톤을 몰래 낙동강에 버린 것이 악취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페놀이 함유된 물에 염소를 투입하면 페놀과 화학 작용해 악취와 독성이 더욱 심한 클로로페놀과 디클로로페놀이 생성된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진작 염소 투입을 중단했어야 한다고 당국에 대한 호된 질책이 가해졌다.
대구시장이 공식 사과했다. 몇몇 관련자들이 사법처리 되었다. 그러나 당국은 페놀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홍보에 더욱 열을 올렸다. 더구나 당시 페놀은 법정 먹는 물 수질 기준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일부 전문가들이 당국의 주장에 동조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피해를 호소한 시민들 중에는 수십 명의 임산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페놀 수돗물을 마신 뒤 사산, 유산하고 기형아를 낳았다고 호소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는 피해 시민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임산부들의 소송이 2년여에 걸쳐 이루어졌다. 페놀이 암을 유발하는 독성물질임이 전문가의 법정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대구시가 발표한 페놀 오염 수치도 조작되었음이 드러났다.

담당 재판부가 10여 차례나 바뀌었다. 어느 판사도 판결문을 작성하지 않았다. 결국 페놀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인정할 수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두산과 대구시가 상당액을 임산부들에 지급하라는 재판부 조정 결정으로 페놀 소송은 막을 내렸다. 어느 틈에 페놀은 법정 먹는 물 수질 항목에 포함되었고, 낙동강 유역 정수장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어 고도정수처리시설이 도입되었다.

1991년 페놀...당국, “수돗물 끓여 마시면 피해 없다”...페놀 오염 수치 조작, 페놀 피해...
2004년 1,4-다이옥산...당국, “끓여 마시면 안전하다”...발암 물질로 확인, 그러나 계속 공급...


그리고 13년이 흐른 2004년이 되었다. 지난 6월 대구시는 낙동강 원수를 취수하는 두류와 매곡 정수장에서 1,4-다이옥산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1,4-다이옥산은 최초 분석을 시작한 2000년부터 검출되기 시작했는데 그 농도가 때로는 세계보건기구 권장치의 최고 4배에 다다랐다.

당국은 1,4-다이옥산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물질이기 때문에 끓여서 마시면 안전하다고 마찬가지로 매스컴을 통해 발표했다. 1,4-다이옥산이 검출되기 시작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두류와 매곡정수장에서 급수된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로부터 항의전화는 전혀 없었다. 페놀과는 달리 1,4-다이옥산은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물질이기 때문이었다.

당국의 주장과는 다르게 전문가들에 의하면 동물실험결과 1.4-다이옥산은 암을 유발하는 엄연한 발암물질로 밝혀졌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이 30년 동안 하루 2리터의 물을 섭취하는 경우, 10만 명 당 1명의 발암가능성이 있는 수준의 농도로서 1,4-다이옥산의 허용 위해도를 10ppb로 권고하고 있는 것도 알려졌다. 그리고 1,4-다이옥산의 비등점이 거의 101℃에 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끓여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1,4-다이옥산 농도가 턱없이 높게 나오자 환경부가 두 달여 동안 구미공단에 입주한 배출업소를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10여개 배출업체가 적발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4-다이옥산은 배출규제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환경부는 이들 업체와 협약이라도 맺어서 배출농도를 줄이겠다고 했다. 업체에게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다. 적발된 업체들은 코 방귀라도 뀌듯이 여전히 공장을 가동하며 1,4-다이옥산을 낙동강으로 흘러 보내고 있다.

먹는 물 법정 항목에도 1,4-다이옥산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고도정수처리시설로서 이 물질을 정수할 수 없다고 한다. 두류와 매곡 정수장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도 1,4-다이옥산이 함유된 수돗물을 계속 공급하고 있다. 낙동강 원수에서도, 정수장의 수돗물에서도 여전히 우려할 만한 농도의 1,4-다이옥산은 계속 검출되고 있다. 그런데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반 시민이 이 물을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있다. 아마 30년 동안 1,4-다이옥산이 섞인 수돗물을 마신 성인 중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보고 될 때까지는 당국은 안전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내 뱉고 있을 것이다.

보수화된 지역 사회, 보수화된 권력...잘못된 습관, 제도 바꾸기 외면
시민사회...“겸손하게 스스로를 반성하고 흩어져 있는 역량 강화를 위해 머리 맞대야”


두 사건은 모두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수돗물 사건으로 보수화된 지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수의 사전적인 뜻은 오랜 습관, 제도, 방법 등을 소중히 여겨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가 오랜 기간 보수화되었다는 것은 잘못 형성된 습관, 제도, 방법을 바꾸는 것을 강하게 외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년 동안 동일한 권력이 한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회 구성원들은 잘잘못에 대한 판단 능력이 상실되어 지배 권력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당연히 지배 권력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 시끄럽게 문제 삼을 필요가 있느냐, 알아서 잘할 테니 우리만 한번만 더 우리를 믿어 달라는 식으로 모든 문제를 무사안일하고 책임 회피식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그 사회에서 발생한 매우 중대한 사건을 지배 권력이 침소붕대하고, 왜곡해도 그 사회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흐르는 시간, 흐르는 물 그리고 한번 내뱉은 말이 그것이란다. 그런데 대구경북 지역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보수화된 권력이다. 지난 15대 총선은 대구경북지역이 지배 권력뿐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이 보수화되었다는 것을 심각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대구경북 시민사회는 지금까지의 역할을 넘어 이 나라 보수 정당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기약 없는 역할을 감당해야 될지도 모른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썩는다. 썩은 물에는 생명이 깃들 수가 없다. 따라서 생명이 살아서 깃들 수 있는 사회는 고여 한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여 있는 지역사회,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물꼬를 터서 고여 썩어가는 이 사회를 다시 흐르게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지역 시민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다.

다시 흩어져 있는 운동 역량들이 모여야 한다. 겸손하게 스스로를 반성하고, 역량 강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 결과는 새로운 연대를 실현하기 위함이며, 연대실현의 목적은 생명을 서서히 앗아갈 수 있는 수돗물을 무책임하게 급수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명을 생명답게 지키기 위해 대안 급수를 준비해 놓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문창식(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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