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민가로 내려올까봐 대구 북구 함지산 일대 주민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대구 북구 함지산 산등성이 군데군데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북구 구암동에서 29일 오전 8시경 바라본 함지산의 모습이다.
동네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주민들 중 일부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산불 진화 헬기 소리는 끊임없이 들렸고, 일부 구간은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진화 현장 곳곳에는 소방차가 배치됐다.
산불이 난 인근 마을 주민들은 "혹시라도 산불이 간밤에 민가로 내려오지 않을까 걱정돼 한숨도 못 잤다"고 입을 모았다.
북구 구암동 도시철도 3호선 구암역 인근에서는 산불 진화용 물을 실은 헬기가 산등성이로 향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각자 핸드폰에 전날 밤 밤새 빨갛게 피어오른 산불을 동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한 주민은 "혹시라도 마을로 (산불이) 내려올까봐 너무 무섭고 걱정스러웠다"며 애타는 마음을 전했다.
구암역 앞에서 만난 진모(45)씨는 "구암초등학교 건너편 산 너머에서 연기가 엄청 났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처음 봤는데, 우는 아이들도 여러 명 봤다"고 떠올렸다.
이어 "화산이 터지듯이 연기가 났다"면서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고 했다.
칠곡가구골목에서 만난 30대 이모씨는 지난 28일 밤 자신이 찍었던 산불 동영상을 보여젔다.
이씨는 "불기둥이 산봉우리에서 올라와 무서웠다"며 "도남동에 사는데, 산불이 난 장소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데도 불길이 번질까 대피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텐트 대피소로 이동한 주민들도 쪽잠을 자거나 밤을 지새우며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북구 매천초등학교 강당 대피소에는 이날 오전 10시쯤 임시거주공간 쉘터가 35개, 텐트 9개가 설치돼 있었다.
강당 한 켠에는 담요와 세안용품, 매트 등이 담긴 응급구호세트와 간식들이 놓여 있었다. 강당 바깥쪽에는 배식봉사차량과 함께 자원봉사자들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식기를 씻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피소에는 주로 아이들을 둔 부모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았다.
이곳에 있는 할머니들은 지난 28일 있었던 산불 이야기를 하며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신태자(74.조야동)씨는 "지난 28일 오후 7시~8시 사이에 대피소로 왔다"면서 "얼른 대피하라고 경찰 아저씨들이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밝혔다. 이어 "온 동네가 새까맸고, 산불을 보며 몇 시간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많이 떨렸다"면서 "대피소가 지낼 만하지만, 낯선 곳에 왔고 동네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한 시간도 못 잤다"고 덧붙였다.
손경옥(74.조야동)씨도 "오후 3시쯤 목욕탕에 있었는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붙티나게 왔다"며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 집에 왔다가 통장과 돈만 들고 대피소에 왔다. 구청에서 집에 돌아가도 된다고 하면 갈 것 같은데, 언제 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산불로 차단된 전기와 가스, 집에 나는 매캐한 냄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윤영숙(51.조야동)씨는 "대피소에 있으니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집이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집에 전기와 가스가 모두 차단돼 아직까지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구청에서 언제쯤 돌아가면 된다는 연락이 없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인근 학교와 도서관 등도 모두 문을 닫았다.
북구 서변동에 있는 서변숲도서관·작은도서관은 이날 오전 11시경 "대구지역 산불 확산에 따라 긴급 임시 휴관하오니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휴관 기간은 이날부터 화재 진화 완료까지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출입구 앞에 서서 "오늘은 휴관합니다"라고 안내했다. 한 주민은 "책을 반납해야 하는데 오늘 휴관하는 날이냐"며 직원에게 말한 뒤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인근 서변공원에 앉아 있던 주민들은 헬기가 산불 진화 작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서승덕(78)씨는 "어제 오후 산불 때문에 동변중학교에 있는 대피소로 잠깐 피신했다가 집에 와서 잤다"며 "오늘은 공원에 나와 산불을 끄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피소로 가는데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면서 "산불을 뉴스로만 보다가 직접 당해보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에 29일 확인한 결과, 지난 28일 오후 2시 2분 대구 북구 노곡동 산12 일원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산불 발생 23시간 만에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축구장 364개 크기인 산림 260ha의 산림 피해가 발생했다. 앞으로 민가 주변을 포함해 산림에 대해 잔불 정리에 나선다.
대구시는 팔달초, 매천초 등 7개 대피소에 남아 있는 주민 214명에 대해 순차적으로 자택 복귀를 도울 예정이다. 산불 원인 파악을 위해 북구청과 소방, 경찰과 함께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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